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과 놀자!/이광표 기자의 문화재 이야기]남자는 씨름, 여자는 그네뛰기를 즐겼어요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6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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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보는 단오풍속

20일은 음력 5월 5일 단오(端午)입니다. 예부터 단오는 우리 민족의 주요 명절이었습니다. 단오풍속을 보여주는 조선시대 그림 두 점이 있습니다. 단원 김홍도의 ‘씨름’(18세기 후반)과 혜원 신윤복의 ‘단오풍정(端午風情)’(18세기 말∼19세기 초)입니다.

○ 씨름판에 푹 빠진 남자들

먼저 김홍도의 ‘씨름’을 보겠습니다. 화면 가운데 두 사람이 씨름을 하고 있고 그 주변에 사람들이 둘러앉아 구경하고 있네요. 화면 오른쪽 위의 사람들은 이기려는 쪽을 응원하는지 표정이 밝고, 화면 오른쪽 아래에 있는 사람들은 놀라며 안타까워하는 표정입니다. 그림을 유심히 들여다보면 이런저런 궁금증이 생깁니다.

첫 번째 궁금증, 씨름판에 남자들이 왜 모인 걸까요? 구경꾼들을 죽 둘러보니 부채를 든 사람이 있네요. 날씨가 좀 더운가봅니다. 씨름과 부채라, 그렇다면 단오 씨름이군요. 예부터 단오가 되면 남자들은 씨름을 즐겼습니다. 단오는 여름이 시작되는 때이지요. 그래서 사람들은 단오 때 부채를 선물했답니다.

두 번째 궁금증, 씨름 하는 사람 가운데 누가 이길까요? 앞쪽 사람(등을 보이는 사람)이 이길 것 같습니다. 뒤쪽 사람을 보니 ‘내가 지겠구나’란 생각에 표정이 일그러졌지요? 그렇다면 앞쪽 사람은 뒤쪽 사람을 어느 쪽으로 넘어뜨릴까요. 왼쪽? 오른쪽? 아, 오른쪽입니다. 그림 오른쪽 아래 사람을 보세요. ‘이키’ 하면서 놀라는 기색이지요. 뒤쪽 사람이 이쪽으로 넘어질 것 같기 때문에 놀라 움찔하면서 황급히 물러나려는 겁니다.

세 번째 궁금증, 다음 번 선수는 누구일까요? 그림을 보니 이번 판이 거의 끝나갑니다. 흥겨운 단오 명절인데 씨름 한판으론 부족합니다. 몇 판을 더 해 마을의 천하장사까지 뽑아야겠지요. 그럼 다음 선수는 누구일까요? 왼쪽 중간을 보세요. 무릎을 세운 두 사람이 보입니다. 긴장한 표정이 역력하네요. 옆에는 신발까지 가지런히 벗어 놓았습니다. 영락없이 다음 판 출전 선수들입니다.

기분 좋은 씨름판이 벌어졌는데 먹을 것이 빠질 수 없지요. 화면 왼쪽에 엿 파는 소년이 있습니다. 그림 속에서 씨름을 하는 두 선수 외에 유일하게 서 있는 사람이네요. 모두 씨름하는 두 선수를 집중해 바라보고 있는데 엿 파는 소년만 밖을 내다보고 있어요. 이 소년은 화면 구성에 생동감과 변화를 줍니다. 탁월한 구도이지요. 김홍도의 세밀한 관찰, 백성에 대한 애정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 화사한 옷차림, 그네 타는 여성들

‘씨름’이 남자들의 단오풍속을 그렸다면 ‘단오풍정’은 여성들의 단오풍속을 그린 작품입니다. 단오풍정은 단오의 풍속과 정취라는 뜻이에요.

이 그림은 기생들의 단오 나들이 모습을 표현했습니다. 화면의 오른쪽을 먼저 볼까요. 여성 한 명이 그네를 타기 위해 그네에 오르고 있습니다. 샛노란 저고리에 붉은 다홍치마를 예쁘게 차려입었네요. 색감이 화사하면서도 은근해 매우 세련된 분위기입니다.

그네 옆에선 젊은 여인이 머리를 만지고 있습니다. 저 머리를 보세요. 장식용 가발인 트레머리를 풀어 놓은 채 다듬고 있는 모습이지요. 한껏 멋을 낸 조선시대 여성들의 패션입니다.

그 앞으로 계집종이 소쿠리에 술병을 담아 머리에 인 채 걸어오고 있습니다. 계집종의 저고리를 보니 너무 짧아 젖가슴이 훤히 드러났습니다. 18세기 말∼19세기 초 여성들은 매우 짧은 저고리를 입었답니다. 물가에선 네 명의 여인이 가슴과 상체를 드러낸 채 몸을 씻고 있어요.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조선시대에 저런 일이 어떻게 가능했는지….

그런데 나무 뒤 바위 틈새에 숨어 있는 누군가가 보입니다. 눈여겨보니 머리를 빡빡 깎은 사내아이들이네요. 삭발을 한 것을 보니 동자승이 틀림없어요. 산속 사찰에 있던 동자승들이 아마 큰스님이 잠깐 외출한 사이 몰래 여기까지 내려와 목욕 중인 여인들을 훔쳐보는 겁니다. 동자승들의 호기심 어린 표정을 보세요. 눈을 둥그렇게 뜨고 숨죽여 훔쳐보고 있습니다. 능청스러우면서도 귀엽습니다. 여인들을 훔쳐보는 두 동자승이 화면에 긴장감과 활력을 불어넣고 있네요.

○ 김홍도 신윤복 풍속화의 매력

김홍도와 신윤복은 조선시대 풍속화의 쌍벽을 이룬 화가였습니다. ‘씨름’에서 드러나듯 김홍도는 서민들의 일상을 사실적 해학적으로 그렸습니다. 그의 풍속화는 현장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 생동감이 넘칩니다. 투박하면서 힘 있는 필선이 특히 돋보이지요. 신윤복은 도시 양반들의 여흥과 여성들의 일상을 세련되고 화사하게 표현했습니다. ‘단오풍정’이 대표적입니다. 여성들의 패션과 아름다움을 신윤복만큼 멋지게 그려낸 조선시대 화가가 또 있을까요?

올해 단오가 며칠 남지 않았습니다. 김홍도 신윤복의 그림을 통해 옛 사람들의 단오풍속을 만나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이광표 기자 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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