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나를 찾아서]누구나 마실 수 있지만 아무나 즐길 수 없는 와인, 바롤로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1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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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영FBC

안티노리 프루노토 바롤로(왼쪽)와 피오 체사레 바롤로
안티노리 프루노토 바롤로(왼쪽)와 피오 체사레 바롤로
스산한 계절, 마음을 따뜻하게 해줄 와인이 있다. 바롤로 와인 3종, 피오 체사레 바롤로, 프루노토 바롤로, 그리고 지아니 갈리아르도 바롤로다.

생산자가 다른 세 와인은 모두 영롱한 붉은 루비색으로 아름다운 자태를 뽐낸다. 부드러운 레드 와인을 예상했지만 한입 흘려 넣는 순간 입안 가득히 퍼져오는 타닌의 느낌은 점점 더 묵직하게 느껴지고 장미향을 넘어 온갖 스파이시한 향이 코를 자극한다. 추운 바람이 부는 날 마음을 채워주는, 그야말로 겨울 와인이다.

‘와인의 왕, 왕들의 와인’ ‘와인 애호가들의 종착역’ ‘이탈리아 와인의 대명사’ 등 바롤로 와인을 표현한 엄청난 말들이 있지만, 사실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은 드물다.

바롤로는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와인이자 세계적인 명품 와인임에 틀림없다. 각종 와인 평가서와 이탈리아 와인에 관한 전문 서적들을 통해, 그리고 1980년 최초의 DOCG(이탈리아 와인 등급 중 최고 등급)가 선정될 때 바르바레스코,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 그리고 바롤로 등 단 3개의 지역만이 선정된 사실을 통해 이는 충분히 뒷받침 된다.

바롤로는 종종 프랑스 부르고뉴와 비교된다. 아무리 외워도 도무지 끝나지 않는 부르고뉴의 밭 이름들처럼 바롤로도 세밀한 테루아로 구분된다. 작은 크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부르고뉴보다 약 16배 작은 바롤로 DOCG는 바롤로, 카르틸리오네 팔레토, 세라룽가 달바, 케라스코, 디아노 달바, 그린자네 카부르, 라 모라, 몬포르테 달바, 노벨로, 로디, 베르두노 등 총 11개의 지역으로 구성되어 있다.

피노누아 100%의 부르고뉴 와인처럼 바롤로는 네비올로 100%로 생산한다. 바롤로는 영롱한 루비빛과 복합적인 아로마로 종종 부르고뉴 피노누아와 비교되지만 맛은 완전히 다르다.

강건한 산도와 함께 입안을 서서히 조여오는 타닌의 느낌은 육중한 바디감을 선사한다. 높은 산도와 부드러운 타닌의 피노누아와 가장 대조되는 면이다. 또한 마른 장미와 타르 향으로 대표되는 네비올로는 풍부한 고급 와인의 아로마로 표현되며 장기 숙성이 가능한, 의심의 여지없는 풀바디 와인이다.

하지만 같은 바롤로라도 다 조금씩 다르다. 특히 피오 체사레의 바롤로가 탄탄한 근육의 건강미 넘치는 젊은 남성의 느낌이라면 프루노토는 선생님 말 잘 듣는 학생의 느낌, 그리고 지아니 갈리아르도는 세련된 검은 슈트를 차려 입은 이탈리아 멋쟁이의 느낌이다.

바롤로는 전통적인 스타일과 현대적인 스타일로 구분된다. 오랜 시간 숙성된 와인에서 얻을 수 있는 젖은 흙과 버섯의 아로마와 강한 알코올이 특징적인 전통적 바롤로와 진한 과일향과 오크 숙성에서 오는 바닐라향, 그리고 부드러운 타닌으로 오래 기다리지 않고 빨리 마실 수 있는 현대적인 바롤로는 ‘바롤로 전쟁’이라 불릴 만큼 그 호불호가 갈린다.

전통적인 스타일과 현대적인 스타일을 절충한 새로운 바롤로의 탄생에도 불구하고 이 싸움은 계속되고 있다. 피오 체사레와 프루노토가 두 스타일을 절충한 타입이라면, 지아니 갈리아르도는 현대적인 스타일에 가깝다.

바롤로가 부르고뉴 피노누아와 같은 점 하나 ‘와인을 좀 마셔본 사람’만이 그 진정한 가치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첫 모금에 아주 황홀하고 매력적인 느낌을 주기보다는 오히려 신맛과 알코올로 인해 실망하는 쪽이 더 많다. 하지만 조금씩 와인의 맛을 알아가면서 오묘한 장미향이 주는 그 느낌에 흠뻑 빠져들게 된다. 바롤로는 특히 음식과 함께할 때 빛을 발한다. 이탈리아 음식인 파스타나 리조토와 함께해도 좋지만 씹는 느낌과 함께 마블링이 좋은 꽃등심과 함께라면 전 세계 ‘고기테리언’들의 마음을 흔들어놓기에 충분할 것이다.

와인은 거창하거나 어려운 술이 아니다. 하지만 바롤로는 모두를 위한 와인이 아닌 와인을 진정 이해하고 즐길 수 있는 이들을 위한 와인이다.

최윤호 기자 uknow@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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