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호봉제 철밥통’ 금가는 소리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1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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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개혁에 속도를 내고 있는 금융당국이 일정 연차만 쌓이면 억대 연봉을 받는 은행권의 경직적인 임금체계를 개선하기로 했다. 자리만 차지하고 동료들의 성과에 묻어가는 사람보다 뛰어난 성과를 올린 행원이 더 많은 보상을 받게 한다는 취지다.

4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연구원은 5일 ‘은행의 바람직한 성과주의 확산’이라는 주제로 세미나를 연다. 세미나에는 금융위원회 금융정책과장이 패널로 참석해 경직적인 은행권 임금체계가 시정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할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위 관계자는 “국내 은행권에서는 개인의 성과가 보상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해 개선할 필요가 있다”며 “노사 간의 문제이므로 당국이 직접 개입할 수는 없지만 은행권 임금체계 변화의 필요성을 지속적으로 강조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앞서 진웅섭 금융감독원장도 지난달 27일 국민, 신한, KEB하나, 우리, 기업은행 등 10대 은행장과 만난 자리에서 성과주의에 연동한 임금체계의 필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현재 국내 은행들의 임금체계는 기본급에 실적을 바탕으로 한 성과급이 더해지는 일종의 ‘성과혼합형 호봉제’다. 기본급은 업무 성과와 관계없이 호봉제에 따라 근무연수가 늘수록 증가한다. 실적을 바탕으로 한 성과급도 대개 개인별 실적을 평가하지 않고 지점, 부서 등 집단의 실적을 바탕으로 지급된다. 개인의 실적이 저조해도 부서나 영업점 실적이 좋으면 묻어갈 여지가 있는 것이다. 권순원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한국의 금융업종 임금시스템은 비금융업에 비해 호봉제의 비율이 높으며 성과급도 개인보다 집단의 성과에 따라 지급되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금융당국은 이런 임금 체계가 ‘승진 포기자’ 등 업무 성과가 낮은 인력을 가려내기 어렵게 만드는 등 금융 산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있다고 보고 있다. 실제로 신한, 국민, 우리, 옛 하나, 옛 외환, 기업 등 국내 은행 6곳의 생산성은 점점 하락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2012년 8327만 원이던 ‘1인당 생산성’(당기순이익을 전체 직원 수로 나눈 것)은 2014년 6616만 원이었다. 2년 새 20%가량 떨어진 것이다.

당국의 문제의식에 은행들도 공감하는 분위기다. 발 빠른 일부 은행은 이미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KB국민은행은 지난달 ‘자기계발 및 영업실적 자가진단 서비스’를 내놓았다. 이 서비스는 개인별 영업실적과 자기계발을 기준으로 1∼7등급으로 구분해 알려준다. 은행 측은 “당장 평가에 반영되진 않는다”며 “직원들이 스스로 자신의 영업실적과 자기계발 수준을 종합적으로 진단할 수 있게 하기 위해 개발한 객관적인 지표”라고 설명했다.

현재 노조의 거센 반발로 잠시 서비스가 중단됐지만 국민은행은 이 시스템을 보완해 최대한 빨리 재개할 계획이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집단으로만 평가를 받던 행원들이 개인의 등급을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산업은행도 최근 ‘직무급제’를 일부 적용해 임금체계를 손질했다. 텔러와 외국환 업무 종사자들에게 별도의 임금체계를 적용키로 한 것이다. 종전까지는 일반 직군과 임금체계가 같았지만 이달부터는 별도 직군으로 분류돼 다른 임금 시스템이 적용된다.

다른 은행들도 이 같은 흐름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한 시중은행 부행장은 “금융당국이 성과에 따른 보상을 강조하고 있어 최근 경쟁은행들의 움직임을 살피고 있다”며 “한두 은행이 변화를 시도하면 다른 은행들도 결국 따라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지만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는 “제조업과 달리 은행과 같은 서비스업은 보상에 따라 생산성이 아주 예민하게 좌우된다”며 “해외 글로벌 은행들을 벤치마킹해 직군을 세세히 나눠 다른 임금체계를 적용하는 방안 등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윤정 기자 yunjung@donga.com
#은행#호봉제#철밥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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