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기를 하려면 돈이 필요했다. 창업을 지원한다는 곳이면 어디든 찾아다녔다. 7월 하순 창조경제혁신센터장이라는 사람이 갑자기 찾아왔다. 일주일 전쯤 자금 지원 방안을 문의한 적이 있었던 그 기관이었다. 센터장은 조만간 입주기업 선발 심사가 있으니 사업계획서부터 만들라고 했다. 다행히 ‘우리 농산물로 만든 전통죽과 전통차’라는 사업 콘셉트에 심사위원들이 만족한 듯했다. 9월 10일 전남혁신센터에 입주한 지 이제 두 달. 아직 아무것도 이룬 건 없다. 하지만 엄마만 바라보는 세 아이에게 이제 희망이란 걸 얘기하게 됐다.
GS 전남창조경제혁신센터 2기 입주기업 ‘편죽-죽이지(easy)’ 대표인 도경란 씨(42) 얘기다.
○ 혁신센터에서의 두 번째 도전
4일 전남 여수시 덕충2길의 전남혁신센터에서 만난 도 씨는 500mL 용량의 페트병에 담긴 대추차부터 권했다. 곧 상품화될 것이니 꼭 맛을 봐 달라고 했다. 도 씨는 전남 여수와 순천 등 몇 곳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한 사업가와 ‘브런치 메뉴’로 전통죽과 전통차를 납품하는 계약을 맺었다. 이 대추차도 그곳에서 판매될 예정이었다.
시청 사회복지사였던 도 씨는 퇴직금 등을 보태 2012년 전통죽집을 냈다. 2004년 간암이 발병한 친정어머니를 6년간 수발하면서 ‘좋은 음식만큼 잘 듣는 약이 없다’는 생각이 강해졌다. 소화를 잘 시키지 못하는 어머니를 위해 끓여드렸던 된장죽, 대추죽, 타락죽(우유죽) 등이 주요 메뉴였다. 도 씨는 “당초 3개월 시한부 선고를 받았던 엄마가 제가 해 드린 음식으로 6년을 사셨고 편안하게 하늘나라로 가셨다”며 “가장 좋은 재료로 정성껏 만들기만 하면 어르신들께 도움도 드리고 사업도 성공할 줄 알았다”고 말했다.
의욕만 앞선 첫 사업은 실패로 끝났다. 우선 원재료 비용이 너무 많이 들었다. 유동인구가 많지 않은 곳에서 단골손님만 대상으로 장사를 하다 보니 매출액도 늘지 않았다. 결국 1억8000만 원을 손해 본 채 지난해 9월 가게를 닫았다.
그런데 이따금씩 가게에 들르던 노인들이 ‘집에서라도 죽을 쑤어 보내달라’고 부탁을 해왔다. 문제는 택배로 가는 동안 죽이 불어버린다는 것. 도 씨는 이에 반(半)조리 식품을 개발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두 번째 도전이었다.
“올해 대학에 입학한 큰아들과 초등학교 4학년인 둘째 아들이 있어요. 그리고 막내딸은 이제 갓 18개월이 됐고요. 두 번 다시 실패를 하면 안 되는 상황이었어요.”
전남혁신센터는 도 씨에게 하늘에서 내려온 ‘동아줄’이었다. 우선 센터에서 연결해준 기술보증기금이 8000만 원 안팎을 지원할 예정이다. 도 씨는 이 돈으로 33m²(약 10평) 정도의 작은 공장에 자동생산 장비를 갖추고 포장 디자인도 예쁘게 만들 계획이다. 그는 “아직 갈 길이 멀다”면서도 “혁신센터 분들이 마치 자기 일처럼 돕고 있어 든든하다”고 말했다.
○ 창농 위해 모여드는 예비창업가들
6월 2일 개소한 전남혁신센터에는 1기 4곳과 2기 5곳 등 모두 9개 기업이 입주해 있다. 전남혁신센터는 농수산식품, 바이오, 지역 관광 등의 분야에서 새로운 기업 및 예비창업가들을 적극 발굴해 최대 21개까지 입주기업을 늘릴 계획이다.
‘창농’을 꿈꾸는 예비창업가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도 전남혁신센터가 추진하는 핵심 과제다. 4일 찾은 센터 2층 교육장에서는 1기 창업아카데미 교육생 50명이 반을 나눠 이론 및 실습교육을 받고 있었다. 교육생은 20대부터 60대까지 연령대가 다양했다. 예비창업자인 한모 씨(30)는 이 교육에 참여하기 위해 지난달 중순 아예 다니던 회사를 그만뒀다. 한 씨는 “농수산업과 관련한 주변 사업들 중에서 창업 아이템을 찾고 있다”며 “그러기 위해서는 농수산업 자체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아야 한다는 생각에 열심히 배우고 있다”고 말했다.
전남혁신센터는 4주일간의 창업아카데미 교육이 끝나면 곧바로 3주일간의 고소득 농장 실습과정을 운영할 예정이다. 창업아카데미 수료자들 중 희망자가 우선 대상이다. 두 과정은 내년부터 분기마다 1회씩 진행한다. 실무 위주로 진행되는 교육 커리큘럼은 농수산업 관련 예비창업가들이나 귀농을 앞둔 은퇴자들에게 큰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정영준 전남혁신센터장은 “전남센터는 전국 창조경제혁신센터 중 농수산식품 부문에 가장 역점을 두고 있는 곳”이라며 “GS그룹의 판로개척 지원을 통해 이미 일부 기업은 성과를 내고 있다. 창농 교육은 지역 농수산업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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