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 전세금에 뭉칫돈 편법 증여… 주변 전월세 가격까지 끌어올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9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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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액 전세 세무조사 전국 확대

서울 강남지역의 보증금 23억 원짜리 고급 빌라에서 전세를 사는 A 씨. 아버지 B 씨가 운영하는 대부업체에서 받는 연간 7000만 원을 제외하고는 별다른 소득이 없는데도 고액 전세를 살면서 골프회원권, 수입차 등을 보유하고 있다. A 씨의 자금 출처를 의심한 국세청은 세무조사에 나섰다. 이 결과 아버지 B 씨가 룸살롱 여종업원들을 상대로 고리(高利)의 사채를 빌려주고 번 돈을 A 씨에게 편법으로 증여한 사실을 확인했다.

9일 국세청이 고액 전·월세 세입자에 대한 자금출처 조사 및 세무조사를 전국으로 확대하기로 한 것은 일부 고액 세입자 가운데 이 같은 편법 증여 사례가 늘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 같은 고액 전·월세가 주변 전·월세 가격을 움직여 서민들까지 피해를 보고 있다는 지적도 세무당국을 움직이게 한 요인이다.

서울 강남지역 등에 국한됐던 10억 원 안팎의 고액 전세는 최근 전세금 오름세를 타고 전국으로 확대되고 있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이날 현재 서울과 수도권을 제외하고 전세금이 8억 원을 넘는 아파트는 총 5곳이다. 대구 수성구 범어동 ‘두산위브더제니스’의 전용면적 255m² 아파트의 전세금이 평균 10억 원으로 가장 높았고, 황금동 태왕아너스(247m²)도 8억5000만 원으로 조사됐다. 부산 해운대구 우동 ‘해운대 경동제이드’(289m² 8억 원) 등도 고액 전세 대열에 합류했다. 김은진 부동산114 리서치팀장은 “실내 상태, 층과 거실 방향이 좋은 집은 전세금이 평균치보다 2억∼3억 원 더 높을 수 있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월세 바람을 타고 초고액 보증금을 낀 ‘반(半)전세’도 늘고 있다. 서울 강남지역과 용산구의 주요 유명 아파트와 고급 빌라 등에서는 수십억 원의 보증금을 받는 반전세 집들이 나온다. 서울 강남구 도곡동 타워팰리스의 경우 보증금 20억∼21억 원에 월 150만∼250만 원의 세를 받는 전셋집이 있다.

문제는 전·월세 보증금에 대한 세무당국의 감시망이 촘촘하지 못하다는 점이다. 집을 사고팔 때는 양도소득세, 취득세 등을 내기 위해 관할 세무서에 의무적으로 실거래가를 신고하고 관련 계약서류, 자금증빙 서류 등을 제출한다. 하지만 전·월세는 거래 내용을 확인할 만한 수단이 마땅하지 않다. 국세청이 2013년 처음으로 고액 전세입자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지만 지난해 50건을 조사하는 데 그쳤다.

일부 세입자는 조사가 서울·수도권에 국한된다는 점을 악용해 부산 등에 고액의 전세 주택을 마련하는 방식으로 뭉칫돈을 보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고액 전세가 조사 대상이라는 점을 악용해 소액의 월세를 부담하는 ‘반전세’ 방식으로 조사를 피하는 꼼수를 쓰기도 한다. 조사 기준을 ‘전세금 10억 원 이상’으로 해 지방의 7억∼9억 원대 고가 전세 주택이 과세의 사각지대가 됐다는 비판이 나온 이유다. 국세청 관계자는 “필요할 경우 고액 전·월세 거주자의 부모가 운영하는 사업체에 대한 세무조사도 실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세청은 또 조만간 고액 임대사업자에 대한 조사에 나서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당국은 성실 신고를 유도하기 위해 올 상반기(1∼6월)에 고액 주택을 임대하는 집주인들에게 주택보유 현황자료 등의 참고 자료를 보낸 바 있다. 국세청 관계자는 “전·월세 확정일자와 월세 세액공제 자료 등을 수집하고 있다”며 “금융정보분석원(FIU) 자료와 탈세 제보 등을 토대로 집주인들의 탈루 혐의가 발견되면 조사에 착수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상훈 january@donga.com·조은아 기자
#세무조사#고액전세#편법증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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