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리그의 ‘DNA’, 흐지부지 되면 안 되는 이유는…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9월 14일 16시 4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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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선수는 스피드가 좋아요” “저 선수는 활동 반경이 넓죠”. 국내 프로축구 중계에서 듣는 멘트다. ‘감(感)’은 오지만 거기까지다. 스피드가 얼마나 빠른지, 이동 범위가 어떻게 넓은지는 알 수 없다. 숫자로 콕 찍어 말할 수 없으니 짐작만 할 뿐이다. 구체적인 정보로 얘깃거리를 만들어 주는 야구와는 차이가 크다. 레너드 코페트는 ‘야구란 무엇인가’에서 “야구 통계가 흥미롭고 신빙성이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타자, 투수, 야수의 개별적인 활동을 쉽게 판별할 수 있기 때문이다. 22명이 동시에 움직이는 미식축구나 플레이가 끊임없이 연결되는 농구, 하키, 축구와는 크게 다르다”고 적었다.

▷코페트가 이 책을 처음 썼을 때는 1960년대였다. 야구에서도 요즘 같은 다양한 통계기법이 나오기 전이었으니 ‘22명이 동시에 끊임없이 움직이는’ 축구는 통계와 가까이 하기에 너무 먼 당신이었으리라. 세월이 흘러 도구가 발달했다. 축구 선수의 움직임 하나하나도 데이터로 만들 수 있는 시대가 됐다. 2008년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중계를 본 국내 축구팬들은 새로운 경험을 했다. 익숙했던 볼 점유율, 패스 성공률은 기본이고 뛴 거리와 활동 반경, 순간 속도까지 TV 화면을 통해 실시간으로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브라질 월드컵에서 독일이 우승했을 때 일부 외신은 ‘12번째 선수’로 ‘빅데이터’를 꼽았다. 일본 J리그도 3년 전부터 이를 활용하고 있다.


▷K리그는 5월 ‘DNA’(Data and Analysis)를 도입했다. 2년 전 장기 비전을 수립할 때 이를 포함시켰고 올해부터 문화체육관광부의 예산을 받아 실행하게 됐다. 현재 K리그가 제공하는 데이터는 크게 두 가지. 하나는 영상 분석이다. 녹화한 경기를 돌려 보며 선수들의 움직임을 입력시킨다. ‘사후 수작업’이라 시간이 많이 걸린다. 대표적인 결과물이 ‘히트 맵’이다. 선수가 볼을 소유한 위치를 분석한 것이다. ‘슈틸리케호’의 샛별로 떠오른 수원 권창훈의 사례를 보자(그림). 그는 시즌 초만 해도 공격보다는 전체적으로 경기를 풀어가는 역할을 맡았다. 그림을 보면 짙은 부분이 자기 진영에 몰려 있다. 하지만 정대세의 이적 후 권창훈은 전진 배치됐다. 공격에 적극 가담하면서 활동 폭이 커졌다. 울리 슈틸리케 감독은 권창훈의 이런 능력을 대표팀에서 십분 활용했다.

▷다른 하나는 유럽리그나 월드컵에서 봤던 트래킹 시스템이다. 20개 안팎의 특수카메라가 수집한 자료를 바탕으로 선수의 움직임, 순간 스피드, 공의 이동 방향까지 실시간으로 보여준다. 빠르고 유용하지만 첨단장비를 갖춰야 하기에 비용이 문제다. K리그에서 영상분석은 클래식과 챌린지 전 경기를 대상으로 하면서도 트래킹 분석은 클래식 10경기로 한정한 것도 그래서다. DNA의 장점은 많다. 기존에 접하기 어려웠던 태클 시도와 성공, PA(패널티 에어리어) 진입 및 가로채기 횟수 등을 알고 나면 이 선수가 골은 덜 넣어도 팀에 얼마나 많은 기여를 했는지를 평가할 수 있다. 팬들과 언론은 풍부한 콘텐츠를, 구단은 전력 강화를 얻을 수 있다. 뭐든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다. 많이 보여야 더 즐길 수 있다. 늦었지만 어렵게 시작한 K리그의 DNA가 예산 부족 등의 이유로 흐지부지 되는 일은 없기 바란다.

이승건 기자 w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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