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필 사진, 사람만 찍으란 법 있나요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1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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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별난 애정일까, 이제는 자연스러운 문화일까. 반려동물의 ‘프로필 사진’과 ‘화보’를 전문 스튜디오에서 찍어주는 사람이 늘고 있다.

반려견을 키우는 이다경 씨(25·여)의 거실엔 한 살배기 마루의 사진이 걸려 있다. 이 씨는 두 달 전 동물 전문 스튜디오에서 마루의 사진을 찍었다. 이 씨는 “가족이 퇴근하면 누구보다 반겨주고 애교로 웃음을 주는 마루의 예쁜 모습을 간직하고 싶었다”며 “아기 돌 사진을 찍는 것과 비슷한 이유”라고 했다. 하지만 그의 집을 찾은 친척들은 “유별나다”며 고개를 가로젓는다고 한다.

토끼 ‘랄라’의 주인 이순지 씨(29·여)는 ‘미래를 준비한다’고 표현했다. 수명이 짧은 반려동물이 죽음을 맞이할 때를 대비해 미리 사진으로 남긴다는 것이다. 이 씨는 “토끼의 평균 수명이 5년인데 ‘무지개다리를 건너’(동물의 죽음을 의미하는 말)더라도 ‘랄라’와 함께한 순간을 간직하고 싶다”고 했다. “어떤 의미에서는 ‘영정 사진’이라고 볼 수 있다”고 했다.

사진작가 현창익 씨(30)의 반려동물 전문 스튜디오는 매달 동물 15∼20마리를 촬영한다. 현 씨는 “지난해 스튜디오를 열었을 때 생소하다는 반응이 많았지만 요즘은 하루에 문의 전화가 2, 3통씩 온다”고 했다.

현 씨도 동물을 좋아해 일을 시작했지만 특별한 손님들이 찾는 만큼 그 나름의 고충도 있다고 한다. 개들은 스튜디오를 찾으면 모두 같은 장소에 마킹(소변으로 영역 표시를 하는 행위)을 한다. 현 씨는 “항상 최선을 다해 깨끗이 닦는데도 개들만 맡을 수 있는 냄새가 나는 것 같다”고 했다.

고양이 손님이 오면 하루 전부터 구석구석 청소를 해야 한다. 고양이들은 낯선 장소에 가면 구석으로 숨어들기 때문이다. 현 씨는 “계단 아래처럼 생각지도 못한 곳에 숨어 고양이가 먼지투성이가 된 적이 있다”며 “스튜디오가 지저분해 보이고 주인에게도 민망해 그 뒤로 청소를 정말 열심히 한다”고 했다.

지난해 반려동물을 주제로 사진전을 열었던 예술가 금혜원 씨(36·여)는 이런 현상을 두고 “반려동물은 이해관계 없이 순수하게 나를 따라주기에 많은 사람이 위로를 받는 듯하다”며 “경쟁에 시달리는 현대인의 고독한 정서를 보여주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현 씨는 두 달 전 고양이 ‘각군’을 촬영할 때를 떠올리며 “가족을 사랑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느꼈다”고 했다. 한 부부가 죽음을 앞둔 고양이를 데리고 오후 11시 스튜디오를 찾았다. 퇴근도 미루고 사진을 찍었고 고양이는 이틀 뒤 세상을 떠났다. “그날 밤은 저도 숨죽이고 촬영에 몰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말하지 않아도 깊은 슬픔이 느껴졌거든요.”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프로필 사진#애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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