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현의 힐링 미술관]화해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9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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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Conversation), 카미유 피사로, 1881년.
대화(Conversation), 카미유 피사로, 1881년.
친구 혹은 연인과의 다툼 후에 잠이 오지 않아 밤새 뒤척여 본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이리저리 뒤척이다 결국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찬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던 기억 같은 것 말입니다. 다툼 후에 남는 감정이 서운함이든 노여움이든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다툼은 관계의 흐름을 체하게 하고 우리를 밤잠 못 이루게 만듭니다.

이러한 다툼을 멈추고 체한 감정을 풀어 없애는 것이 바로 ‘화해’입니다. 갈등을 해결하는 하나의 방법이며 관계의 단절과 유지를 가르는 전환점이기도 합니다. 결국 화해란 나와 타인의 상호 감정이입을 통해 좋은 관계 맺음을 유지하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말로는 뭔들 어렵겠습니까? 그림 속 소녀를 보세요. 이 그림의 가운데에 서 있는 소녀가 서로를 가르고 있는 울타리 위에 무심한 듯 한쪽 팔을 올려놓고 서 있는 모습. 밤새 뒤척인 다음 날 맑은 아침 공기가 민망한 듯 새초롬한 표정입니다. 소녀가 울타리 앞에 서기까지 얼마나 많은 망설임이 있었는지 전해지는 듯합니다. 심지어 울타리 앞까지 와 놓고도 아직도 내심 화해의 말을 건네기가 탐탁지 않은 느낌마저 듭니다. 그러나 그때 우리는 그녀 앞으로 손을 내밀어 울타리를 붙들고 있는 또 다른 소녀를 보게 됩니다. 소녀들의 다음 장면이 궁금해지지 않나요? 이 그림의 제목은 ‘대화(Conversation)’입니다.

화해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여러 갈등 상황에서 전략적으로 화해법을 제시하는 것과 진심으로 다가가 마침내 응어리를 풀고 감정의 해소에 다다르는 것이지요. 전자가 협상이라면 후자는 소통입니다. 소통은 대화로 시작되고 대화는 경청에서 시작됩니다. 말을 건다는 것은 사실 들을 준비가 되어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직까지는 서먹해 보이는 두 소녀가 곧 툴툴거리는 목소리로 서로에게 화해의 말을 건네리라는 것을 쉽게 상상해 낼 수 있습니다. 서로의 이야기를 듣겠다는 제스처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울타리는 사라지고 대화를 나누며 다시 웃음꽃을 피우는 소녀들의 모습이 눈에 보이는 듯합니다.

이렇게 마음의 매듭을 풀어 가는 일은 비단 개인에게만 적용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나와 나 자신에서부터 나와 타인, 나와 사회, 나와 문화 등이 화해하고 당면한 위기를 극복할 때 비로소 우리는 상처의 치유를 경험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자세는 사실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대화의 제스처를 하는 순간 화해는 더 이상 숙제가 아니게 될 것입니다.

김선현 차의과학대 미술치료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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