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하인드 베이스볼] 방장은 막내팀 사령탑·방졸은 포수사관학교 감독이 되다

  • 스포츠동아
  • 입력 2015년 4월 20일 05시 45분


조범현 감독-김태형 감독(오른쪽). 사진|스포츠동아DB·스포츠코리아
조범현 감독-김태형 감독(오른쪽). 사진|스포츠동아DB·스포츠코리아
■ 조범현-김태형 감독의 특별한 인연

은퇴 앞둔 조범현-유망주 김태형의 동거
1년간 룸메이트하며 포수 노하우 등 전수
김태형감독 적장으로 만난 지금도 깍듯이
조범현감독 “신생팀이다…살살 해 다오”

두산은 과거 OB 시절부터 포수왕국으로 명성을 떨쳤다. 여전히 포수 기근으로 많은 팀들이 힘들어 하지만, 두산은 타격과 수비에서 모두 리그 정상을 다투는 포수 양의지와 주전급 백업 최재훈을 보유하고 있다. 삼성 진갑용도 두산 출신이며, 롯데 안방을 오랜 시간 지켰던 최기문 NC 배터리코치, 한화에서 활약한 이도형 등도 두산이 배출한 포수다. 신생팀 kt의 주전 안방마님 용덕한도 두산에서 성장했다. 이쯤 되면 ‘포수사관학교’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이제 두산은 포수 출신 명감독들도 배출하고 있다. 10명밖에 없는 프로 감독 중 두산 포수 출신 사령탑이 올 시즌 3명이나 된다. 조범현 kt 감독, 김경문 NC 감독, 김태형 두산 감독이 그 주인공들이다. 특히 조범현 감독과 김태형 감독은 ‘방장과 방졸’이라는 매우 특별한 인연을 지니고 있다.

● 방장 조범현-방졸 김태형

프로야구 원년 멤버였던 조범현 감독은 1990년 프로 9년차에 접어들었다. 그 해 OB에는 매우 큰 변화가 있었다. 1982년부터 조 감독과 주전 경쟁을 펼치며 번갈아 안방을 지켰던 김경문 감독이 태평양으로 트레이드돼 팀을 떠났다. 그 대신 1988서울올림픽 국가대표 출신 김태형 감독이 OB에 입단했다. 큰 기대를 걸고 있던 유망주의 빠른 성장을 돕기 위해 OB는 김태형 감독을 조 감독과 룸메이트로 배정했다.

30대가 되면 은퇴를 준비하던 시절이다. 조 감독은 생일이 한 해 빠르지만 동기생들은 서른두 살이 됐던 시기다. 그러나 조 감독은 사실상 플레잉코치 역할도 하며 그해 84경기를 뛰었다. 김태형 감독도 신인이었지만 87경기에 출전하며 주전 포수가 되기 위한 수업을 착실히 받았다.

조 감독은 “OB에서 마지막 해였다. 김태형 감독이 신인으로 입단해서 룸메이트로 지냈다. 매우 진지한 성격이었고, 야구에 대해 매우 깊이 있게 파고들었던 모습이 떠오른다. 1년이라는 시간이었지만, 기억이 많이 난다. 은퇴 후 코치를 할 때도 멀리서 지켜보며 훌륭한 지도자가 될 거라고 기대했는데, 좋은 팀을 맡아 잘 이끌어가고 있는 것 같다”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 1990년 6월 5일 그날의 동지

OB의 안방을 번갈아 지켰던 방장과 방졸은 함께 큰 이슈의 중심에 선 적도 있다. 1990년 6월 5일 잠실구장에서 삼성과 OB는 벤치 클리어링에 이은 난투극을 벌였다. 프로야구 역사상 가장 격렬한 현장으로 기억되는 그 순간, 주전 포수 조범현과 덕아웃에 있던 백업 포수 김태형은 40여명이 뒤엉킨 격투의 한 가운데 서 있었다. 당시 OB에서 3명이 퇴장 당했는데 타자 머리 방향으로 공을 던진 김진규와 함께 조범현, 김태형이었다. 두 포수가 팀 내에서 어떤 위치, 어떤 역할을 맡았는지 엿볼 수 있는 사건이다.

신인에게 포지션이 같은 대선배는 매우 어려운 존재다. 그러나 이제 감독 대 감독으로 만나 그라운드 위 전장에서 마주하고 있다. 김태형 감독은 경기장에서 만나는 조 감독에게 항상 깍듯이 인사한다. 조 감독도 상대 사령탑으로서 예우를 다해주며 “신생팀이다. 살살 해 다오”라는 농담도 잊지 않는다.

14일 수원 경기에서 두산은 kt에 18-2로 대승을 거뒀다. 3회부터 9회까지 연이어 득점하는 잔혹한 경기였다. 다음날 김태형 감독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살짝 미소 띤 얼굴로 조 감독에게 다가와 어깨를 주물렀다. 조 감독도 미소로 답했다. 긴 말이 오가지 않아도 많은 것이 느껴지는 두 사령탑의 특별한 인연이다.

이경호 기자 rus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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