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리자 구호품 전달 ‘007 작전’ 하듯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6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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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스 파장]“알려지면 따돌림” 항의에 주민 피해 현관앞서 마스크
일부 “술-담배 달라” 생떼

19일 한 공무원이 자가격리자가 있는 아파트에 물과 라면 등 생활필수품을 전달하고 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19일 한 공무원이 자가격리자가 있는 아파트에 물과 라면 등 생활필수품을 전달하고 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19일 오후 서울 강서구의 한 대형 아파트단지. 강서구청 마크가 붙은 승합차에서 위생관리과 김은정 주무관이 2L짜리 생수 6통과 식료품 상자를 꺼내 내려놓자 지나가던 주민들이 하나 둘 멈춰 섰다. 한 중년 여성은 “여기 혹시 메르스 격리자가 사느냐”며 눈살을 찌푸렸다. “기초생활수급자를 찾아왔다”고 둘러댔지만 믿지 않는 눈치였다. 서둘러 자리를 피한 김 주무관은 구호품을 격리 가구 현관 앞으로 옮긴 뒤에야 주머니에서 마스크를 꺼내 썼다. 그는 “미리 쓰고 돌아다니면 주민들이 격리자가 있다는 걸 알아채 어쩔 수 없다”며 씁쓸해했다.

21일 현재 전국의 메르스 자가 격리자는 3296명. 이들을 일대일로 관리하는 공무원들은 구호품 전달을 위해 매일 ‘007 작전’을 해야 한다. 일부 격리자의 까다로운 요구를 들어줘야 하고 ‘메르스 포비아(공포증)’에 걸린 주민들의 따가운 눈초리도 피해야 하기 때문이다. 행여 이웃에게 들키면 “구청 때문에 격리 사실이 알려져 아이가 왕따를 당하고 있다”는 항의 전화가 쏟아지기 일쑤다.

어렵사리 구호품을 전달해도 민원은 끊이지 않는다. 강서구는 쌀, 라면, 즉석 밥, 참치·햄 통조림, 생수 등 10만 원 상당의 식료품을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일부 격리자는 “왜 고기와 소주는 없느냐”고 따지거나 배달이 늦는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때로는 무리한 요구도 한다. 경기 지역의 한 시 관계자는 “격리 중인 중년 남성이 ‘당장 담배를 갖다 주지 않으면 직접 사러 나가겠다’고 소란을 피워 급히 담배를 보낸 적이 있다”고 말했다.

메르스 첫 확진자가 발생한 지 한 달이 넘어가면서 대다수 격리 가구에 1차 지원이 끝났지만 여전히 마음을 놓지 못하는 곳도 있다. 홀몸 가구나 집 안에 환자가 있는 경우다. 경기 화성시 김진호 생활보장팀장은 11일부터 이틀에 한 번 시청 근처 단골 식당에 도시락을 주문한다. 암 투병 중에 혼자 격리된 A 씨(47)가 좋아하는 반찬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A 씨의 부인(151번 환자)은 지난달 삼성서울병원에서 남편을 간호하다 감염된 것으로 추정된다.

박성민 기자 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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