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선사시대를 엿볼 수 있는 것은 말과 말 덕분이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1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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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바퀴, 언어/데이비드 W. 앤서니 지음/공원국 옮김/832쪽·4만 원·에코리브르

대규모 핵전쟁이 일어나 한국인의 일부만 살아남았다고 치자. 수천 년 뒤 후손들은 선조들에 대해 어떻게 알 수 있을까.

한 가지 유력한 방법은 비교언어학이다. 후손들은 당대의 다양한 민족이 사용하는 언어를 비교해 공통의 어근을 발견해내는 방식으로 공통 조어(祖語·친족 관계에 있는 여러 언어들이 갈려 나온 것으로 추정되는 원언어)인 한국어의 단어들을 추정할 수 있다.

당대 다양한 민족들이 ‘정보가 담긴 매체’라는 의미로 ‘씬문’이나 ‘친문’ 같은 단어를 사용한다고 하자(물론 음운 변화 법칙과는 무관한 예시다). 후손들은 공통 조어에 ‘신문’이 있었고 선조(우리)들이 매일 정보를 제공받는 시스템 속에서 살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소나무’ ‘명태’ 등 공통 조어에 등장하는 동식물명과 기후 등 환경조건, 추정되는 각 민족 언어의 분기 시점 등을 종합하면 자신들의 조상이 한반도에 살았다는 것까지도 알아낼 수 있을 것이다.

영어에서 힌디어까지 전 세계에서 약 30억 명이 인도·유럽어족의 언어를 쓴다. 인도·유럽어족의 공통 조어를 쓰던 옛날 사람들에 대해서도 같은 방법으로 여러 가지를 알아낼 수 있다. 이들은 기원전 4500년부터 기원전 2500년까지 흑해 카스피해 연안의 초원에서 소와 양을 치고, 꿀벌로부터 꿀을 모으고, 네 바퀴 수레를 몰고, 양털로 직물을 만들었다. 또 권리와 의무를 부계로 상속했고, 결혼 뒤에는 시집에서 살았으며, 제도화한 군대를 보유하고, 소와 말을 잡아 희생의식을 행했다.

책은 언어학과 고고학, 동식물학, 지질학 등을 동원해 유라시아 초원의 선사시대를 복원해낸다. 인도·유럽 공통조어 사용자들은 수레와 말을 교통·운송수단으로 쓰기 시작하면서 급격히 사방으로 퍼져 나갔고, 유라시아 초원은 교통·상업·문화적 교환이 벌어지는 회랑(回廊)이 됐다.

고구려 벽화에도 나오는 파르티아 사법(射法)에 관한 분석도 한 대목 나온다. 철기시대 이전의 활은 길어서 말 위에서 쓰기 불편했고, 화살대를 쪼개 촉을 박는 식이어서 강도도 떨어졌다. 그러나 기원전 1000년경 짧은 이중 만곡(彎曲)형 복합궁이 발명돼 강도가 높아지면서 기수가 뒤쪽으로 화살을 강하게 날릴 수 있게 됐다고 한다.

저자는 미국 하트윅대 인류학 교수로 수많은 유라시아 유적 발굴에 참여했다고 한다. 고대 말뼈의 치아 마모 흔적을 통해 기마를 위해 재갈을 물렸던 말인지를 알아내는 솜씨가 놀랍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말 바퀴 언어#비교언어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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