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욕과 위선… ‘137년前의 세월호’ 이야기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1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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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센 연극 ‘사회의 기둥들’ 19일 개막… 국내 초연… 박지일 등 심리연기 압권

연극 ‘사회의 기둥들’은 베테랑 배우들이 빚어내는 시너지가 재미를 더한다. 14일 박지일(베르니크) 유성주(산스타드) 손진환(룸멜·오른쪽부터)이 도시에 철도를 개통시키기로 합의한 후 축배를 드는 장면을 연습하고 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연극 ‘사회의 기둥들’은 베테랑 배우들이 빚어내는 시너지가 재미를 더한다. 14일 박지일(베르니크) 유성주(산스타드) 손진환(룸멜·오른쪽부터)이 도시에 철도를 개통시키기로 합의한 후 축배를 드는 장면을 연습하고 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그 거짓에서 빠져나오고 싶다는 그런 바람은 없나요?”(우현주·로나 역)

“나 스스로 내 가정의 행복과 사회적 위치를 포기하란 말이오?”(박지일·베르니크 역)

14일 서울 강남구 LG아트센터 연습실. 19일 막이 오르는 연극 ‘사회의 기둥들’ 연습 현장은 팽팽하면서도 꽉 찬 공기가 감돌고 있었다. 장면마다 사실적인 이야기가 빠른 속도로 진행돼 금방 극에 몰입하게 만들었다. 김광보 연출이 연습 중간에 “붕붕 떠가는 느낌이에요” “너무 조였어요. 숨통을 틔워주세요”라고 지적했다. 다시 연기하는 배우들에게서는 변화가 즉각 느껴졌다.

국내 초연되는 헨리크 입센의 ‘사회의 기둥들’은 노르웨이 소도시에서 선박회사를 운영하는 베르니크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그는 사회적 존경을 받고 있지만 실은 도시 개발로 부당한 이익을 챙기고, 그의 실수를 대신 덮어쓰고 떠났던 처남과 옛 연인이 돌아오자 고장 난 배에 이들을 태워 보내려고 한다.

137년 전의 작품이지만 오늘날의 한국을 연상시키는 대목이 적지 않다. 선체가 완전히 녹슨 배를 선주가 ‘최소한 수리하고 지체 없이 출항시킬 것, 비상시 화물로 수평을 유지할 것’을 요구하거나 베르니크가 직원에게 “배를 모레까지 출항시키지 못하면 해고야”라고 몰아붙이는 장면은 세월호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작품의 소재뿐 아니라 중견 연출가와 박지일 우현주 이석준 정재은 이승주 등 탄탄한 연기력의 배우들이 결합해 관심을 끌고 있다.

이 작품을 무대에 올리기로 결정한 건 세월호 사건이 터지기 전이었다. 하지만 세월호 사건이 터지자 너무나 마음이 무거웠다고 김 연출은 털어놓았다. 극 중에서는 베르니크의 참회 과정도 그려진다. 김 연출은 “참회도 위선이라고 여겨져 결말을 바꾸려고 했지만 고민 끝에 그대로 가기로 했다”며 “누구도 반성하고 책임지지 않는 이 시대에 치유를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 작품은 대극장 무대를 2시간 동안 대사와 세밀한 심리 묘사로 채워 넣어야 하기에 에너지를 잘 조절하는 것이 관건이다. 박지일은 “베르니크는 본질적으로 나쁜 사람은 아닌데 물질과 과시욕에 사로잡혀 부정을 저지르는 인물”이라며 “우리 사회에 이런 인물이 흔하다 보니 감정 이입이 이렇게 금방 되는 역할도 처음이다”라고 말했다.

우현주는 “인간의 내면을 밀도 있게 묘사하는 데다 서사의 힘이 배우를 강하게 끌고 간다”고 했다. 19∼30일 LG아트센터, 3만∼5만 원. 02-2005-0114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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