툭 던진 반말, 갑질의 출발점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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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바뀌면 세상이 바뀝니다]
[1월의 주제는 ‘배려’]<9>존중하는 사회 기본은 존댓말

기온이 올랐다곤 하지만 여전히 밤은 차가운 공기로 가득하다. 가구점에서 일하며 밤엔 대리기사로도 일하는 박모 씨(38)에겐 찬 공기보다 손님의 ‘반말 냉대’가 더 서럽다. 호출이 많아 수입이 늘었으면 하는 바람뿐 아니라 반말이나 막말 퍼붓는 진상 손님 피하길 기도하는 이유다.

“‘지질한 갑’들이 있어요. 하는 짓은 각양각색이지만 반말로 시작하는 건 똑같죠.”

대리기사 불러놓고 담배 피우는 등 시간만 끌다 ‘택시 타고 가겠다’고 하는 젊은이, 목적지만 말하고 뒷좌석에서 자다 ‘왜 이 길로 왔냐’고 시비 거는 중년, 도착 후 막무가내로 ‘차가 긁혔다’며 보상 요구하는 만취 손님 등….

박 씨는 ‘반말’이 모든 갑질의 신호탄이라 했다. “‘야’ ‘너’란 말이 시작되면 대리기사들은 알아요. ‘아, 이 손님 진상이구나….’”

반말에서 시작하는 갈등은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경찰서 폭행 사건 조서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대목은 ‘왜 반말이냐며 시비가 시작돼…’이다. ‘땅콩 회항’이나 ‘백화점 모녀 갑질’에서도 반말이 빠지지 않고 등장했다.

갈등 상황이 벌어졌을 때 반말은 가장 쉽게 사용할 수 있는 공격 수단이다. 성균관대 의대 이재헌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15일 “반말을 쓰는 사람은 자기 마음에 안 드는 상황을 조정하기 위해 상대를 굴복시키려 공격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자신이 우월하다는 걸 강조하기 위해 반말을 쓴다는 뜻이다.

그러나 갈등 상황에서 꼭 필요한 것은 반말이 아니라 존댓말이다. 동갑내기 친구를 아내로 맞은 유승기 씨(30)는 지난 추석부터 아내와 존댓말을 쓰고 있다. 아내가 ‘니네(너희) 집’이라고 한 표현으로 크게 싸운 뒤 존댓말을 쓰기로 약속했고 이후 서로 말을 걸러 사용하다 보니 다툼이 확 줄었다고 했다. 이 교수는 “언어는 생각이 구체화돼 나오는 건데 존댓말은 상대를 인정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며 “상대를 존중한다는 상황 자체가 갈등 해결 가능성을 크게 높인다”고 설명했다.

존댓말을 쓰고 상대방을 배려하는 태도는 가정에서 먼저 실천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원영 중앙대 유아교육과 명예교수는 “존댓말을 사용하면 상대방뿐 아니라 모두에게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고 강조했다. 어린아이가 ‘해 줘’라고 떼를 쓸 때 ‘해 줄래요? 해 주세요’란 표현을 쓰게 하면 존댓말 습득은 물론이고 공손한 태도도 함께 배울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말을 듣는 부모도 아이를 인격체로 대할 테고, 이 광경을 본 이웃에게 훈훈함을 전해주는 효과까지 기대된다는 뜻이다. 이 교수는 “유치원에서 다른 아이들에게 욕설을 배워 와도 ‘욕을 들으면 기분이 나쁜데 안 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라고 설명하면 아이들도 자신이 존중받는다는 느낌을 받는 동시에 남을 배려해 욕을 하지 않게 된다”고 덧붙였다.

존댓말은 상대방을 높이는 표현이지만 동시에 나를 띄워주고 남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어주는 ‘세상살이의 온풍기’인 셈이다.

강은지 기자 kej0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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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댓말#반말#갑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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