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쟁론]비정규직 근로자 사용기간 연장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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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드라마 ‘미생’ 속 주인공 ‘장그래’는 비정규직 사원이었습니다. 장그래는 입사 이후 좋은 성과를 내며 주목받았지만 계약기간 2년이 지난 뒤 정규직으로 전환되지 못했습니다.

정부가 지난해 12월 29일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에 제출한 비정규직 종합대책이 ‘장그래법’이라고 불리며 주목받고 있습니다. 비정규직 근로자 고용기간을 현행 2년에서 최대 4년까지 늘리는 방안을 두고 노동계와 경영계는 ‘장그래 양산법’이라고 반발합니다. 비정규직을 더욱 늘리는 것일 뿐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라는 주장입니다.

반면 정부는 4년간 해고 불안 없이 근무하면 업무숙련도가 높아져 정규직으로 전환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말합니다. 합의 시한인 3월까지 노사정 사이에 치열한 논쟁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장그래법’을 둘러싼 양측의 주장을 소개합니다. <오피니언팀 종합>
▼ ‘바늘구멍’ 정규직 전환 늘릴 현실적 대안 ▼

권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권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최근 정부의 비정규직 대책의 하나로 기간제 근로자의 고용기간을 현행 2년에서 최대 4년까지 늘리는 방안에 노동계는 ‘정규직 시켜 달랬지 언제 비정규직을 연장해 달라고 했느냐’며 발끈하고 나섰다. 현행법상 2년이면 정규직 전환이 가능한데 이를 4년으로 늘린다는 것은 비정규직 죽이기와 다름없다는 것이다. 이번 조치로 말미암아 비정규직이 무분별하게 양산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이른바 ‘장그래법’에 대한 다양한 비판과 우려는 마땅히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향후 ‘최선’의 비정규직 대책이 과연 어떠해야 하는가를 보여주는 단초들이기 때문이다. 다만 아쉬움도 있다. 이번 대책은 ‘최선책’으로 제안된 것이 아니다. 단숨에 모든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시킬 수 없는 불가피한 현실을 감안해 정부가 고심 끝에 내놓은 ‘차선책’인 셈이다. 따라서 장그래법을 평가할 때 중요한 것은 ‘현실적 대안’으로서의 실효성이다. 감성적 비난은 자제해야 한다. 오해가 있다면 풀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논의가 겉돌기만 할 수도 있다. 장그래법 논쟁의 중요한 관전 포인트 몇 가지를 지적하고자 한다.

첫째, 장그래법과 ‘노동 현실’의 관계다. 만약 기간제 근로자 대다수가 2년 넘게 일하고 그래서 고스란히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게 현실이라면 장그래법은 ‘장그래 죽이기법’이 맞다. 고단한 비정규직 생활을 2년 더 감내하라는 요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다수 기간제 근로자가 정규직 전환에 실패한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대기업 기간제 근로자의 정규직 전환 비율은 고작 20∼30%에 불과하다. 이런 통계수치를 들지 않더라도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현실이 이렇다면 장그래법을 두고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2년에서 4년으로 늦추는 정책이라고 비판하는 것은 지나치다. 장그래법의 핵심은 장그래들에게 본인이 원하는 한 직장을 더 다닐 수 있도록 해 주겠다는 것이다.

둘째, 장그래법과 ‘비정규직 규제공식’의 관계다. 비정규직에 대한 엄격한 노동법적 규제는 일정한 ‘공식’을 따르게 된다. 바로 ‘비례성원칙’이다. 우선 입법자는 고용의 기회가 주는 ‘이익’과 고용의 불안이 초래하는 ‘불이익’을 서로 견줘 봐야 한다. 고용에 따른 사회적 이익이 더 크다면 비정규직 규제는 그만큼 완화될 수 있다. 실제로 일본이나 독일 등 외국의 입법 사례를 보면 특정 범위 비정규직의 기간제 상한기간을 4년 또는 그 이상으로 다양하게 설정하고 있다. 장그래법도 마찬가지다. 모든 청년 구직자에게 기간제 근로의 상한기간을 연장하겠다는 것이 아니다. 취업적령기를 넘어선 35세 이상 비정규직에게, 그것도 본인이 원하는 때만 연장하겠다는 것이다.

셋째, 장그래법과 ‘정규직 전환 가능성’의 관계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기간제가 정규직으로 전환된 사례 중에서 1년 6개월 미만을 일한 근로자가 정규직으로 전환된 비율은 7.4%이다. 하지만 2년 가까이 일한 근로자는 약 20%가 된다. 근무기간이 길수록 정규직 전환 비율이 높아지는 셈이다. 아무래도 근무기간이 길어지면 그만큼 업무숙련도가 높아지고 무엇보다 사용자와 인간적 신뢰가 깊어질 공산이 크다. 쉽지는 않겠지만 그나마 이런 방법을 통해서라도 정규직 전환의 가능성을 높여주겠다는 것이 장그래법의 취지다.

마지막으로 장그래법과 ‘노사정 대타협’의 관계도 중요한 요소다. 장그래법을 비롯한 정부의 비정규직 대책은 국민의 밥상에 올라갈 ‘요리’가 아니라 ‘요리의 재료’다. 말 그대로 ‘현재진행형’ 논의로서 여전히 보완해야 할 부분이 남아 있다. 예컨대 비정규직 근로자의 구체적인 연령이나 실직기간의 장단에 따라 맞춤형으로 재설계될 필요도 있다. 요리 재료를 다듬어 훌륭한 맛을 내야 하는 것은 이제 노사정의 몫이다. 그런 노사정이 요리 재료를 앞에 두고 곧바로 먹을 수 없다고 내버린다면 국민은 굶을 수밖에 없다.

비정규직 대책을 세우는 일은 어렵다. 하지만 이것만은 분명하다. 비정규직 대책은 철저하게 비정규직의 관점으로 만들어져야 한다. 장그래법에 대한 비판이나 보완도 그랬으면 한다.

권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고용 4년으로 늘리면 ‘장그래’만 더 양산 ▼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최근 발표된 고용노동부의 비정규직 종합대책이 예상대로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킴과 동시에 거센 역풍을 맞고 있다. 노동계와 시민사회단체들은 정부의 이번 비정규직 대책이 비정규직 근로자들의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려는 개선 방안이라기보다 오히려 그들의 불안정 고용을 더욱 확산시키려는 개악의 술책을 담고 있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비정규직 처우개선과 노동시장 활력 제고 방안’이라는 부제를 달고 발표된 정부의 비정규직 대책을 들여다보면 물론 여러 개선 방안이 포함된 것이 인정되기도 한다. 이를테면 3개월 이상 근무한 비정규직의 퇴직급여 적용, 기간제 계약 갱신 횟수를 최대 3회로 제한, 생명·안전업무의 비정규직 사용 금지, 노조의 차별시정 신청대리권 등이 개선된 방안이라 할 만하다. 하지만 이번 대책 중에는 35세 이상의 기간제 근로자를 고용할 수 있는 한시적 계약기간의 제한을 현행법의 2년에서 4년으로 연장하겠다는 방안과 55세 이상의 고령자와 전문직에 파견 허용을 전면 확대하겠다는 방안이 포함돼 정부의 진정성을 매우 의심케 하고 있다.

정부는 현장의 애로사항을 해결하겠다는 취지에서 고용 형태별 맞춤형 대책으로 기간제 근로자의 고용불안을 해소한다는 명분을 내세우며 고용기간을 4년으로 늘리고 외주화 남용을 방지하기 위해 파견규제 합리화의 하나로 고령자 및 전문직의 파견인력 활용을 적극 허용하겠다는 요지의 처방을 제시한 것이다. 결국 정부 대책은 비정규직의 남용 방지에 역점을 두겠다면서 기간제와 파견제의 비정규직 고용을 더욱 늘리는 정책을 펼치고 있으니 참으로 앞뒤가 맞지 않는 자가당착에 빠져 있다. 한 시민단체는 정부의 이번 대책을 비정규직 고용을 더욱 개악하는 것임에도 마치 개선하는 것처럼 내세우고 있다며 ‘지록위마’ 정책이라고 빗댈 정도다. 기업들이 비정규직을 (기간제는) 좀 더 길게 그리고 (파견제는) 확대해서 사용케 하면서 어떻게 남용 방지와 고용 안정을 이루겠다는 건지 도무지 이해하기 어렵다.

정부는 사용자들이 기간제법의 2년 고용기간 제한 때문에 많은 기간제 근로자를 해고하는 일이 현장에서 벌어지고 있으니 4년으로 그 기간을 연장하는 것이 이들의 고용 유지를 위해 필요한 대책이라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대책이 시행된다면 기간제 근로자들은 4년의 계약 연장이라 하더라도 여전히 한시직의 불안정한 일자리를 좀 더 유지할 뿐이고 4년 뒤 정규직 전환을 보장받는 것도 결코 아니다. 보다 중요하게는 그나마 현행법에 따라 2년 정도로 상시적 업무를 수행하던 기간제 비정규직들을 정규직 또는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하려는 사용자나 신규 정규직 인력을 채용하려던 업체들이 이번 대책으로 한시적 비정규 인력의 활용을 더욱 연장하거나 늘리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는 점은 불을 보듯 뻔하다.

최근 대거 정년퇴직하고 있는 베이비붐 세대의 고령자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기 위해 파견제 업종 제한을 풀겠다는 대책 역시 사용자들로 하여금 더 이상 정규직 종업원을 채용하기보다는 값싼 고령자 파견인력을 손쉽게 이용하게끔 유도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렇다 보니 비정규직 남용을 방지하겠다는 정부 대책이 오히려 기업들에 기간제와 파견제의 인력활용을 크게 권장해 비정규직을 양산하고 우리 노동시장에서 정규직 일자리를 더더욱 구하기 어렵게 만드는 ‘아주 고약스러운’ 개악 대책이라는 비판이 널리 공감을 얻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2009년 이명박 정부 시절 근거 없는 100만 실업대란설로 기간제의 사용기간을 연장하려던 당시 노동부의 음험한 속셈이 여론의 거센 반대에 막혀 좌절된 적이 있다. 그런데도 이번 대책으로 그 속셈이 유령처럼 되살아나고 있으니 비정규직을 위하는 척하면서 기업들의 고용유연화를 위해 편들기만 하는 정부의 친기업 노동정책이 형용모순의 괴물 같기만 하다. 우리 사회의 대표적인 ‘을’이자 ‘미생’인 비정규직 근로자들이 절박하게 바라는 것은 불안정한 고용 지위에서 벗어나 안정된 직장생활을 하는 정규직 일자리라는 점을 고용노동부는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곧 시작될 노사정 협상에서 그릇된 비정규 대책을 바로잡기를 간곡히 바란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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