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구자룡]최룡해 방중을 통해 본 중국과 남북 관계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9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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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자룡 베이징 특파원
구자룡 베이징 특파원
3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전승절 70주년 기념 열병식을 전후로 중국이 남북한을 대하는 태도에 변화가 있다는 분석이 잇따른다. 북-중이 과거 '항미(抗美) 원조전쟁'(6·25전쟁의 중국식 표현)을 같이한 혈맹이었지만 2013년 2월 3차 핵실험 이후 냉각돼 이제는 동맹국이라고 부를 수도 없을 정도로 소원해졌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장면이 시진핑 국가주석이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를 대신해 참석한 최룡해 비서를 면담하지 않았고 중국 관영TV는 열병식을 현장에서 생중계하면서 톈안먼 성루 위에 선 최룡해를 전혀 비추지 않았다는 것이다.

반면 박근혜 대통령은 열병식 전날 시 주석과 정상회담을 하고 이번 열병식 참석 정상 가운데 유일하게 단독 오찬을 했다. 또 톈안먼 성루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다음으로 시 주석과 함께 자리함으로써 중국과 남북 간 관계 변화를 극적으로 보여줬다.

박 대통령은 4일 상하이를 거쳐 귀국하면서 ‘중국과 조만간 한반도 통일 논의를 하겠다’고 말했고 이튿날 청와대가 한중 간 여러 채널을 통해 ‘통일 논의’가 진행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중국이 어떤 의도로 한국과 한반도 통일 논의를 하려는지 알 수 없다. 다만 한중 정상회담 후 나온 당국 설명이나 관영 언론 보도 어디에도 ‘한중 간 한반도 통일 논의’에 대한 언급이 없다. 한 중국 전문가는 “비록 북한과의 관계가 최근 몇 년간 냉각 상태지만 그렇다고 북한을 빼고 한중이 한반도 통일 논의를 하는 것은 북한과의 관계를 끝장내지 않고서는 할 수 없다”고 말했다.

베이징의 한 소식통은 “중국과 한반도 통일 논의를 하는 것은 자칫 중국이 (한반도 문제에) 개입하는 빌미를 줄 수 있어 바람직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남북한 문제에 주변 강대국이 훈수를 두는 상황을 만들면 결정적인 순간에 동의를 구해야 하는 자충수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중국은 ‘최룡해 홀대설’도 부인하고 나섰다. 중국 외교부는 7일 정례브리핑에서 최룡해가 중국 지도자와 만나지 못한 것이 ‘중국이 북한에 불만을 표시한 것 아니냐’는 질문에 “사실과 다르다”고 말했다. 이튿날 관영 환추시보는 사설에서 “한중 관계가 뜨거워진다고 한미 관계가 (별다른) 영향을 받지 않은 것처럼 중국이 한국과 관계를 발전시킨다고 북한을 냉대할 이유가 없다”고 강조했다.

중국이 ‘북핵 예방’을 위해 6자회담을 주재하는 바로 그 기간에 북한은 세 차례나 핵실험을 하면서 사실상 핵보유국이 됐다. 하지만 중국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제재 결의안에 소극적으로 동의했고 국제사회가 기대하는 만큼의 매서운 회초리를 든 적이 없다. 북한이 중국의 과거 혈맹이어서가 아니라 북한의 현재와 미래 지정학적 전략적 가치가 더욱 커졌기 때문이다. 미국이 ‘아시아 재균형’ 정책과 미일 동맹 강화로 아시아에서 중국을 포위, 압박하는 데 최전선은 한반도와 대만이다.

중국의 한 북한 전문가는 “중국이 북한에 대해 가장 우려하는 것은 ‘미국에 투항하는 것’”이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중국에 불만이 커지면 북한은 미국 등 서방과 가까워지는 패를 꺼내 중국으로부터 자신들의 전략적 가치에 상응하는 대우를 받아 챙겨왔고, 챙기려고 한다는 것이다. 중국이 북한으로 가는 석유의 대부분을 공급하는 등 ‘생명줄’을 쥐고 있지만 북한도 중국에 꺼낼 카드가 없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중국에 이런 북한의 전략적 가치가 변하지 않는 이상 열병식을 전후로 어떤 이벤트가 있었든, 최룡해를 홀대했든 하지 않았든 중국과 남북한 간 관계 변화를 너무 지나치게 해석해서는 곤란하다.

구자룡 베이징 특파원 bon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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