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 트렌드]불맛 오른 구이에 맥주 한잔… 어머! 매력덩어리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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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웰빙, 양고기의 세계

지난해 12월 31일 서울 마포구 와우산로 홍익대 인근의 식당 ‘이치류’에서 양고기 구이를 주문한 젊은이들이 젓가락을 손에 쥐고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김미옥 기자 salt@donga.com
지난해 12월 31일 서울 마포구 와우산로 홍익대 인근의 식당 ‘이치류’에서 양고기 구이를 주문한 젊은이들이 젓가락을 손에 쥐고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김미옥 기자 salt@donga.com
“낮에 오세요, 낮에…. 지금은 얘기 못해요. 너무 바빠요.”

지난해 12월 30일 오후 9시 서울 광진구 동일로(자양4동) ‘양꼬치 거리’. ‘매화반점’ 지배인 김해광 씨(36)는 기자의 취재 요청에 손사래를 쳤다. 식당에선 고기가 익는 고소한 냄새와 이국적인 향신료 냄새를 타고 손님들의 대화가 유쾌하게 넘쳐나고 있었다.

저녁식사 시간이 지났는데도 식당은 여전히 만석(滿席)이었다. 좌석 80여 개는 이미 가득 찼고 가게 밖에서는 20여 명이 입장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부모님과 함께 줄을 서 있던 대학생 이규진 씨(20)는 “양고기가 맛있어서 경기 구리시에서 왔다”며 “가격이 부담 없어 친구들과도 자주 온다”고 말했다.

을미(乙未)년 ‘양의 해’인 2015년을 맞아 양고기가 주목받고 있다. 양고기에 대해서는 불과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질기고 누린내가 나는 고기’란 인식이 많았다. 하지만 요즘 양고기는 인기 외식 메뉴로 각광받고 있다. 서울 시내에도 양고기를 파는 식당이 꽤 많아진 데다 최근에는 대형마트들도 속속 양고기 판매에 나서고 있다.

치맥 못지않은 ‘양꼬치+칭다오맥주’ 인기

다음 날인 12월 31일 낮에 다시 찾아간 양꼬치 거리는 전날과 달리 평온한 모습이었다. 차량 두 대가 간신히 지나다닐 만한 골목길 양옆으로 양꼬치를 파는 음식점 30여 개가 늘어서 있었다. 붉은색 바탕에 한자와 한글이 병기된 간판이 여기저기 붙어 있었다. 매화반점도 그런 음식점 중 하나였다. 종업원들은 저녁 메뉴로 내놓을 양고기를 손질하고 있었다.

“1990년대 후반부터 서울 성수동 일대 공장에서 일하던 조선족과 한족들이 여기에 몰려들기 시작했어요. 자양동은 월세가 비교적 저렴하면서도 교통이 좋으니까요. 2001년경부터 자연스레 양꼬치 집들이 생겨나자 주변의 건국대나 한양대에 다니는 중국인 유학생들까지 이곳에 들락거리게 됐죠. 이후 입소문이 퍼지면서 한국인 양꼬치 마니아는 물론이고 일반 회사원으로까지 고객층이 넓어졌습니다. 어느새 명실상부한 양꼬치 거리가 됐지요.”(김해광 지배인)

매화반점도 2000년대 초반에는 중국인들을 대상으로 음식을 팔았다. 하지만 지금은 한국인 손님들이 압도적으로 많다. 양꼬치 거리의 ‘원조’ 격인 서울 구로동과 대림동 일대를 중국인들이 주로 찾는다면, 자양동 일대에는 한국인들이 훨씬 많이 몰린다.

이곳의 주력 메뉴는 단연 양꼬치. 중국어로 양러우촨(羊肉串)이라고 한다. 향신료인 ‘쯔란’(孜然·미나릿과 식물인 커민의 씨앗)의 향과 풍미도 일품이다. 쯔란에서는 카레 향과 비슷한, 달고 향기로운 냄새가 난다. 중국식 양꼬치집에서는 쯔란과 고춧가루를 섞어 꼬치 전체에 발라 굽거나, 손님들에게 고기를 찍어 먹는 용도로 제공한다. 여기에다 중국산 칭다오(靑島) 맥주를 곁들이면 양고기의 느끼한 맛이 없어진다는 게 애호가들의 설명이다.

양꼬치 거리의 또 다른 식당인 ‘홍매반점’에서 만난 직장인 정다정 씨(26·여)도 양꼬치와 칭다오 맥주의 조합을 최고로 쳤다.

“양꼬치 좀 먹을 줄 안다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치맥(치킨+맥주)처럼 양꼬치와 칭다오 맥주를 함께 먹는 게 불문율로 통해요. 양꼬치 거리에서는 하얼빈(哈爾濱)이나 옌징(燕京) 맥주 같은, 시중에서 접하기 힘든 중국 맥주를 파는 식당들이 적지 않아요.”

정 씨는 양고기를 좋아하는 회사 사람들과 함께 ‘양꼬치’라는 모임을 만들어 주기적으로 양꼬치 거리에 온다고 했다. 이날도 직장 동료 6명과 양꼬치 4인분, 궈바오러우(鍋包肉·넙적한 모양의 탕수육) 2인분, 가지볶음 1인분, 칭다오 맥주 3병, 옌타이(煙臺) 고량주 1병을 시켰다. 배불리 먹었는데도 이들이 부담한 금액은 1인당 1만5000원 정도. 정 씨는 “양꼬치집은 가격 부담이 없어 여럿이 와서 여러 가지 요리를 시켜놓고 모임을 갖기에 좋다”고 말했다.

고급 요리로도 각광… 영양가 높은 양고기

양고기의 인기는 비단 양꼬치에만 그치지 않는다. 양고기는 구이나 스테이크 등 다양한 요리로도 변신해 사랑받고 있다. 이런 인기에는 ‘양고기는 누린내가 나고 질기다’라는 인식이 사라진 점도 한몫한다.

예전에 우리가 접했던 양고기는 생후 1년 이상 자란 양의 고기, 즉 머턴(Mutton)이었다. 양의 지방은 생후 1년을 기점으로 질겨지고 냄새가 나기 시작한다. 그러나 요즘 유통되는 것은 대부분 생후 1년 이하 어린 양의 고기인 램(Lamb)이다. 냄새가 덜하고 육질도 부드럽다.

서울 홍익대 인근의 양고기집 ‘이치류(一流)’는 젊은이들이 많이 몰리는 ‘핫 플레이스’로 통한다. 이곳에선 일본에 15년 동안 살았던 주성준 사장(47)이 삿포로(札幌)식 양고기 구이인 ‘칭기즈칸’ 요리를 선보인다. 당초 그는 경기 일산신도시에서 개업했지만, 새로운 문화에 대한 호기심이 많은 젊은이들이 모이는 홍익대 쪽이 더 나을 것 같아 가게를 옮겼다. 예상은 적중해 그의 가게는 주말뿐 아니라 평일에도 줄을 서야 할 정도로 인기다.

“젊은이들은 유럽이나 미국 식의 일률적인 요리가 아닌, 새로운 맛을 찾으려는 경향이 강해요. 해외에서 양고기를 접해봤던 젊은층들도 많고요. 우리 가게에서 칭기즈칸 요리를 맛보고 난 후 역(逆)으로 삿포로로 여행 간 사람도 있어요. 그래서 삿포로관광청이 관광안내 책자를 우리 식당에 비치해 뒀어요.”

양고기는 고급 요리로도 변신한다. 서울 광화문의 레스토랑 ‘오키친’은 양고기 스테이크나 갈비뿐 아니라 파스타나 라비올리(이탈리아만두), 스튜도 만든다. 이곳은 영국 런던과 미국 뉴욕의 레스토랑에서 20년간 셰프로 활약한 일본인 요나구니 스스무(與那國進·66) 씨와 푸드 아티스트 오정미 씨(54) 부부가 운영한다. 부부는 “양고기를 좋아해 일주일에 세 차례 이상 먹다가 손님들에게도 선보이고 싶어 요리로 개발해 냈다”고 말했다.

“주변의 외국계 회사 임원들이나 해외에서 맛본 양고기를 떠올리면서 찾아오는 한국인들이 주 고객이에요. 또 양고기가 몸에 좋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예전보다 양고기 주문이 확실히 많아졌어요.”

실제로 양고기는 ‘저(低)칼로리, 저지방, 고단백’ 육류로 통한다. 특히 콜레스테롤 함량이 다른 육류보다 낮은 편이고, 칼슘과 인, 아연 같은 무기질이 풍부하다. 피로 해소나 피부 미용 등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양고기 수입액도 급증

이처럼 양고기가 대중화되자 수입액도 급증하고 있다. 관세청의 수출입무역통계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9월 양고기 수입액은 2927만8000달러(약 320억 원)로 2013년 한 해 동안의 수입액(2621만3000달러)을 이미 넘어섰다. 이것은 2000년 연간 수입액(387만8000달러)의 7.5배에 이른다. 양고기는 주로 호주(약 90%)와 뉴질랜드(약 10%)에서 수입된다.

양고기의 인기가 높아지자 최근에는 대형마트들도 잇달아 양고기 판매를 시작했다. 이마트는 수도권의 주요 점포 26곳에서 호주산 양고기를 판매 중이다. 램 갈비는 100g당 3280원, 램 불고기는 100g당 2580원으로 한우보다 싸지만 호주산 쇠고기보다는 비싼 편이다.

홈플러스는 한국식 양념을 한 양고기를 내놓고 있다. 고추장 불고기(400g·9900원), LA식 양념갈비(400g·9900원), 전골(300g·7900원) 등의 품목은 양고기 특유의 향이 익숙하지 않은 소비자들을 위해 한국식 양념을 가미해 만든 것이다. 롯데마트는 지난해 4월부터 항공직송을 통해 들여온 호주산 램 갈비를 판매 중이다(100g당 4800원).

전문가들은 앞으로 양고기 수입이 더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올해 발효된 한-호주 자유무역협정(FTA)으로 호주산 양고기에 대한 관세(기존 22.5%)가 지속적으로 낮아져 10년 후인 2025년에는 완전히 없어지기 때문이다.

김유영 abc@donga.com·김성모·박창규 기자   
#양고기#양꼬치 거리#칭다오맥주#매화반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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