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전 세월호 사고 때도 이랬더라면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4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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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원 신속 대응-스프링클러 즉시 작동… 요양병원 불, 노인환자 221명 전원무사
나주 한밤 화재 10여분만에 대피… 해당병원, 의무대상 아닌데도
스프링클러 등 안전시설 설치… 29명 숨진 장성 요양병원과 대조

12일 오후 11시 45분경 전남 나주시 노안면의 한 요양병원 4층 간호사 휴게실. 창문 옆 간이침대에 놓인 전기장판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불이 붙으면서 휴게실은 물론이고 복도까지 검은 연기가 가득 찼다.

9m² 크기의 휴게실 전기장판 주변에는 옷과 이불이 있어 불길이 걷잡을 수 없이 번질 수 있는 아찔한 상황이었다. 4층 건물인 병원에는 치매를 앓거나 거동이 불편한 노인 221명이 치료받고 있었다. 특히 4층 입원실에는 노인 46명이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위기의 순간 휴게실 천장에 있던 화재감지기가 깜박거렸고 스프링클러가 작동했다. 물줄기가 쏟아지면서 가까스로 불이 꺼졌다. 동시에 화재경보기가 작동해 깊은 잠에 빠진 환자들에게 위급한 상황이 전해졌다. 당시 4층 병동 안내데스크에서는 간호사 박모 씨(56·여)가 업무를 보고 있었다. 경보기가 울리자 박 씨는 안내데스크 근처에 비치된 방독면을 착용한 뒤 환자 탈출을 돕기 시작했다. 데스크 옆 소파에 누워 있던 50대 여성 보호사도 “불이야”라고 외치고 환자 대피를 도왔다.

박 씨를 비롯해 4층에서 근무하고 있던 의료진 3명과 보호사 2명이 노인들의 대피를 도왔고 보호자들까지 거들었다. 10여 분 만에 4층 노인 환자와 의료진 등 51명이 대피에 성공했다. 2, 3층 병동에서도 거의 동시에 대피 작전이 진행됐다. 불이 날 당시 노인 환자 221명 이외에 의료진 24명이 근무하고 있었으나 10여 분 만에 자력으로 무사히 대피를 끝냈다. 4층 휴게실 옆 병실에서 자고 있던 강모 씨(66·여)는 “거동이 불편한 상황에서 화재경보기가 울려 무서웠다”며 “하지만 간호사 등이 안전하게 대피시켜 줘 무사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화재 발생 4분 후. 병원 직원 한 명이 전남도 소방본부 상황실에 화재 신고를 했다. 나주소방서와 영광소방서에서 소방차, 구급차량 등 26대와 소방관 69명이 출동했다. 하지만 병원까지 10km가량 떨어져 있어 소방차는 10분쯤 지난 오후 11시 59분에야 도착했다.

대형 인명피해로 번질 뻔했던 이번 화재 초기 진화의 일등공신은 스프링클러였다. 이 병원은 2011년 12월 건물 신축 당시 연면적이 3746m²로 스프링클러 설치 대상이 아니었다. 하지만 양정철 병원장(55)은 “돈보다 안전이 중요하다”며 스프링클러를 설치하고 각종 화재경보장치의 설치를 강화했다. 각종 화재 예방시설을 설치하는 데 1억 원 정도가 든 것으로 전해졌다.

병원 직원들이 늦은 밤에 일어난 화재에 당황하지 않고 대처할 수 있었던 것은 지난해 두 차례 실시한 화재종합훈련이 한몫했다. 양범철 행정부장(49)은 “규정에 따른 소화기 비치는 물론이고 2∼4층 병동에 화재 대비용 방독면과 손전등을 비치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5월 전남 장성군의 한 요양병원에서 화재가 일어나 노인 입원 환자 등 29명이 숨진 것과 달리 이 병원은 철저한 사전 안전조치 덕분에 한밤중에 일어난 화재에도 피해자가 단 한 명도 없었다.

병원 측은 13일 노인 환자 보호자들에게 ‘화재가 발생했으나 무사히 진화됐고 인명피해는 전혀 없다’는 내용의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발송했다. 나주경찰서는 전기장판 누전으로 화재가 난 것으로 보고 병원 관계자를 상대로 조사 중이다. 또 나주 지역 다른 5개 요양병원에 대한 합동점검을 실시키로 했다. 경찰 관계자는 “화재가 밤에 일어나 많은 인명피해가 발생할 수 있었는데 각종 안전 시스템이 작동해 참사를 막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나주=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세월호#요양병원#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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