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戰後질서’ 흔드는 日… 아베 직속 역사검증기구 11월 신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1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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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민당, 평화헌법 개헌 겨냥… ‘도쿄 전범재판 뒤집기’ 시도
위안부-난징 대학살도 다룰듯

일본의 역사 수정주의 행보가 미국 등 연합국이 구축한 전후 질서에 정면 도전하는 등 ‘레드 라인(금지선)’을 넘어서고 있다. 목표는 개헌이다.

12일 일본 언론에 따르면 집권 자민당은 올해 창당 60주년을 맞아 이달에 청일전쟁, 러일전쟁 이후의 역사 검증을 담당할 조직을 신설한다. 검증 조직은 가칭 ‘전쟁 및 역사 인식 검증위원회’이다. 당 총재인 아베 신조(安倍晋三·사진) 총리 직속기관으로 설치한다고 자민당 간부가 밝혔다.

검증 조직이 정면 겨냥하고 있는 것은 그동안 금기시돼 왔던 극동군사재판(도쿄재판)의 타당성이다. 이 재판에서 미국이 이끄는 연합국은 도조 히데키(東條英機) 전 일본 총리 등 7명에게 교수형을 선고했다. 아베 총리의 외할아버지로 만주국 고관을 지낸 기시 노부스케(岸信介) 전 총리도 전범으로 기소됐다 풀려났다. 일본은 도쿄재판을 받아들이는 조건으로 국제사회에 복귀할 수 있었다.

그런데도 자민당이 도쿄재판 검증을 통한 전후질서 흔들기에 나서는 것은 ‘일본이 피해자’라는 비뚤어진 역사 인식 때문이다. 아베 총리는 2013년 3월 중의원에서 도쿄재판에 대해 “연합국 측이 승자의 판단에 따라 단죄했다”고 주장했고 한 달 뒤에는 참의원에 출석해 “침략의 정의가 정해진 것은 아니다”고 발언했다.

이런 인식의 연장선에서 아베 총리의 복심인 이나다 도모미(稻田朋美) 자민당 정조회장은 올 6월 도쿄재판에 대해 “판결 이유에 있는 역사 인식은 너무 날림이다. 일본인에 의한 검증이 필요하다”면서 속내를 밝힌 바 있다.

도쿄재판에 대한 부정은 전쟁과 군대 보유를 금지한 평화헌법에 대한 부정으로 이어지고 있다. 아베 총리는 올 3월 중의원에서 평화헌법에 대해 “원안을 연합국군총사령부(GHQ)의 문외한들이 8일 만에 만든 물건”이라고 평가하며 개헌 논의를 촉구했다.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용인해 껍데기만 남은 헌법조차도 뜯어고치겠다는 것이다.

자민당은 위원회에 전문가를 초빙해 태평양전쟁의 발발 경위 등을 연구하며 중국, 한국과 역사 인식 논쟁의 재료가 되는 난징(南京)대학살이나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도 주제로 다룬다.

자민당의 도쿄재판 흔들기가 본격화되면 미국 등 국제사회의 반발을 피하기 어렵다. 교도통신도 관련 뉴스를 전하며 “전후 질서를 부정한다는 비판을 낳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지적했다. 자민당은 꼼수로 빠져나가려 하고 있다. 책임 소재가 애매한 위원회 형태로 조직을 꾸리고 “논의의 장은 만들되 결과는 따로 정리하지 않을 방침”이라고 밝혔다. 위원장도 당내 온건파로 분류되는 다니가키 사다카즈(谷垣禎一) 간사장에게 맡기는 방향으로 조율하고 있다.

도쿄=배극인 특파원 bae2150@donga.com
#일본#아베#역사검증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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