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최영해]삼성맨과 한화맨의 ‘未生’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1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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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그룹에선 전자 금융 건설을 제외한 비주력 계열사를 ‘후자(後者)’라고 부르곤 한다. 삼성전자(電子)를 ‘전자(前者)’로 칭하면서 나머지는 쭉정이로 빗대는 자조 섞인 말이다. 삼성전자가 워낙 잘나가다 보니 이런 우스갯소리까지 생겼다. 한화그룹에 팔린 삼성테크윈 삼성종합화학 삼성탈레스 삼성토탈도 그룹에선 서자(庶子) 설움을 받았다.

▷삼성이라는 큰 우산 밑에 있다가 하루아침에 한화로 소속이 바뀌는 삼성테크윈 등의 7500명 임직원의 박탈감이 심하다. 그룹 서열 재계 1위에서 9위로 떨어진다니 직원들이 웅성거릴 만도 하다. 삼성에서 합격통지서를 받은 신입사원들로선 날벼락일 수도 있겠다. 매각 조건에 이들이 한화를 그만두면 앞으로 3년 동안 삼성에 재취업할 수 없도록 못 박았다니 졸지에 친정과 연을 끊고 출가외인(出嫁外人)이 돼버린 것이다.

▷이건희 삼성 회장의 신경영 모토가 “마누라, 자식 빼고 다 바꾸라”였다. 빽이나 연줄이 없어도, 지방대 출신도 열심히 하면 임원이 될 수 있는 삼성은 ‘성과에 보상 있다’는 철저한 ‘성과주의’ 문화다. 모두 최고의 엘리트를 자부하는 만큼 사내 경쟁도 치열하지만 협동심은 약하다. 한화그룹의 사훈은 ‘도헌정’이다. 도전·헌신·정도(正道)를 줄인 말이다. 신의를 중시하는 김승연 회장은 계열사 사장들에게 “배신하지 말라”고 입버릇처럼 되뇐다고 한다. 그래서 한화맨은 ‘의리맨’의 기질이 있다. 1952년 한국화약 설립 후 계열사 대부분을 인수합병(M&A)으로 키운 기업문화도 삼성과 뚜렷이 대비된다. 재계에선 김 회장을 M&A의 대가(大家)로 부를 정도다.

▷한화맨이 되면 삼성맨의 기질도 변할지 알 수 없다. “어렵게 서울대 들어갔는데 학과를 없앤다며 수도권의 중위권 대학으로 학생을 보내는 격”이라는 수군거림도 들린다. 하지만 소꼬리보다 닭 머리가 나을 수도 있다. 삼성에선 찬밥인 화학과 방위산업이 한화에선 적자(嫡子) 아니던가. 직장인들의 애환을 다룬 드라마 ‘미생(未生)’이 인기다. 삼성맨과 한화맨이 만나 완생(完生)을 이루길 기대한다.

최영해 논설위원 yhchoi65@donga.com
#삼성테크윈#삼성그룹#한화그룹#성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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