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업 구조조정, 갈지자 항해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0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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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국, 방향 못잡아 업계 혼란

자율협약 중인 성동조선해양은 지난달 삼성중공업과 경영협력을 맺었다. 성동조선이 육상에서 건조한 일반 화물선을 바다에 띄우는 장면. 성동조선해양 제공
자율협약 중인 성동조선해양은 지난달 삼성중공업과 경영협력을 맺었다. 성동조선이 육상에서 건조한 일반 화물선을 바다에 띄우는 장면. 성동조선해양 제공
최근 정부가 산업 구조조정을 연일 강조하면서 조선업계도 대상으로 등장했다. 그러나 정부가 구조조정의 필요성만 강조할 뿐 구체적인 방안은 내놓지 않고 있어 조선업계는 혼란에 빠졌다.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12일 “플레이어(참여 회사)를 줄이면서 조선사 간 중복되는 부분을 정리해야 한다”고 발언했다. 하지만 조선업계에서는 구조조정 성과에만 치우치면 업계 전체가 쪼그라들게 돼 시황이 회복됐을 때 중국에 시장을 내줄 우려가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8월 진웅섭 금융감독원장은 ‘비 오는데 우산 뺏는 식’의 영업을 하지 말라며 조선업계에서 대출을 회수하려는 분위기이던 채권단에 제동을 걸었다. 반면 이달 10일(현지 시간)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페루 리마에서 “구조조정을 채권단의 자율적 결정에만 맡겨두니 성과가 지지부진하다”며 정부가 구조조정을 주도할 방침을 내비쳤다. 그러나 막상 산업부와 금융위원회는 “아직 구체적인 방향이 정해지지 않았다”고 밝히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SPP조선 주채권은행인 우리은행은 “정부 방침이 나올 때까지 기다릴 수 없으니 투입한 자금 중 일부라도 회수하고 주인을 찾아주겠다”며 SPP조선 매각 작업을 시작했다. KDB산업은행은 이달 중 대우조선해양 실사 결과를 바탕으로 지원 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이에 대해 중소 조선업체의 한 관계자는 “정부가 구조조정을 한다는 것이 채권단에 돈줄을 죄라는 의미인지, 지원을 해주라는 것인지, 부실기업을 퇴출시키라는 것인지 알 수 없어 매일매일 조마조마하다”고 말했다.

이미 채권단은 자체적으로 조선업체들의 돈줄을 죄고 있다. 대우조선은 6월 머스크라인으로부터 컨테이너선 11척을 수주했다. 산은과 한국수출입은행은 11척에 대해 선수금환급보증(RG)을 발급해줬다. RG는 조선사가 파산할 경우 은행이 선수금을 대신 돌려주겠다고 약속하는 보증으로, 계약에 반드시 필요한 절차다. 발주처인 머스크라인은 선수금을 채권단에 지급했다. 그러나 수출입은행은 대우조선의 신용등급이 내부 기준에 미달한다는 이유로 받은 선수금의 40%(약 400억 원)를 대우조선에 주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대우조선은 자재 구매 등을 위한 유동성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SPP조선은 지난해 5월 이후 선박 수주를 한 건도 하지 못했다. 채권단이 “지금 수주해 봐야 저가 수주일 뿐”이라며 RG 발급을 해주지 않아서다. SPP조선은 지난달 5만 t급 탱커(유조선의 일종) 1척을 4500만 달러(약 517억 원)에 계약했다. 2개월 내에 RG를 받는다는 조건이다. SPP조선은 “꽤 좋은 가격에 계약했다”고 하지만 RG 발급은 감감무소식이다. SPP조선 수주 잔량은 약 20척으로 내년 말까지는 조업이 가능하다. 그러나 계약 후 건조에 돌입하기까지 2년이 걸리는 점을 감안하면 당장 신규 수주를 못할 경우 후년 일감이 없어진다.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 등 ‘빅 3’를 제외한 중대형 조선사 대부분은 현재 채권단과 재무구조개선약정(한진중공업) 또는 자율협약(성동조선해양, STX조선해양 등)을 맺었거나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대한조선, 신아에스비 등)를 밟고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문을 닫은 업체는 삼호조선, 21세기조선 등 10곳이 넘는다. 그러나 후방산업의 연계 효과가 큰 조선산업 특성상 ‘한계기업 지원→금융 부실→경제위기’ 잣대를 무조건 들이대면 업계 전체가 무너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양종서 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 선임연구원은 “무리하게 구조조정을 하면 핵심 인력들이 중국으로 빠져나가 기술 격차를 빠르게 좁힐 우려가 있다”며 “시황이 회복됐을 때 국내 업체가 잃어버린 중소형 선박 시장을 중국 업체에 잠식당할 우려도 있는 만큼 구조조정은 산업 경쟁력 시각에서 바라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강유현 기자 yhkang@donga.com
#조선업#구조조정#당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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