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진호 어문기자의 말글 나들이]로브스터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4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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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진호 어문기자
손진호 어문기자
용어도 낯선 ‘먹방’이 뜨는가 싶더니 어느새 ‘쿡방(Cook+방송)’이란 것이 뒤따라 유행이다. 먹방은 ‘음식 먹는 방송’, 쿡방은 ‘요리하는 모습이 나오는 방송’이란 신조어다. 둘 다 음식을 단순한 먹거리가 아니라 소통과 치유의 매개로 삼아 시청자들의 공감을 얻고 있다.

얼마 전 한 방송 프로그램의 자막이 눈길을 끌었다. ‘로브스터&물고기, 그리고 친구.’ 보는 순간 웃음이 났다. ‘로브스터’ 때문이다. 모르긴 몰라도 많은 이들이 영어(lobster)를 본 뒤에야 고개를 끄덕였을 것이다. 로브스터는 커다란 새우류를 통틀어 가리키는 말이다. 바닷가재와 동의어다. 그런데 왜 이처럼 생경한 물건이 되었을까. 역설적이게도 외래어 표기법을 충실히 따른 결과다. 언중은 하나같이 ‘랍스터’라 한다. 그날 출연자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져 들어오는 외국 인명과 지명, 일반 용어 등을 사람들이 불편 없이 쓸 수 있도록 심의해 표제어로 삼은 걸 탓할 생각은 없다. 허나, 실생활에서 쓰는 용어는 외래어 원칙 못지않게 언중의 말 씀씀이를 헤아려야 한다. 로브스터의 경우 ‘바닷가재’만을 표제어로 올려두는 게 훨씬 나았다. 시간이 흐른 뒤 언중의 입말을 살펴 랍스터 혹은 로브스터를 바닷가재의 동의어로 삼았으면 될 일이다.

이상규 경북대 교수는 저서 ‘둥지 밖의 언어’에서 이에 대한 해법을 제시한다. “정부언론외래어심의공동위원회를 정부언론외국어표기심의공동위원회로 이름을 바꾸고 그 역할을 ‘인명 지명 등의 고유 명칭’ 표기 통일을 하는 자문 활동 기구로 제한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지 않고 일반용어나 전문용어까지 심의 대상으로 삼으면 한국어는 머지않아 외국어의 바다로 바뀔 것이라고 경고했다. 일리 있다. 로브스터가 그 단적인 예다. 생텍쥐페리의 소설 ‘어린왕자’에 나오는 나무 이름도 그렇다. 바오밥나무가 입말이라면 ‘바오바브나무’가 표제어다. 그렇지만 이런 어색함도 ‘캔디(candy)’에 비하면 약과(藥果)다. ‘사탕’이라는 이미 굳어진 좋은 우리말이 있는데도 우리 사전은 굳이 캔디까지 표제어로 삼았다.

외래어와 외국어로 뒤덮인 우리 언어 현실을 어찌해야 할까. 외래어는 우리말로 그 의미를 제대로 전달할 수 없을 때만 제한적으로 쓰는 게 옳다. ‘로브스터’ ‘랍스터’ 대신 ‘바닷가재’라 쓴다고 해서 그 맛이 떨어지겠는가.

손진호 어문기자 songbak@donga.com
#먹방#쿡방#로브스터#랍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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