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하태원]박 대통령이 밥을 먹지 못한 이유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1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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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뒤 펼쳐질 일을 어찌 짐작이나 했겠나. 이명박 당시 대통령이 우리 국가원수로는 최초로 2012년 독도를 전격 방문한 직후의 일이다. 박근혜 캠프 총괄본부장이던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청와대가 일종의 포퓰리즘을 하고 있는 것”이라며 “그 대가는 다음 정부가 지는 것 아니냐”고 했다.

누가 봐도 ‘박심(朴心·박근혜 대통령의 마음)’을 반영한 것처럼 들렸다. “직접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그런 것 아니냐”는 단서를 달기는 했지만….

최경환의 ‘상식’은 하루 만에 부정당했다. 그것도 박 대통령의 육성을 통해. 어쩌면 최측근으로 통하는 최경환조차 박 대통령의 ‘반일 코드’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당시 야당은 유력 대권후보 박근혜의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을 겨냥해 대대적인 ‘친일 공세’를 펼치고 있었다. 야당 대선후보가 된 문재인 민주통합당 의원은 “박 전 대통령이 1965년 한일수교협상 당시 딘 러스크 미 국무장관에게 ‘문제 해결을 위해 그 섬(독도)을 폭파시켜 없애고 싶다’고 말했다”는 주장도 내놨다.

대선을 4개월 앞둔 집권당 후보 입장에서 군 최고통수권자가 명백한 우리 영토를 방문한 사실 자체를 공개 비판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게다가 일본은 박 대통령 부녀가 반드시 극복해야 할 중대한 과거사 중 하나였으리라.

공교롭게도 박 대통령 당선 이후 한일관계가 더 어려워질 수 있다는 전문가들의 우려는 현실이 됐다. 2013년 3·1절 기념사 ‘천년(千年) 발언’이 나온 것이 대통령 취임 후 불과 5일 만의 일이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역사적 입장은 1000년의 역사가 흘러도 변할 수 없다”는 발언에 일본 열도는 아연실색했다. 역대 한국 대통령들이 임기 초반 한일관계의 리스크 관리를 위해 비교적 유화적 발언을 내놨다는 점과도 대비됐다.

최경환이 반면교사였을까? 우리 외교안보 참모들은 하나둘 대일외교의 전사(戰士)를 자임하기 시작했다. 2013년 4월 아소 다로(麻生太郞) 일본 부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에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방일 취소로 응수했다. 초강수였다. 윤 장관은 “내 자발적 결정”이라고 강조했다.

이후 정부에서 일본과 대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았다. 일본의 악행(惡行)이 한일관계 파탄의 근본원인을 제공했다는 사실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이 많지 않겠지만 과거사 문제와 여타 한일 협력 문제를 애초부터 ‘디커플링(decoupling·분리대응)’하지 못한 것은 아쉽다.

현 정부 초기 외교안보정책 결정 과정을 잘 아는 인사는 “주변 참모들이 박 대통령의 뜻을 잘못 읽고 외골수로 간 것 같다”고 평가했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 문제를 둘러싼 여야 대치가 최악의 상태로 치닫는 상황에서 박 대통령이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와 유연하게 협상에 임하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한 일이었을 수도 있다.

박 대통령의 개인사와 국내정치가 대외관계 선택지를 심각하게 제약하고 있는 셈이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관련한 ‘결정적인 돌파구’ 마련이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대통령으로서는 한가하게 웃으며 아베와 밥을 먹을 이유도, 여유도 없었을 것이다.

위안부 문제 조기 타결을 위한 양국 간 협의를 가속화하기로 했다는 2일 한일 정상회담 결과는 철저히 국내용 메시지로 들린다. 선언만 있을 뿐 ‘내용’이 없다. 3년 반을 기다린 끝에 양국 정상이 98분 동안 만난 뒤 나온 결론이다.

하태원 정치부 차장 triplets@donga.com
#한일 정상회담#위안부#디커플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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