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리콴유 ‘부패없는 유능한 정부’로 싱가포르 기적 이루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3월 24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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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가 말레이시아연방에서 독립을 선언한 1965년 8월 9일 리콴유(李光耀) 총리는 TV 카메라 앞에서 쏟아지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다. 그는 자서전에 ‘싱가포르가 정당한 이유도 없이 저항도 못 하고 탈퇴를 강요당했다’고 썼다. 형식은 분리 독립이지만 사실상 추방을 당했다. 당시 싱가포르는 부존자원은커녕 물도 부족해 말레이시아에서 가져와야 하는 가난한 어항(漁港)이었다. 당시 1인당 국내총생산(GDP) 400달러에 불과했던 싱가포르는 지난해 국민소득 5만6000달러가 넘는 아시아 1위, 세계 8위의 부국(富國)이 됐다.

동남아시아의 작은 섬나라 싱가포르를 일류 국가로 만든 리 전 총리가 어제 향년 92세로 타계했다. 그는 31년간 세계 최장수 총리로 재임하며 싱가포르를 글로벌 금융과 물류의 허브로 탈바꿈시켜 경제적 번영과 사회적 안정을 이끌었다. 그가 신념처럼 추구했던 ‘개방의 힘’이 컸다. 그의 ‘싱가포르 모델’은 ‘박정희 모델’과 함께 권위적 자본주의를 대표한다. 그가 한국인에 대해 “강인하고 험난한 역경을 이겨내는 데 탁월한 힘을 지녔다”면서도 타협하지 않는 강성 노동조합과 고위층의 부패 척결 문제를 언급한 것을 보면 오늘날 한국이 겪는 상황까지 예견했던 거인(巨人)의 혜안이 놀랍다.

효율적인 정부를 통해 고속성장과 깨끗한 사회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은 그의 리더십은 집권 3년 차 ‘부패와의 전쟁’을 벌이고 있는 박근혜 정부에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총리 직속의 조사국을 만들어 부패를 끝까지 추적했고, 측근 비리를 용납하지 않는 솔선수범을 했으며 공직자들에게 유혹에 넘어가지 않을 만큼 충분한 대우를 해준 것이 성공 비결이다.

1990년대 싱가포르와 한국은 홍콩 대만과 함께 ‘아시아의 네 마리 용’으로 주목받았다. 하지만 2007년 국민 소득에서 일본을 추월한 싱가포르와 딴판으로 한국은 국민소득 2만 달러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리 전 총리는 1994년까지만 해도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까진 카지노는 안 된다”고 했지만 2005년 장남 리셴룽(李顯龍) 총리의 의견을 받아들여 세계적인 카지노 사업에 뛰어들었다. 글로벌 환경 변화에 유연하게 적응하는 실용주의는 동북아의 작은 반도국가인 우리에게도 귀감이 됨 직하다.

‘아시아적 가치’를 내세워 서구식 자유민주주의를 거부한 것이나, 시민의 자유를 제한하는 사회 통제 등은 그가 남긴 그늘이다. 싱가포르에는 리 전 총리와 그 아들의 장기 집권에 염증을 느끼고 언론 자유 확대와 정치사회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높다. 올해 독립 50주년을 맞는 싱가포르 안팎에서 “그의 타계는 한 시대의 마감을 알리는 상징”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조국을 세계적 반열에 올려놓은 걸출한 지도자의 타계는 “앞으로 펼쳐질 새로운 시대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우리에게도 던지고 있다.
#싱가포르#리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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