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길냥이 급식소’… 서울시의 공존 실험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0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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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25만마리… 캣맘갈등 해소나서
11월부터 대형공원 4곳서 운영… 포획틀 설치해 중성화수술도
주변 주민 반발-생태계 교란 우려

서울 강동구에 설치된 길고양이 급식소에서 고양이 2마리가 사료를 먹고 있다. 서울시는 다음 달부터 이보다 크고 포획틀까지 갖춘 급식소 30여 개를 주요 공원 4곳에 설치해 운영하기로 했다. 강동구 제공
서울 강동구에 설치된 길고양이 급식소에서 고양이 2마리가 사료를 먹고 있다. 서울시는 다음 달부터 이보다 크고 포획틀까지 갖춘 급식소 30여 개를 주요 공원 4곳에 설치해 운영하기로 했다. 강동구 제공
길고양이와 인간의 평화로운 공존은 실현될 수 있을까. 이를 가늠할 수 있는 ‘실험’이 다음 달에 진행된다. 서울시가 다음 달 초 시내 대형 공원 4곳(서울숲, 보라매공원, 월드컵공원, 용산가족공원)에 길고양이를 위한 ‘급식소’ 30여 개를 설치해 운영하기로 한 것이다. 앞서 서울 강동구가 2013년 5월 자체적으로 시작한 길고양이 급식소 사업이 2년 만에 서울 전체로 확대되는 것이다.

20일 서울시와 동물보호단체 등에 따르면 이번에 설치될 길고양이 급식소는 가로 60cm, 세로 1m 크기의 나무상자다. 강동구가 설치한 급식소(가로세로 30cm)보다 크다. 이처럼 상자가 커진 이유는 안에 사료와 물, 그리고 포획틀이 설치되기 때문이다. 서울시는 길고양이가 쓰레기통을 뒤지는 등 주민 생활에 불편을 주지 않도록 급식소에서 안정적으로 먹이를 주는 한편 중성화수술(TNR)도 함께 실시할 계획이다. 이미 수술을 받은 고양이는 바로 풀어준다.

길고양이 급식소는 서울숲(70∼80마리)과 보라매공원(50∼60마리)에 각각 10∼15개, 월드컵공원과 용산가족공원에 각각 5개가 설치된다. 서울시는 동물보호단체 4곳(동물자유연대, 카라, 나비야사랑해, 한국고양이보호협회)에 급식소 관리를 맡기고 여기서 포획한 고양이 TNR 비용까지 지원할 방침이다. 박태주 서울시 동물보호과장은 “25만 마리가 넘는 서울의 길고양이를 일일이 관리하는 건 불가능하다”며 “사료와 물로 유인해 중성화수술을 시키는 게 이 사업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무조건 고양이를 쫓아내는 방식에서 벗어나 사람이 직접 관리하는 시스템을 구축해 ‘길고양이 갈등’을 해소하겠다는 것이다.

길고양이와 관련한 민원은 대부분 △음식물 쓰레기를 헤집거나 △번식기 또는 먹이·영역 다툼 중에 내지르는 울음소리로 인한 것이다. 동물보호단체인 카라의 전진경 이사는 “중성화수술을 받은 고양이는 공격성이 줄기 때문에 소음 문제가 크게 개선될 수 있다”며 “먹이가 충분하면 쓰레기장 출입도 방지할 수 있어 급식소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길고양이 출현을 꺼리는 공원 이용객과 근처 주민들의 반발도 예상된다. 조희경 동물자유연대 대표는 “급식소를 되도록 눈에 안 띄는 숲 속이나 구조물 아래에 설치하고 주변을 깨끗이 관리하겠다”고 말했다. 먹이가 풍부해진 공원으로 고양이 무리가 몰려들 경우 공원 생태계가 훼손될 우려도 제기된다. 2013년 서울시 조사에 따르면 월드컵공원에만도 맹꽁이, 고라니, 삵 등 도심에서 보기 드문 야생동물이 많이 서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 이사는 “중성화수술을 실시하면 3km가 넘는 수컷 고양이의 생활 반경이 500m 이내로 줄어들기 때문에 서식 반경 제어가 충분히 가능하다”고 내다봤다.

서울시는 이번 사업의 결과를 지켜본 뒤 내년부터 길고양이가 많이 사는 일반 주택가에도 급식소를 설치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

이철호 기자 irontiger@donga.com
#길냥이#고양이#캣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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