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인 수녀 “이젠 동백꽃 이모로 불리고 싶어요”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1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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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순 - 수녀원 입회 50년 맞은 이해인 수녀,
시 - 산문 - 일기 엮은 ‘…동백꽃처럼’ 출간

이해인 수녀가 1976년 종신서원 후 머물고 있는 부산 수영구 성베네딕도 수녀원에서 활짝 핀 동백꽃 앞에 섰다. 동백꽃처럼 살고 싶다는 이 수녀는 ‘방문객들이 오면 늘 나무에게 미안해하며 한두 송이씩 꺾어 환영의 선물로 브로치처럼 가슴에 달아주곤’ 한다. 마음산책 제공
이해인 수녀가 1976년 종신서원 후 머물고 있는 부산 수영구 성베네딕도 수녀원에서 활짝 핀 동백꽃 앞에 섰다. 동백꽃처럼 살고 싶다는 이 수녀는 ‘방문객들이 오면 늘 나무에게 미안해하며 한두 송이씩 꺾어 환영의 선물로 브로치처럼 가슴에 달아주곤’ 한다. 마음산책 제공
오늘도 많이 감사합니다
사랑의 잔소리를 사랑으로 듣지 못한
나의 잘못을 용서하세요
각자의 마음 아름답게 정리하여
환희 웃는 얼굴로
다시 만납시다, 우리

-환자의 편지 중


“새 책이 나오니까 나도 한 송이 동백꽃이 된 것 같아요. 친한 신부님에게 문자를 보낼 때 ‘동백섬에 사는 동백 아가씨 기억나요?’라며 농담하곤 했는데. 이젠 ‘국민 동백꽃 이모’로 불렸으면 좋겠어요. 하하하.”

24일 동백꽃이 활짝 핀 부산 수영구 수영로 성베네딕도 수녀원에서 전화를 받은 이해인 수녀(69)의 목소리는 그의 시 ‘동백꽃에게’의 표현대로 ‘해를 닮은 웃음소리’와 같았다. 그는 올해 칠순과 수녀원 입회 50주년을 맞아 신작 산문과 시 100편, 일기 100편을 묶은 ‘필 때도 질 때도 동백꽃처럼’(마음산책)을 최근 출간했다.

이해인 수녀가 손으로 꾹꾹 눌러 쓴 올 9월 9일자 일기. 마음산책 제공
이해인 수녀가 손으로 꾹꾹 눌러 쓴 올 9월 9일자 일기. 마음산책 제공
1976년 이 수녀의 첫 시집 제목은 ‘민들레의 영토’였다. 그는 ‘필 때도 질 때도 동백꽃처럼’의 서문에서 “봄의 민들레처럼 작고 여린 모습의 그 수련생은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인내의 소금을 먹고 하늘을 바라보는 한 송이 동백꽃이 된 것 같습니다. (중략) 필 때도 질 때도 아름답고 고운 동백꽃처럼 한결같은 삶을 살고 싶습니다”라고 썼다.

“소녀도 할머니가 되면 화려한 원색에 눈이 가잖아요. 어떤 꽃은 미운 모양으로 지는데 동백꽃은 필 때나 질 때나 똑같아요. 한 생을 이별할 때도 밝고 환하게 명랑하게 씩씩하게 보이고 싶다는 상징적인 의미도 책 제목에 담았어요.”

책에는 시 ‘유언장을 쓰며’도 수록됐다. “내가 친필로/꾹꾹 눌러쓴 하얀 유언장이/나를 쳐다보며/지금은 그냥 그렇게/살아 있으라고 하네/정리를 다 마쳤으니/이젠 좀 편히 웃어도 된다면서!” 암 투병 중이던 그가 지난해 12월 유언장 공증을 받으러 변호사 사무실을 찾은 날 쓴 시다.

“갑자기 쓰러질 수 있다 생각하니 마음이 좀 급했어요. 제가 문인(文人)으로 이름을 조금 알렸지만 유언장에는 ‘올리베따노 성베네딕도 수녀회 절차에 따라 간소하게 장례를 치러 달라, 저작권 수익도 수녀회에 양도해 달라’는 내용을 담았어요. 그렇게 정리하고 나니 홀가분했어요.”

혹시 마지막 책이냐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수녀는 웃으며 답했다.

“늘 이번이 마지막일까, 유작이 될까 생각해요. 근데 우리 집안이 워낙 장수해서 빨리 죽진 않을 거예요. 명랑한 게 덕목이니까요. 하하하.”

밝은 목소리와 달리 책엔 투병의 고통도 담겨 있다. ‘오늘은 내내 슬픈 생각만 하며/눈을 감았다 떴다……/웃지도 못하고 하루가 가네’(아픈 날의 고백).

그런데 수녀는 힘든 하루를 보내면서도 남을 먼저 챙긴다. 병원 검사 결과가 좋게 나온 날(2012년 7월 24일 일기)에는 ‘같은 의사에게 같은 수술을 한 탤런트 김자옥 님은 폐로 암이 전이되어 수술하고 다시 항암치료 중이라니 마음이 안 좋다’며 좀처럼 기뻐하지 않는다.

이 수녀는 “김자옥 씨가 의기소침하던 내게 방사선 치료 할 때 창세기의 ‘빛이 있어라’를 묵상하며 견디면 된다고 오히려 위로했다”며 “부고를 접하고 마음이 아파 김 씨 사진을 인터넷으로 찾아서 보면서 기도했다”고 말했다.

책은 올해 10월 30일자 일기까지 담았다. 이날 일기에 세월호 침몰 당시 가장 먼저 119에 신고한 최덕하 군의 어머니와 주고받은 문자 내용을 최 군 어머니의 허락을 얻어 책에 공개했다.

“시대의 비극이 있을 때마다 추모하는 마음을 담은 글을 썼는데, 세월호 때는 글이 도저히 써지지 않았어요. 시대적 비극이 우리와 무관하지 않음을 알고 같이 기도했으면 합니다. 따라 죽고 싶은 고통 속에서 신앙적 의미를 찾아낸 덕하 어머니께 저부터 많이 배웠고요.”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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