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풍 교훈 잊은 결과가 세월호, 안전불감 여전… 재난 반복 불러”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6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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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삼풍백화점 붕괴’ 20주년… 당시 구조대원들이 말하는 그때와 지금

위령탑 찾아 헌화… 마르지 않는 눈물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20주년을 하루 앞둔 28일 한 유가족이 서울 서초구 양재시민의 숲에 있는 삼풍참사 위령탑을 찾아 헌화한 뒤 희생자 이름이 적힌 석판을 쓰다듬고 있다. 사망자 509명, 실종자 6명, 부상자 937명을 발생시킨 서울 서초구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현장(아래 사진).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위령탑 찾아 헌화… 마르지 않는 눈물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20주년을 하루 앞둔 28일 한 유가족이 서울 서초구 양재시민의 숲에 있는 삼풍참사 위령탑을 찾아 헌화한 뒤 희생자 이름이 적힌 석판을 쓰다듬고 있다. 사망자 509명, 실종자 6명, 부상자 937명을 발생시킨 서울 서초구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현장(아래 사진).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아저씨… 저, 이제 더 못 살 것 같아요.”

20년 전 서울 도봉소방서 구조대장이던 경광숙 씨(58)는 지금도 눈을 감으면 이 목소리가 들린다고 했다. 무너진 삼풍백화점 잔해 속에서 실낱같이 흘러나오던 젊은 여자의 음성. 생존자를 찾았다는 기쁨에 콘크리트 더미를 3시간 동안 쉬지 않고 파내려 갔다. 하지만 이미 숨을 거둔 뒤였다. ‘내가 눈을 감을 때까지 절대 잊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하던 경 씨의 볼에는 이미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당시 도봉소방서 구조대장 경광숙 씨
당시 도봉소방서 구조대장 경광숙 씨
1979년부터 소방관 일을 시작했던 경 씨는 1995년 6월 29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삼풍백화점 붕괴 현장 한가운데 있었다. 2007년에 최고영웅소방관으로 선정됐으며, 지난해 6월까지 소방관으로 일했다.

재난과 거리를 두려 했던 경 씨는 지금 한 대기업에서 안전감독관으로 일하며 현장의 안전을 책임지고 있다. 사무실이나 매장의 안전 위험 요인을 미리 찾아내 제거하는 게 그의 일이다. 소방관일 때 경험했던 참사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 하겠다고 매일 다짐한다고 했다.

25일 기자와 만난 경 씨는 “참사를 잊고 싶겠지만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 다음 세대에게 삼풍의 교훈을 물려주는 것이 내가 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경 씨는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이후 경기 화성시 씨랜드 화재, 대구 지하철 참사, 경북 경주시 마우나리조트 붕괴 사고, 세월호 침몰 등 재난이 반복된 건 안전의 중요성을 망각했기 때문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경 씨는 “안전을 잊는 순간 재난이 찾아온다”고 말했다.

당시 고양소방서 구조대장 안경욱 씨
당시 고양소방서 구조대장 안경욱 씨
20년 전 경기 고양소방서 구조대장으로 삼풍백화점 붕괴 현장을 누볐던 안경욱 경기 화성소방서 현장대응1단장(53)도 그때의 일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최후의 생존자 구조 작업에 참여했던 안 단장은 25일 “당시 지하 3층까지 어렵게 진입했다가 추가 붕괴가 우려돼 여러 차례 대피하면서 구조했던 기억이 난다”며 “참혹한 현장을 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안 단장은 “삼풍 참사는 안전이 모든 일의 기본이라는 교훈을 줬지만, 지금도 물질 만능주의라는 고질병이 청산되지 않아 사고가 끊이질 않는다”고 지적했다.

삼풍 희생자 유족들은 “사고가 난 지 20년이 지났을 뿐인데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지워진 것 같다”고 말했다. 28일 오후 서울 서초구 양재시민의 숲 안쪽 삼풍참사위령탑을 찾은 유가족 김만순 씨(69) 부부는 쇼핑을 갔다 참변을 당한 장녀 수정 씨(당시 25세)의 이름을 읊조리며 “사람들이 남의 일이라고 생각하는지 너무 빨리 잊어버렸다”며 고개를 떨구었다.

삼풍백화점에서 근무하던 동생을 잃은 손선숙 씨(43·여)는 “주변에서 ‘삼풍 사고가 20년이나 됐느냐?’라고 하는데 내겐 어제 일처럼 또렷하다”고 말했다.

삼풍백화점이 무너진 자리에는 현재 주상복합건물이 들어서 있지만, 어디에도 당시 사고를 기억하게 해 주는 안내판 하나 없다. 위령탑은 우여곡절 끝에 사고 현장과 아무 연관성 없는 곳에 세워졌다.

사망자 509명, 실종자 6명, 부상자 937명이 발생한 삼풍 참사는 광복 이래 최대의 인명 피해를 낳은 참사로 기록돼 있다.

손가인 gain@donga.com·유원모 기자onemore@donga.com / 화성=강홍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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