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엠디팩트] 중국 당면·일본 간장 더해진 韓·中·日 합작품 ‘잡채’

  • 입력 2015년 11월 19일 16시 14분


코멘트
중국서 기원했지만 한국식으로 발전 … 경의선따라 들어온 당면 덕에 대중화

잔치날이 되면 상에 반드시 오르는 음식 중 하나가 잡채다. 넣는 재료에 따라 다양한 맛을 느낄 수 있는 잡채는 푸른색, 노란색, 붉은색, 흰색, 갈색 등 다섯가지 오방색이 골고루 들어가 시각적으로도 아름답다. 잡채를 맛 본 외국인들은 ‘유럽의 파스타와 형태가 비슷하지만 전혀 다른 맛을 낸다’며 호감을 표한다.

잡채는 본래 중국에서 기원한 음식이다. 한국식과 달리 중국식은 육류가 거의 없으며 대부분 채소로 이뤄져 있다. 국내에서 중국식 잡채로 이름이 높은 광동지방 잡채는 재료가 고르게 익을 수 있도록 일정한 크기로 썬 뒤 땅콩기름이나 돼지기름을 붓고 볶는다.

임진왜란이 끝난 조선은 전 국토가 황폐화됐다. 선조로부터 가난한 조선을 물려받은 광해군은 거처조차 마땅치 않았다. 겨우 전세살이로 들어간 곳이 월산대군(수양대군의 손자)의 사저였다. 먹을 게 넉넉하지 않아 ‘잡채상서(雜菜尙書)’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졌다. 임금에게 잡채를 올리고 높은 벼슬을 얻었다는 뜻으로 ‘김치정승(沈菜政丞·침채정승)’, ‘사삼각노(沙蔘閣老)’ 등도 이와 비슷한 의미다. 실제로 호조판서를 지냈던 이충은 잡채상서의 대표적 인물 중 하나다.

이같이 잡채는 왕에게 진상될 정도로 고급음식이었다. 잡채(雜菜)의 ‘잡(雜)’은 ‘섞다’는 뜻이고 ‘채(菜)’는 나물이나 채소 등을 의미한다. 즉 잡채는 나물을 섞어 만든 음식이다. 잡채 조리법이 실린 국내 최초의 문헌은 헌종 11년(1670년) 발간된 ‘음식디미방(飮食知味方)’이다. 이 책에는 ‘꿩고기로 육수를 내고 고기를 잘게 찢은 뒤 각색의 재료를 한 치씩 넣어 기름잡에 볶거나 데친다. 이를 그릇에 담고 꿩고기 육수와 된장을 걸러낸 물을 밀가루에 섞어 걸쭉하게 만든다’고 잡채 조리법을 비교적 상세하게 기록했다.

잡채의 제조법은 정조 19년(1795년) 정조가 아버지 장헌세자(사도세자)를 모신 현릉원에 행차한 내용을 정리한 ‘원행을묘 정리궤’에도 등장하지만 조선시대 문헌에는 오늘날 잡채의 주재료인 당면에 대한 기록은 찾기 힘들다.

당면(唐麵)을 직역하면 ‘당나라에서 건너온 국수’라는 뜻이다. 당(唐)은 중국을 지칭하는 일반명사로 잡채는 ‘중국에서 넘어온 국수’로 이해해도 좋다. 당면의 발상지는 중국 산둥성 옌타이 자오위안이다. 중국에서는 ‘펀쓰(粉絲)’라 부른다. 중국 내 자료를 통해 펀쓰는 300여 년 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측된다. 녹말을 사용해 면을 뽑아 내리는 압착면(壓搾麵)이다.

국내 당면의 역사는 경의선 열차와 함께 시작됐다. 1906년 경의선이 완성되자 종착역인 신의주와 중간 거점 도시였던 사리원을 중심으로 당면을 비롯한 중국 음식이 소개됐다. 국내에 거주한 중국인을 통해 만들어지던 당면은 1919년 황해도 사리원에 양재하 씨가 ‘광흥공창’이란 대규모 당면 공장을 건설하면 대량생산이 이뤄졌다.

당시 당면은 보관이 용이하고 여러 음식과 잘 어울려 인기가 높았다. 1930년대 신문에는 채소와 고기를 함께 먹는 일본 고기요리인 스키야키에 당면을 넣어 먹었다는 기사가 적혀 있다. 스키야키는 불고기와 꾸준히 연관성이 제기되는 음식으로 현재 불고기에도 당면이 빠지지 않고 들어간다.

주영하 한국학중앙연구원 민속학 교수는 “과거엔 잡채를 나물의 한 종류로 분류하면서 사찰음식으로 취급했다”며 “해방 이후 한정식 식당은 물론 분식점에도 잡채를 판매할 정도로 대중화됐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에서 달짝지근한 양조간장이 들여오면서 당면잡채의 간을 이것으로 맞췄다”며 “1930년대부터 잔칫상에 빠지지 않고 오르는 당면 잡채는 한국, 중국, 일본의 합작품”이라고 설명했다.

당면은 영하 10도까지 기온이 떨어지는 겨울에 가장 많이 팔리는 식료품 중 하나다. 겨울출 보양음식으로 꼽히는 곰탕이나 설렁탕에 당면이 주로 쓰이기 때문이다. 국내 당면시장은 약 1000억원 규모로 대부분 중국에서 직접 고구마 전분을 생산, 가공, 포장 등을 거친 완제품이 차지하고 있다.

1924년 방신영이 지은 ‘조선요리제법’에는 당면을 이용한 잡채가 처음 등장한다. 이전의 조선시대 잡채는 각종 채소와 해삼, 전복 등 해산물을 곁들여 겨자장이나 초장에 찍어 먹는 형태였다. 당면이 본격적으로 생산되면서 잡채도 대중화됐다.

최근에는 당면을 이용한 잡채뿐 아니라 콩나물잡채, 풋고추잡채, 청포묵잡채, 표고버섯잡채, 해물잡채 등 재료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발전되고 있다. 잡채는 음식을 제대로 먹지 않는 아이들에게 적합하다. 잡채에 들어가는 대표적인 재료 중 하나인 당근은 비타민A가 풍부하며, 주황색을 내는 베타카로틴은 항산화 기능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양파는 섬유소 함량이 높아 변비를 예방하고, 버섯과 고기는 단백질을 공급한다.

취재 = 현정석 엠디팩트 기자 md@mdfact.com

* 본 기사의 내용은 동아닷컴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