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릿’ 오바마에 실망한 유권자들 ‘이기는 미국’ 리더십 원해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1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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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대선 1년 앞으로]<상>정치 양극화 혼돈의 미국

《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이을 새 백악관 주인을 뽑는 미국 대통령 선거가 내년 11월 8일 열린다. 벌써부터 민주당과 공화당의 대결로 뜨겁지만 판세는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을 정도로 안갯속이다. 민주당의 경우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 대세론이 주류이긴 하지만 ‘힐러리 염증’ 여론도 높고 공화당은 도널드 트럼프와 벤 카슨의 ‘빅2 아웃사이더’ 구도라는 초유의 상황을 맞고 있다. 클린턴과 카슨은 일대일 가상대결에서 똑같이 47%를 얻었다(4일 발표된 NBC-월스트리트저널 여론조사). 클린턴과 트럼프는 47% 대 38%였다. 여기에 그 어느 대선 때보다 무당파(無黨派·어느 당도 지지하지 않는 무리)가 급증하면서 기존 정치권에 대한 불신도 높아가고 있다. 미 대선을 1년 앞두고 ‘민심의 향배’를 주제로 3회 시리즈를 싣는다. 마지막 편은 유력 후보들의 ‘한국과 동북아’관(觀)이다. 》

요즘 가는 곳마다 미국인들이 대선 이야기를 곧잘 화제로 올리는 것을 보면 점점 대선정국으로 접어들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그러면서 느낀 점은 요즘 미국을 과연 하나의 ‘합중국’이라고 볼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어느 때보다 ‘민주 대 공화’로 갈라지며 전 사회가 일촉즉발의 긴장감이 감돌고 있는 상황이다. 클린턴은 지난달 13일 민주당 TV 토론에서 “적이 누구냐”는 사회자의 질문에 서슴없이 “공화당”이라고 답해 지지자들로부터 큰 환호를 받았다.

미 선거 전문가들도 요즘 구도는 과거 선거 때마다 흔히 벌어졌던 양당 대결 구도를 넘어 지지자들 간 ‘정치적 양극화(Polarization)’가 어느 때보다 심해지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실제로 갤럽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2014년 현재 자신의 정치적 성향을 ‘중도’라고 답한 비율은 39%로 20년 전 같은 조사에 비해 10%포인트나 줄었다. 정적(政敵)조차도 곧잘 포용하는 것으로 유명한, 관용에 익숙했던 미국 사회가 왜 이렇게 됐을까.

○ 벼랑 끝 공화당

무엇보다 미 최초의 흑인 대통령 버락 오바마에게 2009년부터 정권을 내준 공화당의 “더 이상 밀릴 수 없다”는 절박함이 가장 큰 요인으로 꼽힌다. 요즘 공화당 지지자들은 정권을 되찾아올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의지가 쉽게 읽힌다.

대통령의 자질에 대한 미국인들의 인식 변화를 보면 알 수 있다. 여론조사기관인 퓨리서치센터가 지난달 발표한 ‘민심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올 3월만 해도 공화당 지지자의 57%가 풍부한 정치·행정 경험을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자질로 꼽았다. 36%는 정치에 대한 새 아이디어와 색다른 접근 방식을 꼽았다. 반년 뒤인 9월에는 정반대 결과가 나왔다.

29%만이 풍부한 경험을 중시했고, 65%가 새 아이디어를 갖춘 후보를 내서 정권을 되찾아와야 한다고 답한 것. 기성 정치인들로는 클린턴을 꺾기 어려우니 새 판을 짜야 한다는 민심을 반영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트럼프와 카슨 같은 정치 경험이 전무한 ‘워싱턴 아웃사이더’들이 부상한 배경인 셈이다.

앨런 리크먼 아메리칸대 교수는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2차대전 후 민주당은 말할 것도 없고 공화당도 대선 후보들이 대부분 기성 정치권에서 나왔는데 ‘아웃사이더’들이 공화당 대선주자로 부상해 이렇게 오랫동안 선두권을 유지한 것은 전례가 없다”고 했다.

○ 강력한 리더십

이런 상황에서 민주, 공화당 지지자 모두 도덕성이나 유권자와의 공감 능력보다는 강력한 리더십을 바라고 있다. 뭐니 뭐니 해도 본선에서 ‘이기는 후보’가 필요하다는 여론이다.

트럼프와 카슨 지지자들도 이들의 리더십에 주목하고 있다. 4일 퀴니피액대 조사에서 공화당 지지자 중 29%가 트럼프가 ‘강한 리더십’을 갖고 있다고 답했고, 24%는 카슨이 그렇다고 봤다. 트럼프가 유세 때마다 말하는 게 ‘이기는 미국(winning America)’이다. 민주당 지지자 중에선 67%가 클린턴이 강한 리더십을 발휘해줄 것으로 기대했다.

우드로윌슨센터 로버트 달리 선임연구위원은 “선거에서 다른 당 후보를 꺾는 것은 물론이고 중국과 세계 패권을 놓고 경쟁해야 할 미국 대통령으로서 무엇보다 리더십이 중요한 덕목으로 간주되고 있다”고 했다. 이처럼 강한 리더십에 대한 갈망은 ‘햄릿’으로 불리며 한동안 우유부단한 리더십을 보여준 오바마 대통령에 대한 실망감이 깔려 있다는 시각도 없지 않다.

○ 늘어나는 무당파

현재 미국인들의 대선에 대한 관심은 역대 최고 수준이라는 게 현지인들의 전언이다. 공화당의 정권 교체 열기가 더 뜨겁지만 민주당의 정권 재창출 의지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퓨리서치센터 조사에서 2008년 오바마 대통령이 당선된 1년 전인 2007년 공화당 지지자 중 “대선에 관심이 있다”는 비율은 69%, 민주당 지지자들은 72%였는데 올해 9월 공화당 지지자들은 81%가 대선에서 투표하겠다고 답했다. 민주당도 8년 전과 비슷한 71% 선이었다.

하지만 이에 비례해 당분간 지지 후보 결정을 미루며 추이를 지켜보겠다는 사람들도 늘고 있는 것이다. 갤럽 및 퓨리서치센터 공동 조사에서 자신을 무소속이라고 밝힌 유권자는 1992년엔 36%였는데 2015년 9월 현재는 39%로 늘었다. 민주당이 32%에서 33%로 거의 변동이 없고, 공화당이 28%에서 23%로 줄어든 것과 대조적이다.

퓨리서치센터 캐럴 도허티 정치분석실장은 “어느 때보다 혼전인 상황에서 정치에 염증을 느끼고 있는 시민들이 많다는 증거이기도 하지만 무당파가 무투표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고 결국 누군가를 선택할 가능성이 높은 만큼 투표율은 역대 최고를 기록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워싱턴=이승헌 특파원 ddr@donga.com
#미국#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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