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에 만난 사람]‘노래하는 자연주의자’ 제이슨 므라즈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1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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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크리트 정글 벗어나니… 음악에 햇살이 닿았다”

20일 오전에 만난 팝스타 제이슨 므라즈. 들고 온 통기타를 장난감처럼 만지작대면서 이런저런 멜로디를 흥얼거렸다. “어릴 적 
동경하던 록스타는 마이클 잭슨, 고등학교 올라가서는 데이브 매슈스 밴드, 싱어송라이터로 눈뜨게 해준 건, 밥 딜런이에요.”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20일 오전에 만난 팝스타 제이슨 므라즈. 들고 온 통기타를 장난감처럼 만지작대면서 이런저런 멜로디를 흥얼거렸다. “어릴 적 동경하던 록스타는 마이클 잭슨, 고등학교 올라가서는 데이브 매슈스 밴드, 싱어송라이터로 눈뜨게 해준 건, 밥 딜런이에요.”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20일 오전 11시 30분 서울 용산구 소월로 그랜드하얏트서울 17층 라운지.

남산의 붉은 가을색이 손에 잡힐 듯 보이는 창을 배경으로, 약속 시간에 딱 맞춰, 팝스타 제이슨 므라즈(37)가 걸어 들어왔다. 오른손을 과장된 제스처로 내밀며 래퍼처럼 악수부터 청한 그는 보통 키(175cm)에 말랐지만 근육이 단단했고, 유달리 조막만 한 얼굴 위로 검은색 야구 모자를 오른쪽으로 15도쯤 비뚤게 쓰고 있었다. “어젯밤 늦게 입국해서 좀 피곤한데 기분은 아주 좋아요! 친구, 당신은?”

2005년부터 올해까지 네 장의 앨범을 빌보드 앨범차트 2∼5위에 올린 세계적인 팝스타는 갈색 체크무늬 남방을 평범한 청바지 위로 내 입었고, 겨우 세수만 한 얼굴이었다. 녹갈색 눈동자가 또렷한 그는 음정이 높고 약간 얇으며 허스키한 음성, 그러니까 ‘아임 유어스’(2008년)를 부를 때와 똑같은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뮤직비디오 유튜브 조회 수 1억9300만 건, 빌보드 싱글차트 100위권 최장기 등재 기록(76주간)을 6년간 지킨 노래 말이다.

한국 신문과 므라즈의 첫 대면 인터뷰였다. 21∼25일 대전, 대구, 서울 공연을 위해 방한한 므라즈가 아메리카노 한 잔을 앞에 두고 70분간 가장 자주 언급한 동사는 ‘나누다(share)’, 형용사는 ‘창조적인(creative)’, 명사는 ‘정원사(gardener)’였다. 10년째 캘리포니아 주 샌디에이고 시 북부 농업지역(노스카운티)에서 직접 아보카도 농장을 경영하며 채식을 하는 이 독신의 자연주의 뮤지션은 700만 장의 앨범, 1150만 개의 디지털 싱글을 팔고 그래미 트로피를 두 개 가진 스타이지만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은 햇살’을 묻는 질문에 아픈 기억이 떠오른 듯 고개를 숙이고 7초쯤 침묵하기도 했다.

―아보카도는 잘 자라나요? 왜 길러요?

“우리 농장 건 유기농이라 수확이 일렀어요. 사랑을 아주 많이 줬거든요.(웃음) 주변에 아보카도 나무가 많아서 저도 기르기 시작한 거예요. 대자연은 꽉 막힌 도시보다 음악 만드는 데 더 도움을 줘요. 절 엄청나게 창의적(super creative)으로 만들어주죠.”

―(2006년 이후 일곱 번째 내한인데) 한국말은 좀 해요?


“‘안녕하세요. 아임 제이슨 므라즈!’ 아, ‘감사합니다!’ (셔츠에 가린 왼 팔뚝을 가리키며) ‘생큐’란 말은 여기 (문신으로) 새겨져 있기도 하죠. 그 말은 15개 국어 이상 기억하는 것 같아요.(웃음)”

―기타는 몇 대나 갖고 있어요?

“모르겠어요. 어디 보자…. 이번엔 8대를 갖고 왔고, 집에 8대가 더 있고. 우쿨렐레는 4, 5대? 우리 동네에 우쿨렐레 가게가 정말 많아요. 우쿨렐레 모양 샹들리에도 있다니까요. ‘우쿨렐랜드’랄까.”

―(환경주의자에 자유인, DIY 이미지인 당신이) 왜 거대음반사(워너뮤직)와 일하죠?

“게으른 정원사(lazy gardener)니까요. 워너뮤직은 제게 정원사, 농부, 서핑 애호가로 지낼 시간을 더 많이 주거든요.(웃음)”

―1, 2집(2002, 2005년)에선 래퍼이자 로커로서 톡톡 튀는 재능을 보여줬는데 (‘아임 유어스’가 담긴) 3집부터 편안한 성인 지향 팝 스타일, 자연주의적 가사로 선회했어요.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

“(어릴 적) 숲(버지니아 주 메커닉스빌) 지대에 살다 콘크리트 정글로 왔잖아요. 샌디에이고 도심의 높은 인구밀도와 팝 컬처가 절 래퍼, 로커로 만든 것 같아요. ‘내가 춤추고 랩 하는 모습을 좀 봐봐!’ 식의 라이프스타일. 2집(2005년 ‘미스터 에이 투 지’) 만들 때쯤 북쪽 황무지(노스카운티)로 이사하면서 꽃과 열매가 만발한 환경이 음악에 영향을 줬어요. 자기중심적 태도에서 벗어나 어쿠스틱 악기를 들고 우주의 하모니(universal harmony)를 노래하기 시작했죠.”

―(이렇게 들으면 한가해 보이는데 실은) 정말 바쁘잖아요. 1년에 콘서트를 몇 번이나 하죠?

“100∼150회 정도? 앨범과 앨범 사이에 휴식기도 몇 년씩 있으니까요, 뭐.”

―쓰고 있는 모자에 쓰여 있는 ‘라이프 롤스 온(인생은 계속 굴러간다)’은 뭐죠?


척수외상을 지닌 아이들에게 서핑을 가르쳐주기 위해 샌디에이고 해변을 찾은 제이슨 므라즈의 최근 모습. 사진 출처 라이프 롤스 온 홈페이지
척수외상을 지닌 아이들에게 서핑을 가르쳐주기 위해 샌디에이고 해변을 찾은 제이슨 므라즈의 최근 모습. 사진 출처 라이프 롤스 온 홈페이지
“(2011년 설립한 자선단체) ‘제이슨 므라즈 재단’이 후원하는 단체 중 하나예요. 척수외상을 지닌 어린이들이 서핑, 스키, 스노보드, 스케이트보드를 배우도록 도와주죠. 저도 가끔 아이들과 서핑하러 가요.”

―(돈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최근 팝스타 테일러 스위프트가 스트리밍 서비스인 ‘스포티파이’에서 자기 앨범을 전부 다 뺐잖아요, 싼값에 자기 음악을 들을 수 없도록. 이거 어떻게 생각해요?

“스위프트를 혁명가로 보진 않아요. 하나의 판촉 전략일 뿐이죠. 전 제 음악이 많이 공유됐으면 해요. 경력 초기에 작은 커피숍에서 공연할 때 얘긴데, 음반 살 돈 10달러가 없어 제 CD만 만지작거리는 관객한테 ‘슥’ (공짜로) 제 CD를 선물하곤 했어요. 절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제 음악에 쉽게 닿았으면 해요.”

―요즘 음반시장이 정말 빠르게 변하고 있어요. 어떤 전략을 갖고 있나요?

“제 유일한 전략은 진정성(authenticity)이에요. 스위프트가 성공한 것도 자기 삶을 음악에 담는 진정성 덕이었죠. ‘늘 내 본모습을 지키자(Keep being myself)’가 제 신조예요.”

―신작 ‘예스!’로 첫 빌보드 앨범차트 1위를 달성할 줄 알았는데 실패했어요. 코믹 가수 위어드 앨 얀코빅한테 밀렸죠.

제이슨 므라즈가 신작 ‘예스!’를 함께 만든 여성 인디 밴드 레이닝 제인과 최근 콘서트 무대에 오른 모습. 워너뮤직코리아 제공
제이슨 므라즈가 신작 ‘예스!’를 함께 만든 여성 인디 밴드 레이닝 제인과 최근 콘서트 무대에 오른 모습. 워너뮤직코리아 제공
“얀코빅! 어려서부터 광팬이었죠. 형이랑 그 사람 노래를 흉내 냈어요. 얀코빅의 1위가 정말 기뻐요. 제겐 기회도 더 있고요. 개인적으로도 친해요. 끝내주는 사람(great dude)이에요! 게다가 2위!(오른손 검지와 중지를 들어 보이며) 이거 상징적이죠. 제 앨범이 5집인데 ‘V’는 로마숫자로 5. 함께 작업한 4인조 인디 밴드 ‘레이닝 제인’과 전 5명이고요. 게다가 이건 승리, 평화의 상징이잖아요!(웃음)”

―당신 음악을 들으면 빛나는 햇살 같은 이미지가 떠올라요. 혹시 살면서 특별히 기억에 남는 햇살, 해맞이 같은 게 있었나요?

“(고개를 푹 숙이고 왼손으로 왼쪽 눈두덩을 비비며 ) 아아…. 있긴 있는데… 다른 것(기억)을 떠올리게 해서…. (7초나 머뭇거리다) 오케이! 최고의 햇살은 이거였어요. 좀 이상한(weird) 얘긴데요. 4집(2012년 ‘러브 이스 어 포 레터 워드’) 만들 즈음 일이에요. 제 방에서 혼자 자는데 오전 5시쯤 전화가 왔어요. 요가 수업에서 딱 한 번 만났던 인도 여성이었는데, 자기 스승이 내게 전화를 해서 명상법을 가르쳐주라고 했다더군요. 홀린 듯 수화기를 넘어오는 지시에 따라 혼자 앉아 단전호흡과 명상을 시작했어요. 아침 햇살을 받은 감은 눈 안에서 여러 형태와 색깔이 흔들리더니 점차 큰 빛의 원 하나로 합쳐졌죠. 그때 문득 우리 존재에 대해 깨달았어요. 우린 어떤 일정한 속도나 비율로 진동하는데 삶의 속도를 늦추면 그 진동이 멎으면서 하나의 상, 우리의 본모습이 맺히는 거예요. 눈을 떴는데 빛의 잔상이 남아서 제 시선에 따라 제 손, 나무, 날 둘러싼 모든 것에 그 햇살 같은 게 투사되더군요. 그때 빛에 관한 노래를 많이 썼어요. ‘93 밀리언 마일스’ ‘아이 원트 기브 업’ ‘에브리싱 이스 사운드’…. 괴상한 이야기죠?”

―그러네요. 당신 노래 중에 스스로 제일 아끼는 건 뭐예요?

“‘93 밀리언 마일스.’ 아니다! 어떻게 여러 자식 중에 하나만 예뻐해요?(웃음)”

―그럼 최고 히트 곡에 대해 얘기해 보죠. ‘아임 유어스.’ 가사가 모호하던데, 어떤 메시지를 담은 거예요?

“신을 위해 쓴 곡이에요. 마음을 열고 자신을 놓고, 우주의 에너지가 저(므라즈)라는 악기를 통해 연주되도록 하고 싶었죠. 당시 여자친구에 대한 애정도 담겨 있지만, 요즘 그 노랠 부를 땐 본래 의도로 돌아가게 돼요.”

―종교가 있나요?

“아뇨. 어릴 땐 교회에 다녔는데 성경은 셰익스피어 희곡처럼 혼란스럽게만 느껴졌어요. 종교가 때로 힘의 비즈니스로 돌아가고 분열을 조장하는 데 실망도 했고요. 성전(聖戰)이란 게 왜 존재해야 하나요. 팔레스타인에서 슬픈 뉴스가 들리고….”

―‘므라즈’란 성이 특이해요. 체코 혈통이죠?


“네. 체코어로 ‘서리’란 뜻. 제가 좀 ‘쿨’한 걸 좋아해요.(웃음) 17세기 체코에서 유래했는데, 원래는 ‘므라직’인가 그랬대요. 조상들은 대대로 농부였죠. 저처럼.(웃음) 초등학교 때부터 친구들이 철자를 자꾸 틀려서 ‘미스터(mr) 에이지(az)!’라고 알려줬죠. 결국 2집 제목을 ‘미스터 에이 투 지’라 지었죠.”

―비틀스 멤버 중엔 누굴 젤 좋아해요?

“영화 ‘보이후드’ 봤어요? 멤버 각자 만든 노래는 별로였는데 넷이 뭉치면 최고였다는 내용. 동의해요. 사회운동가로선 존 레넌, 영적 투사로선 조지 해리슨, 아이들을 위한 노래를 만들 땐 링고(링고 스타)를 존경하죠.”

―당신을 닮고 싶어 하는 TV 오디션 참가자들이 많아요. 조언해줄 게 있나요?

“저처럼 되지 말고, 여러분 자신처럼 되세요. 우린 삶의 단계마다 독창적인 실화를 만들어가죠. 그렇게 쌓인 실화를 들려주며 다른 사람의 마음에 다가가야 하죠. 우상에 집착하는 건 창조를 방해하는 일이에요. 다른 사람이 밴드나 음악을 만들기를 기다릴 필요가 없어요. 음악은 그 자체로 (당신에게) 보상이에요. 음악 그 자체보다 당신을 부유하게 만들어줄 수 있는 건 없어요.”

―요즘에도 무명 때처럼 작은 커피숍에서 공연하나요?

“그럼요. 샌디에이고에서 가끔 가명으로요. 가게 이름은 알려줄 수 없어요. ‘아이 원트 기브 업’을 처음 부른 것도 ‘힐 스트리트 커피숍’ 오픈 마이크의 밤 행사에서였어요. 커피숍이 없었다면 저도, 수많은 뮤지션도 없었겠죠.”

―가수가 안 됐으면 뭐가 됐을까요?

“농부나 정원사나 조경사. 무명 때 제가 만든 데모 테이프를 이어폰으로 들으면서 잔디 깎는 기계를 운전하는 일을 하곤 했어요. 정치 풍자 만화가도 좀 되고 싶었죠.”

―부자죠?

“하하. …나쁘지 않은 정도? 소비에 집착하지 않고, 집도 샀고, 땅도 좀 있고…. 감사하죠. 그저 내가 좋아하는 일을 추구한 것뿐이었는데….”

―집에 혼자 사나요?

“10년째 혼자 사니 우울증에 걸릴 지경이더라고요.(웃음) 요즘엔 사람들을 많이 초대해요. ‘지저스’ ‘크리슈나’를 포함한 고양이 네 마리를 기르고요. 닭도 네 마리 길러요.(웃음)”

―꿈꾸던 대로 살고 있나요?

“(물 잔을 3초쯤 만지작거리며 내려보다) 내 꿈…. 집에 더 있는 것, 지금으로선. 서핑 실력도 늘리고. 농장 운영도 더 잘하는 것. 지역적으로 행동하고 사랑하되, 지구적으로 생각하기. 비행기 덜 타기….”

―내년엔 뭐 할 거예요?

“한 해 쉬려고요. 집에 주로 있으면서. 농업, 조경하는 틈틈이 다음 앨범 구상도 좀 하고요.”

―절친한 유명인 있어요?

“17년째 우리 집 소파에서 뭉개는, (웃음) 음악 친구 부시왈라(윌리엄 게일우드). 그리고 레이닝 제인. 함께 음악과 콘서트에 삶의 건강한 모습들을 투영해내고 싶어요.”

므라즈는 21일 대전무역전시관에서 공연한 데 이어 23일 대구 엑스코 컨벤션홀, 24∼25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무대에 선다(8만8000∼14만3000원. 1544-6399, 1544-1555). 공연 예정 시간은 180분이다.

그는 70분 전과 같은 큰 포즈의 악수와 미소로 작별을 고하고 다음 일정, TV 연예 프로그램과 뉴스 녹화를 위해 떠났다. 23일과 24일 방영된다. “안녕, 친구. 공연장에서 봐.”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제이슨 므라즈#자연주의자#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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