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단독]10억 들여 인권상징 50곳 만든다는데…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1월 26일 03시 00분


코멘트

서울시, 신청사에 조형물-남산 안기부 터에 표지판 등 투어코스 추진
외국인관광객 유인할수 있을지 의문… 2014년 제정 인권헌장은 1년째 방치
“외형적 성과내기에만 급급” 비판

서울시가 10억 원을 투입해 시내 곳곳에 인권 조형물과 표지석 설치를 추진 중이다. 인권에 대한 가치를 널리 알리는 한편 인권 현장을 관광자원으로 만들겠다는 취지다.

25일 서울시에 따르면 시는 다음 달 10일 세계인권의 날에 맞춰 신청사 앞에 인권 조형물을 설치한다. 조형물은 ‘사람 지문’ 형태로 녹지대 위에 들어선다. 또 남산 옛 안기부 터 일대에는 9개의 설명 표지판이 들어서는 등 ‘인권 코스’로 조성된다. 신청사와 남산의 조형물 설치 사업에는 3억6500만 원이 책정됐다.

이와 함께 서울시는 내년에 인권 조형물과 표지석 50개를 추가로 설치하기 위해 관련 용역 입찰을 진행 중이다. 50곳을 선정해 보도 바닥에 이름과 배경을 설명하는 동판을 설치하고 대표적인 현장에는 대형 조형물도 만든다. 사업비는 총 6억3500만 원이다. 그동안 특정 장소를 대상으로 비슷한 사업이 추진된 적은 있으나 10억 원에 달하는 예산을 한꺼번에 투입해 시내 여러 곳에 조형물을 설치하는 것은 이례적이다.

인권 사업에 ‘뭉칫돈’ 투자가 가능했던 것은 엉뚱하게도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때문이었다. 서울시는 올 8월 메르스 대응과 관광 활성화를 위해 총 8081억 원의 ‘메르스 추경’을 마련했다. 이때 인권 관련 사업부서가 급히 ‘인권 관광’이란 키워드를 들고 사업 제안을 하면서 예산이 배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시 관계자는 “원래 올해는 안기부 터 조성에만 예산 4000만 원이 책정됐는데 ‘인권 관광’이 연계되면서 사업이 확대됐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각 인권 조형물들을 잇는 관광 코스를 내년 상반기(1∼6월)에 마련할 계획이다.

일각에서는 ‘관광 명소’로서의 효과가 불분명한 상태에서 성급한 투자가 아니냐는 의견을 내고 있다. 또 서울시가 실질적인 인권 신장보다 외형적인 결과물에 치중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표적인 사례가 ‘서울시민 인권헌장’이다. 지난해 12월 논란 끝에 성 소수자 차별금지 조항이 들어간 인권헌장을 제정해 선포했지만 서울시는 지금까지 인권헌장의 효력을 인정하지 않고 후속 대책도 전혀 마련하지 않고 있다.

서울시는 올해 세우지 못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평화비’도 내년에 건립할 방침이다. 하지만 내년 사업추진비 3000만 원을 제외한 실제 평화비 건립 비용은 국민 성금으로 조성할 계획이다. 위안부 평화비 건립에는 예산을 아끼면서 별도의 인권 상징물 조성에는 거액을 투입하는 셈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위안부 평화비와 인권 조형물 건립은 별개의 사업”이라며 “어느 하나를 못한다고 다른 것까지 못하게 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고 설명했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서울시#투어코스. 인권상징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