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 없이 표류하는 26조 원 전투기 사업

  • 주간동아
  • 입력 2015년 10월 7일 12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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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동아 1007호/국방]
美 기술이전 거부에 청와대 이례적으로 검증 착수…김관진 실장도 검증 대상 포함돼나

비행 중인 F-35A.
비행 중인 F-35A.


2030년대까지 중간급 국산 전투기를 개발하겠다는 야심 찬 포부로 시작된 한국형 전투기(KFX) 사업에 적신호가 들어왔다. 미국산 F-35A 전투기를 구매하면서 개발에 필요한 핵심 기술 일부를 이전받기로 했는데 미국 정부가 이를 거부한 것이 알려지면서 사업 전반에 대한 불신이 짙어진 것. 심지어 청와대가 이례적으로 이 사업을 직접 검증하겠다고 나서면서 한 치 앞도 내다보기 어려운 형국이 됐다.

기술이전 문제가 쟁점이 된 것은 9월 22일 국회 국방위원회 국정감사에서였다. AESA(능동위상배열) 레이더 등의 장비 체계통합 기술 4건에 대해 미국 정부가 이전 거부를 표명한 것을 두고 정경두 공군참모총장이 “(4건에 대한 기술이전은) 계약 당시에도 어렵다 생각하고 계약했다”고 답변한 것이 화근이었다. 여론은 순식간에 비등점을 넘었다.

얽히고설킨 FX와 KFX 사업

미국의 기술이전은 우리 공군의 차기전투기(FX) 사업과 KFX 사업에 연관돼 있다. 공군은 전투기 양보다 질을 우선시하는 구조로 전력구조 개혁을 추진하고 있으며 FX와 KFX 사업은 이를 위한 핵심 사업이다. 사업비 규모도 각각 7조4000억 원, 18조4000억 원으로 총 26조 원에 육박하는 초대형 사업이다.

고급 기종은 국내 기술이 아직 부족하기 때문에 국외 구매로 도입(FX 사업)하고 중간급 기종은 자체적으로 개발(KFX 사업)하겠다는 것이 공군 전력구조 개혁의 골자다. 다만 아직 국내 기술로 중간급 기종을 개발하는 데 일부 부족한 점이 있어 KFX 사업을 위해 필요한 기술을 FX 사업을 통해 들여오기로 했다. 그만큼 FX 사업의 기종 선정에서 기술이전은 중요한 사안이었다.

무기 도입을 비롯한 국방 관련 대형 국책사업은 단순히 가격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해당 물자를 구매할 때 구매국에 필요한 기술을 이전해주거나 구매국에서 부품을 생산할 수 있도록 도와줄 것 등을 요구하기도 한다. 이를 절충교역(offset)이라 한다.

2012~2013년 당시 록히드마틴의 F-35A와 보잉의 F-15SE, 에어버스(당시 EADS)의 유로파이터 타이푼이 FX 사업 도입 기종 자리를 놓고 경쟁했다. 기술이전에 까다로웠던 록히드마틴과 달리 보잉과 에어버스는 적극적인 기술이전을 제안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처음에는 보잉의 F-15SE가 유일하게 방위사업청(방사청)의 요구조건을 만족시켜 단독후보로 올랐으나, 2013년 9월 방위사업추진위원회에서 이를 부결했다. 당시 이 결정은 방사청 평가를 무시하고 F-35A를 구매하기 위한 결정이 아니냐는 의혹을 받았다. 결국 방위사업추진위원회는 2014년 3월 F-35A 40대를 구매하기로 결정했다.

록히드마틴이 기술이전에 인색하다는 것은 이미 언론을 통해 널리 알려진 사실. 이 때문에 3월 KFX 사업자가 한국항공우주산업(KAI)으로 확정돼 사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자 가장 먼저 제기된 질문도 ‘과연 기술이전이 제대로 이뤄질 것인가’였다. 당시 방사청 관계자는 언론 브리핑에서 “우리가 제시한 절충교역은 기본적으로 어느 정도 수출 승인이 다 나올 것으로 예측한다”며 “항공기를 개발하는 데는 큰 차질이 없을 것”이라고 답했다.

그러나 미국 정부가 4건의 기술에 대해 이전이 불가하다고 통보하면서 KFX 사업은 차질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이 기술들은 레이더, 추적 장비, 전파방해 장비 같은 항전장비를 기체에 장착하는 체계통합 기술이다. 방사청은 4건의 기술에 대해 해외 업체와 기술협력 방안 등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사실상 거의 유일한 대안이다.

그러나 여기에도 문제는 따른다. 일단 비용이 늘어난다. FX 사업으로 기술이전을 받는 것을 전제로 했을 때와 달리, KFX 사업 파트너인 록히드마틴이나 제3업체를 통해 체계통합을 하면 추가비용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정확히 얼마가 늘어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각각의 사업 모두 요구조건 등이 다르기 때문에 방위산업에는 ‘정가’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다. 비슷한 체계통합 사업의 최근 사례라면 KF-16 전투기 134대의 성능개량 사업을 들 수 있다. 당시 항전장비 체계통합에 1조3000억 원가량의 사업비가 책정됐다.

비용 증가, 사업 지연? 사업 취소 가능성도

록히드마틴을 통할 경우 높은 비용을 부담하더라도 미 정부의 통제로 기술이전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할 공산이 크다. 김민석 한국국방안보포럼 연구위원은 미국산 기체와 체계통합을 성공시킨 적 있는 유럽 업체의 제품을 구매한 다음, 추가 생산이나 개량을 통해 온전히 우리 기술로 대체하는 대안을 제시했다. “스웨덴 사브는 록히드마틴과 협력해 그리펜 전투기를 개발한 바 있고, 이탈리아-영국 합작법인 셀렉스는 자사 레이더를 미국제 무인기에 통합한 바 있다.”

다음 문제는 사업 지연에 따른 공군 전력 공백의 심화다. 공군이 직면한 가장 큰 위기는 바로 전투기 노후화다. 1960년대 개발돼 노후화가 심각한 F-5와 F-4 기종은 보유 대수로는 여전히 공군의 주력 기종이다. F-4는 이미 도태가 시작됐으며 F-5도 곧 그 뒤를 따라야 하는 운명이다.

공군은 2019년쯤 전투기 보유 대수가 적정수보다 100여 대 부족해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문제는 이것도 현재 추진 중인 사업들이 정상적으로 이뤄질 때를 가정한 점이라는 사실. KFX 사업이 다른 업체를 통한 항전장비 체계통합을 추진할 경우 사업은 추가적인 협상과 계약 등으로 계획보다 더욱 지체될 수밖에 없다.

비용 증가와 사업 지연은 KFX 사업 자체를 취소시킬 수 있을 정도로 심각한 문제다. 김민석 연구위원은 “KFX 사업이 1~2년만 순연돼도 사업 자체를 취소하고 F-35A를 추가로 도입하자는 의견이 힘을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KFX 사업에 필요한 예산 확보에도 제동이 걸릴 수 있다. 2013년 당시 국회에서는 레이더 등의 체계통합에 관해 미국 측의 수출 승인을 확보하는 것을 KFX 예산집행의 선결 과제 가운데 하나로 요구한 바 있다. 이제 관련 4건의 기술에 대한 수출 거부가 확인됐기 때문에 KFX의 예산 확보에 난항이 예상된다. 10월 말부터 시작될 예정인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의 예산안조정소위에서 KFX 사업은 또다시 진통을 겪을 전망이다.

사실 미국 측의 기술이전 거부는 예견된 일이었다. 김종대 ‘디펜스21플러스’ 편집장은 기술이전 거부에 대해 “전문가들이 오래전부터 제기해온 문제다. F-35A로 결정할 때부터 답을 내리고 갔어야 했던 문제인데, 기종이 결정되고 지금까지 2년 동안 아무런 대처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절충교역 대상이던 4건의 기술에 대해 미 정부가 거부 의사를 밝혔으니 F-35A 도입 계약을 재검토할 수 있지 않을까. 국정감사 당시 국방위원회 위원들도 비슷한 의문을 갖고 있었다. 여기서 방사청의 황당한 계약 관리 실태가 드러난다.

“명확하게 그 부분이 계약돼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계약엔 문제가 없다.”

9월 22일 국정감사 당시 정경두 공군참모총장의 답변이었다. 도대체 이게 무슨 말일까. 방사청의 해명을 들어보면 그야말로 가관이다. 이 4건의 기술은 2013년 FX 사업 절충교역 협상 시 미 정부 정책에 따라 록히드마틴이 제안을 거부한 기술이었는데, F-35A로 기종을 선정하고 계약을 추진하면서 합의각서(MOA)에 미 정부의 수출 승인을 전제로 제공하기로 명시했다는 것이다. 미 정부가 문제가 된 4건의 기술에 대해 수출 승인을 하지 않을 것임은 록히드마틴이 제안을 거부했던 2013년부터 명약관화했다. 그럼에도 방사청은 ‘미 정부의 수출 승인’이라는, 애초부터 가능성 없는 전제를 가지고 합의각서에 4건을 추가하는 ‘꼼수’를 부린 것이다.

2012년부터 올해까지 FX 사업의 기술이전 협상 과정을 살펴보면 한숨만 나온다. 당초 록히드마틴, 보잉, 에어버스가 경쟁하던 2012~2013년 방사청은 51건의 기술이전을 요구했고 록히드마틴은 21건만 가능하다고 합의했다. 2014년 F-35A를 선정하고 계약을 맺을 때 방사청은 이전보다 줄어든 42건을 요구했으나 록히드마틴은 요지부동이었다. 결국 꼼수로 4건을 추가하면서 25건에 대해 합의했지만 결국 미 정부의 거부로 다시 21건으로 돌아왔다.

여기서 정부의 총체적인 관리 부실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김종대 편집장은 FX와 KFX 사업을 두고 “주인 없는 사업”이라며 정부의 부실한 관리를 비판했다. “과거에 이런 주요 사업들은 국방부 장관이 직접 챙겼다. 지금은 청와대나 국방부도 방관만 하고 있는 실정이다.”

민정수석실 방사청에 자료 요구


급기야 청와대가 사업에 대한 검증에 착수했다. 청와대 민정수석실은 9월 25일 방사청에 KFX 사업 관련 자료를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민정수석실은 대통령 친·인척과 공직자에 대한 감찰 및 조사를 총괄하는 부서로, 흔히 대통령 직속 사정·정보기관으로 인식된다. 이 때문에 그 의도와 앞으로의 전개 가능성에 대해 많은 추측이 나돌고 있다.

기종 선정 이후 록히드마틴과의 기술이전 절충교역 협상 과정에 대해 조사할 것이라는 예상부터, F-35A 기종 선정 과정에서 방사청과 군 당국의 비위 가능성을 조사할 것이라는 예상까지 나온다. 일각에서는 F-35A 선정 당시 방위사업추진위원장이던 김관진 국가안보실장까지 조사 대상에 포함되는 것 아니냐는 추측을 제기하기도 했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민정수석실에서 방사청 측에 관련 자료를 요구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이 ‘조사’는 아니다. 방사청이 잘못된 팩트를 흘리면서 ‘언론 플레이’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민정수석실이 방사청에 자료를 요구한 이유에 대해서는 “청와대 전체적으로 함구령이 떨어졌다”며 답변을 피했다.

민정수석실이 방사청에 관련 자료를 요구한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이는 대통령의 의중이 반영되지 않고서는 이뤄지기 힘들다. 다만 아직까지는 대통령의 의중을 확대 해석하기 어렵다. 대면보고를 기피하는 것으로 알려진 박근혜 대통령의 성향상 자신의 직속기구에 단순히 상황 파악을 의뢰한 것일 수도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FX 사업의 기종 선정부터 절충교역 협상까지 모두 현 정권에서 진행된 일이라는 사실이다. KFX 사업이 탈선하기 시작한 것은 당시 국방부 장관이던 김관진 실장이 기존의 방안을 뒤집고 F-35A로 기종을 결정하면서부터였다. 방사청에 사정의 칼날을 들이댈 경우 박근혜 정권도 책임론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26조 원짜리 초대형 국책사업이 주인 없이 표류하다 맞닥뜨린 파국은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김수빈 객원기자 subinkim@donga.com
<이 기사는 주간동아 2015.10.07.~10.13|1007호 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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