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세기 말 한국, 세속 권력이 종교 권위보다 강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1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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加 UBC교수 당시 유럽과 비교 논문… “조선 건국 이성계 독자 역량 커”

SBS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에서 조선을 건국하는 태조 이성계(천호진)는 ‘잔트가르’(몽골어로 최강의 사내)라고 불린다. 고려 말 들끓었던 왜구와 홍건적을 소탕한 불패의 무장에 걸맞은 칭호다. 조선이 유학을 숭상한 문치국가였기 때문에 태조의 이미지는 이후의 임금들과는 사뭇 이질적이다.

던 베이커 브리티시 컬럼비아대 아시아학부 교수는 논문 ‘수사적 제의적 정치적 적법성: 이성계 즉위의 정당화’에서 조선 건국을 정당화하는 데 이 같은 태조의 이미지가 주요하게 활용됐다고 분석했다. 그는 “태조실록과 용비어천가 등에서 이성계의 이미지는 용맹과 카리스마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며 “군사적 업적과 궁술과 마술(馬術) 등의 능력이 그에게 천명이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근거로 많이 사용됐다”고 말했다.

베이커 교수는 조선의 건국 당시 종교의 영향력이 서유럽과는 매우 다르다고 봤다. 14세기 말 서유럽에서 교황은 권위가 약화되고 있었지만 여전히 강한 세속적 권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반면 조선은 근대 초반의 유럽보다 국가가 종교보다 훨씬 강력한 힘을 갖고 있었다. 베이커 교수는 “한국이 유럽보다 다원적인 종교문화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유럽과 달리 어느 한 종교가 권력에 도전할 만큼 성장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태조는 권력을 신의 대리자로부터 건네받은 유럽의 군주들과 달리 자신의 힘으로 쟁취했다. 베이커 교수는 “태조의 후계자들은 서유럽과 달리 정치와 종교의 경계를 복잡하게 설정할 필요가 없었다”며 “이는 서유럽과 한국의 근대 진입 경로가 다르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베이커 교수의 이 논문은 지난달 유네스코 한국위원회의 ‘코리아저널상’(인문학 분야)을 받았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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