[동아광장/전인평]독일 조선인 포로가 부른 아리랑과 독립운동 가요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1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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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 연해주 이주했다 1차대전 포로로 잡힌 조선인들의 노래 45곡
“아라랑 아라리요…” “…원수 너를 만났도다”
애잔한 질곡의 역사, 예술로 다시 태어나길

전인평 중앙대 예술대 명예교수
전인평 중앙대 예술대 명예교수
“아라랑 아라랑 아라리요, 아리랑 뛰어라 노다 가세.”

지직거리며 거친 소리를 내는 에디슨 축음기 녹음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너무나 애잔하여 듣는 이의 가슴을 쥐어뜯는다. 또한 목메어 부르는 독립운동 가요 “만났도다 만났도다. 원수 너를 만났도다”를 듣노라면, 멀고 먼 이역 땅에서 독립운동에 매진하였던 조상의 모습이 떠올라 저절로 숙연해진다.

때는 1916년 가을 그리고 1917년 봄, 독일 포로수용소에서 조선인 다섯 명이 노래를 불렀다. 이들은 포로로서 언제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자신의 장래에 대하여 한 치 앞을 모르는 암울한 포로 생활 중에 이 노래를 불렀다. 그러면 왜 어떻게 조선인들이 독일군의 포로가 되어 멀고 먼 독일에서 노래를 불렀을까?

1860년대 조선왕조는 대기근과 홍수 그리고 민란 등으로 대단히 어수선한 상황이었다. 당시 민초들의 생활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어려웠고 고단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함경도 등지의 사람들은 살길을 찾아 국경을 넘었다. 그리고 흘러간 곳이 러시아 영토인 연해주이다. 이곳에서 조선인 대부분은 무국적자로 형언할 수 없는 고난의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의 기운이 감돌자 러시아 황제는 동원령을 발동하였다. 당시 무국적자로 지내던 조선인 일부는 군에 입대하면 러시아 국적을 준다는 이야기에 군에 지원하였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참전 조선인 중 일부는 1914년 8월경 독일군에 포로로 붙잡혔고, 이들은 독일의 쾨니히스브뤼크, 뮌스터, 그리고 하메르슈타인의 포로수용소에 수용되었다.

독일에서는 1915년 말 왕립 프로이센 표음위원회가 설립되어 세계 여러 나라 지역에서 잡혀온 포로를 활용하여 음악과 언어를 녹음하고 또한 노래의 가사, 녹음한 사람의 인적 상황을 꼼꼼하게 정리하였다.

경황없는 전쟁 통에 포로들의 음악과 언어를 녹음하겠다는 발상도 놀랍거니와 녹음 후 노래 가사와 가창자의 인적 사항까지 적었다. 신상기록지에는 이름, 생년월일, 부모의 출신지, 사용 가능 언어, 직업, 종교 등을 기록하고 있어 독일인의 치밀함에 소름이 돋을 지경이다.

에디슨이 축음기를 발명한 것이 1876년이니 아직 녹음시설이 보편화되지 않은 형편이었을 것인데, 이런 작업을 하였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기록에 따르면 목소리의 주인공은 이주민 2, 3세로서 김 그레고리, 안 스테판, 강 가브리엘, 유 니콜라이, 유 니키포르이다. 이들이 부른 노래는 모두 45곡으로 1시간 10분 분량이다. 녹음에는 수심가, 애원성, 국문뒤풀이 등의 민요가 들어 있고 특별히 귀중한 것은 독립운동 가요가 들어 있다는 점이다.

강 가브리엘(강홍식)이 1917년 3월 녹음한 독립운동 가요 ‘대한 사람의’는 “대한 사람의 우리들은요 총과 칼이야 무서말게요”라는 가사로 시작한다. 1917년 하메르슈타인에서 유 니콜라이가 녹음한 독립운동 가요 ‘만났도다’는 “만났도다 만났도다. 원수 너를 만났도다”라는 가사로 시작한다.

이 노래를 부른 포로 5명의 나이는 녹음 당시 23세에서 41세였다. 이들은 귀한 집안의 아들이기도 하고 혹은 가장이기도 하였을 것이다. 이들은 고향으로 돌아갔을까? 아니면 고향을 그리며 타향에서 눈을 감았을까?

이 45곡의 노래는 국립국악원 김해숙 원장과 송지원 연구실장 등의 3년여 작업 끝에 ‘그리움의 노래’라는 CD 2장으로 재탄생했다. 자세한 서지 연구와 악보도 소개되었다.

낯선 땅의 전쟁 포로로서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참담하고 처절한 상태에서 노래하는 조선 청년, 오늘날 우리가 그들의 마음을 어떻게 헤아릴 수 있을까? 이 자료에 담긴 노래들은 우리 민족이 겪어온 질곡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는 점에서 학문적으로도 매우 소중하다. 앞으로 이 귀중한 자료가 유능한 전문가의 손을 거쳐 예술 작품으로 다시 태어나길 기대한다. 이 조선인 포로의 노래를 드라마 오페라 또는 뮤지컬로 재현할 역량 있는 작가가 기다려진다.

전인평 중앙대 예술대 명예교수
#아리랑#제1차 세계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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