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세영의 따뜻한 동행]꽃을 기다리듯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4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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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마당에 목련이 엄지손가락만 한 봉오리를 맺었다. 매년 이맘때가 되면 갸웃이 고개를 내미는 꽃봉오리가 반가워서 아침 출근길에 한참씩 들여다보곤 한다. 한 생명이 내게 온다는 건 실로 큰 기쁨이다. 꽃도 그러한데 하물며 사람은 더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정말 좋은 사람 셋만 만나면 성공한 삶이란 생각이 들어요. 결국 우리가 좋은 사람 몇 명 만나려고 사는 게 아닌가요?”

밀양백중놀이 인간문화재인 하용부 선생을 만났을 때 그는 자신의 삶을 바꿔놓은 사람도 있고, 그 이름을 떠올리는 것만으로 기분이 좋아지는 사람도 있다면서 그렇게 말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우리 삶에서 전환점은 사람과의 만남에서 찾아온다. 어느 시점에 누구를 만났는가가 인생을 바꿔놓는다. 그 사람을 만나지 않았다면 내 인생이 어떻게 달라졌을까 가정해 보는 일은 누구에게나 가능하다.

지난주에 만난 소설가 이시백 선생은 반성문을 쓰다가 작가가 되었다고 말했다. 내성적이고 수줍음이 많은 성격이 싫어서 사춘기 때 일부러 거친 친구들과 어울렸다는 그는 중고등학교 시절에 걸핏하면 반성문을 써야 했다. 그런데 반성문을 읽던 선생님이 감탄하시면서 “너, 정말 글을 잘 쓰는데 작가가 되면 좋겠다”고 말씀하셨다.

“그렇게 말썽을 부리면서도 아주 망가지지 않은 것은 어머니 덕분이었어요. 그 추운 겨울에 친구들과 쏘다니다가 밤 12시가 다 되어 들어가도 어머니가 언제나 버스 정류장에서 기다리고 계시는 거예요. 그러니 추운데 떨고 계실 어머니가 신경 쓰여서 12시가 11시로, 다시 10시로 귀가시간이 빨라지데요. 그러다가 결국 본래의 나로 돌아왔어요.”

같이 몰려다니던 친구 중엔 험악한 길로 들어선 친구도 있었지만 그는 마음을 잡고 문예창작과에 진학했다. 그리고 결국 소설가가 되었다. 그의 반성문이 소설로 진화할 수 있도록 선생님과 어머니가 결정적인 역할을 해준 셈이다.

한평생을 살면서 좋은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큰 축복이다. 그러나 좋은 사람을 만나도 받아들일 수 있는 열린 마음이 없으면 허사가 된다. 그의 경우도 어머니의 기다림을 외면하지 못한 착한 마음이 있었기에 삶에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목련 아래에서 한 송이 꽃을 기다리듯 내 마음에 담을 향기로운 사람을 기다려 보는 봄, 꽃망울이 터질 듯 부풀고 있다. 기분 좋은 4월이다.

윤세영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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