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베이커 교수 “조선 건국 정당화엔 태조의 용맹-카리스마 활용돼”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1월 11일 18시 4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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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에서 조선을 건국하는 태조 이성계(천호진)는 ‘잔트가르’(몽골어로 최강의 사내)라고 불린다. 고려 말 들끓었던 왜구와 홍건적을 소탕한 불패의 무장에 걸맞은 칭호다. 조선이 유학을 숭상한 문치국가였기 때문에 태조의 이미지는 이후의 임금들과는 사뭇 이질적이다.

던 베이커 브리티시 컬럼비아대 아시아학부 교수는 논문 ‘수사적 제의적 정치적 적법성: 이성계 즉위의 정당화’에서 조선 건국을 정당화하는데 이 같은 태조의 이미지가 주요하게 활용됐다고 분석했다. 그는 “태조실록과 용비어천가 등에서 이성계의 이미지는 종교적 정당성이 아니라 용맹과 카리스마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며 “군사적 업적과 궁술과 마술(馬術) 등의 능력이 그에게 천명이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근거로 많이 사용됐다”고 말했다.

베이커 교수는 조선의 건국 당시 종교의 영향력이 서유럽과는 매우 다르다고 봤다. 14세기말 서유럽에서 교황은 권위가 약화되고 있었지만 여전히 강한 세속적 권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반면 조선은 근대 초반의 유럽보다 국가가 종교보다 훨씬 강력한 힘을 갖고 있었다. 베이커 교수는 “한국의 유럽보다 다원적인 종교문화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유럽과 달리 어느 한 종교가 권력에 도전할 만큼 성장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태조는 권력을 신의 대리자로부터 건네받은 유럽의 군주들과 달리 자신의 힘으로 쟁취했다. 베이커 교수는 “태조의 후계자들은 서유럽과 달리 정치와 종교의 경계를 복잡하게 설정할 필요가 없었다”며 “이는 서유럽과 한국의 근대 진입 경로가 다르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조선 건국 단계에서 유학은 새 왕조에 정당성을 부여할 만큼 보편적인 사상이 아니었다. 베이커 교수는 “이에 따라 태조의 즉위를 정당화하는데 불교와 도교의 의례가 보강됐다”며 “성리학이 왕실 의례에서 주도적 지위를 차지하기까지는 수십 년이 걸렸다”고 말했다.

베이커 교수의 이 논문은 지난달 유네스코 한국위원회의 ‘코리아저널상’(인문학 분야)을 받았다. 유네스코 한국위원회가 1961년부터 한국학 국제 영문 학술지 코리아저널을 내고 있으며 지난해 우수한 논문을 시상하는 ‘코리아저널상’을 제정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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