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러 “조건없이 6자회담 재개”… 한국 입장과 배치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1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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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최룡해-라브로프 장관 합의… “北 행동보여야” 한국 요구에 찬물
中 가세땐 韓美日 vs 北中러 재연

북한과 러시아가 한국 입장과 반대되는 내용으로 6자회담 재개에 합의했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은 20일(현지 시간) 특사로 러시아를 방문 중인 최룡해 북한 노동당 비서와 만난 뒤 “조건 없이 6자회담에 복귀하기로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이는 ‘무조건 회담으로 돌아오겠다’는 뜻이 전혀 아니다. 오히려 ‘(한국 등이) 6자회담을 재개하고 싶으면 조건을 달지 말라’는 뜻으로 “비핵화 사전조치 등 조건을 걸면 회담에 응하지 않겠다”는 뜻이 강하다.

그동안 한국 정부의 입장은 ‘6자회담을 재개하려면 북한이 행동을 먼저 보여야 한다’는 조건부 회담 재개였다. 박근혜 정부에서는 이를 ‘한국식 해법(코리안 포뮬러)’이라는 이름으로 강조해왔다. 당초 한국은 북한에 회담 재개 조건으로 2012년 ‘북-미 2·29합의’에서 규정한 핵실험과 장거리미사일 발사, 우라늄 농축을 유예하고 국제 사찰단의 방북을 허용할 것을 요구해 왔다.

북-러의 20일 합의는 이런 한국의 해법에 찬물을 끼얹은 셈이다. 10월 2일 북한 이수용 외무상이 모스크바를 방문했을 때 라브로프 장관이 보여준 태도와도 차이가 크다. 당시 라브로프 장관은 “6자회담 재개를 위해 북한을 포함한 모든 회담 참가국들이 과격 행동을 자제하고 대결적 경향을 부추겨선 안 된다”고 말했다. 그즈음 잇따른 동해상 탄도미사일 발사 등 북한의 도발행위를 비판한 것이다.

이번 회의에서는 이런 언급이 없었다. 오히려 라브로프 장관은 “북한이 영변 핵시설을 가동하고 있다는 언론 보도는 검증해봐야 한다”며 북한을 감쌌다. 또 “동북아 지역에서 동맹(bloc)을 토대로 한 군사력 증강을 우려한다”고 말해 한미 군사협력에 대해 경고했다.

러시아의 태도가 북한을 향해 기운 것은 현재 처한 두 나라의 상황과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유엔 총회에서 북한인권결의안 통과로,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사태에 따른 제재로 국제적인 고립 상황에 빠져 있다. 공동의 적인 미국을 매개로 공조를 과시하는 형국이다.

여기에 중국까지 가세할 경우 한미일 대 북-중-러라는 전통적인 북방3각 대 남방3각의 대립구도가 재연될 가능성도 나온다. 중국은 20일 관영 신화통신이 북-러 합의 내용을 홈페이지 머리기사로 게재하는 등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정부 당국자는 “중국도 회담 재개를 위해 일정한 조건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한국과 이견이 없는 상태”라고 했지만 “구체적인 회담 재개 조건에 대해서는 계속 협의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숭호 기자 shcho@donga.com
#북한#러시아#6자회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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