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고미석]반갑다, 양의 해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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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풀밭에서 한가롭게 풀을 뜯는 양 떼의 모습. 나이 든 세대에게는 왠지 눈에 익은 목가적 풍경일 것이다. 1950∼80년대 동네 이발소에 가면 쉽게 볼 수 있었던, 이른바 ‘이발소 그림’의 단골 소재였다. 대량 판매용으로 제작된 싸구려 복제화는 이제 사라졌어도 고즈넉한 풍경 속 양 떼만큼은 평화와 행복을 상징하는 이미지로 기억에 생생하다.

▷2015년 양의 해 문이 열렸다. 양은 군집생활을 하는 온순한 초식동물이다. ‘희생양’이란 단어처럼 양이 제물(祭物)의 상징으로 여겨질 때도 있으나 착할 ‘선(善)’, 아름다울 ‘미(美)’, 의로울 ‘의(義)’ 같은 긍정적이고 상서로운 뜻의 글자에도 녹아 있다. 양은 털, 가죽, 고기 등 뭐 하나 버릴 게 없는 유익한 가축이다. 한방에서는 양을 기를 돋우는 건강식품으로 생각한다. 외부 환경에 맞춰 습기를 조절하는 양모 이불도 인기다.

▷양은 옛날 옛적 인류의 삶에 등장했다. 고고학계에 따르면 구석기 유물과 함께 양의 턱뼈가 출토되고 있다. 구약성서의 ‘아벨이 양을 치며 카인의 토지를 경작했다’는 구절처럼 성경에서도 양은 자주 언급된다. 우리 선인들은 양을 길상의 상징처럼 여겼다. 문헌에는 삼국시대 때 외교 선물로 양을 보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역사적으로 양의 해에 큰일도 많았다. 1871년 미국 함대가 강화도를 침략한 신미양요, 1919년의 3·1운동, 1979년의 10·26사태 등이다.

▷1만여 년 전 중앙아시아 고원지대에서 처음으로 양을 가축으로 길렀다 한다. ‘목동’이란 유서 깊은 직업을 소재로 한 동화 ‘양치기 소년’은 전 세계 어린이들과 친숙하다. 하지만 심심풀이로 했던 거짓말이 엄청난 파장을 몰고 온다는 동화 속 교훈은 이제 아이보다 어른들이 더 되새겨야 할 때다. 걸핏하면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거짓 정보를 퍼뜨리는 사람들 탓에 세상이 혼탁하고 몸살을 앓는다. 양은 무리 지어 다녀도 결코 다투는 법 없이 조화롭게 살아간다. 을미년 새해, 분쟁과 갈등이 없는 세상이 되길 소망한다.

고미석 논설위원 mskoh119@donga.com
#양의 해#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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