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최병일]실버 쓰나미는 밀려오는데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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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한국 2026년 초고령사회 진입
욱일승천하던 일본 경제… ‘우리끼리’ 폐쇄증 걸려 침몰
지구촌 다양한 인력 받아들여 성장동력 찾는 美 이민정책이
우리가 가야 할 길이다

최병일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교수
최병일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교수
“외국 노동인력 수용에 대한 전향적인 대책이 필요합니다.”

2013년 4월 새로 출범한 박근혜 정부의 첫 번째 대외경제장관회의에서 필자가 제기한 주장이다. 한국의 미래 항로에 경고음이 여기저기서 울리고 있을 때라 새 정부 첫 번째 회의에서는 국면 전환을 위한 새로운 청사진을 만들게 마련. ‘함께하는 글로벌 창조한국’이라는 새 정부의 새 비전 아래 신흥국 진출, 중소·중견기업 동반 진출 등을 담았는데 구태의연해 보였다. ‘글로벌’이지만 상대 국가는 어떤 생각을 하는지 전략적 고민은 부족했고 창조한국을 ‘우리끼리만’ 하겠다는 발상은 여전했다. 그 회의 참석자들처럼 웬 외국 노동력 유입 타령이냐고 의아해한다면 당신은 지금 한국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모르는 사람이다.

실버 쓰나미가 밀려오고 있다. 고령화라는 인구 재앙이 한국에 다가오고 있다. 65세 이상 인구비율이 7%이면 고령화사회, 14%가 되면 고령사회, 20%를 넘어가면 초고령사회라고 한다. 고령화사회에서 초고령사회로의 진입에 프랑스는 154년, 영국은 99년, 미국은 90년, 독일은 77년 소요되었고 일본은 35년 걸렸다. 한국은 2000년 고령화사회에 진입했고 내후년이면 고령사회에, 2026년에는 초고령사회에 진입할 것으로 예측된다. 프랑스가 154년 동안 달려온 길을 우리는 26년 만에 초고속 질주하는 것이다. 일본이 가지고 있는 세계신기록도 갈아 치울 태세다. 역시 ‘빨리빨리’ 압축성장의 대한민국이다.

문제는 고령화에 관한 한 압축성장은 희소식이 아니라는 점이다. 고령화사회 진입은 경제활동인구 감소를 의미하고 저성장의 일상화를 의미한다. 한국의 20대 인구는 1994년, 30대 인구는 2004년부터 줄어들기 시작했고 40대 인구도 2012년부터 줄어들기 시작했다. 앞으로는 60대 이상 인구만 늘어날 것이다. 3% 성장이 2%대로 추락할 것이고 1%대로 급전직하할 것이다. 미국을 앞지를 만큼 욱일승천하던 일본이 1990년부터 ‘잃어버린 20년’이라는 멈춤의 세월을 보낸 이유는 신칸센만큼 빠른 초특급 고령화 때문이었다. 자신의 직장 경력만큼이나 긴 은퇴 후 미래에 봉착한 실버세대는 가야 할 먼 길 걱정에 소비를 줄일 수밖에 없었다. 실질금리가 마이너스인데도 굳게 닫힌 지갑 때문에 온갖 거시경제 처방전은 무용지물이었다. 한국에 몰려오는 실버 쓰나미는 더 빠른 속도이고 한국의 준비 상황은 일본의 그때 그것보다 결코 더 나아 보이지 않는다. 한국은 일본보다 더 심각한 침체의 늪에 빠질 수 있음을 암시한다. 가파르게 늘어가는 한국의 복지 수요를 감당하려면 지금과 같은 성장으로는 어림없는데 고령화의 진전은 성장동력을 감소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고민은 깊어질 수밖에 없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미국을 주목해야 한다. 유일한 슈퍼파워에서 G2의 하나로 추락하는 수모를 겪던 그 미국이 다시 돌아오고 있다. 유가 하락 등 단기 호재가 있지만 세계를 향해 열린 미국의 이민정책이 그 뿌리에 있다. 미국 대학, 기업, 연구소는 세계의 다양한 인력을 흡수하는 블랙홀과 같다. 부의 불평등, 인종 갈등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끊임없는 창조적 파괴를 거쳐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아내는 이유이다. 미국은 우리보다 두 세대나 앞선 1942년 고령화사회에 진입했지만 고령화 속도는 우리보다 훨씬 느리다.

현재 한국의 체류외국인은 150만 명, 인구 대비 3% 수준이다. 주요 선진국의 10% 수준에 비교해 보면 급속도로 경제 활력을 잃어가는 우리가 압축성장해야 할 제대로 된 목표가 보인다. ‘우리끼리’ 폐쇄증에 걸린 일본은 침몰했다. 시대착오적인 혼혈, 용병이라는 단어가 지금도 공공연히 사용되고 있고 ‘단일민족’을 내세우고 순혈주의에 집착하는 한국은 일본과 다른 길을 갈 수 있을까. 위기는 닥쳐오지만 기회는 바깥에 있다. 새로운 도전을 꿈꾸는 세계의 뛰는 가슴들에게 한국은 매력적인 기회의 땅일 수 있다. 아니, 매력적인 약속의 땅으로 일구어야 한다. 지금까지 우리를 지배했던 ‘세계로 나가는’ 패러다임에서 ‘세계가 우리에게 오는’ 패러다임으로의 발상의 전환에 기회는 찾아온다. 한국이 일본의 실패를 반면교사로 삼아 ‘이민 강국’의 꿈을 꿀 수 있다면, 실버 쓰나미에 맞서는 희망의 방파제를 쌓을 수 있을 것이다. 창조경제란 이런 것이 아닐까.

최병일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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