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테크 혁명은 위기이자 기회… ‘IT 날개’로 한계 벗어나야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1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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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테크’ 금융혁명이 온다]<5> 선제공격이 최선의 전략

중국 전자상거래업체 알리바바는 지난해 6월 온라인 전용 펀드 ‘위어바오’를 선보였다. 고객이 온라인쇼핑몰 거래를 위해 ‘알리페이’에 충전해둔 여윳돈을 자산운용사에 맡겨 불려주는 구조다. 인터넷으로 편리하게 가입할 수 있고 수익률이 5∼6%대로 높다는 점 때문에 폭발적 인기를 끌며 1년 만에 가입자 1억 명, 가입금액 5700억 위안(약 96조 원)을 끌어들였다. 이에 자극받은 경쟁 정보기술(IT)업체 바이두, 텐센트도 온라인 펀드를 내놓으며 금융시장에 뛰어들었다.

IT기업의 공습에 놀란 중국 은행들은 이 업체들의 온라인 결제 한도를 줄이며 방어에 나섰다. 동시에 연 6%대 수익을 주는 펀드를 새로 내놓으며 맞불을 놨다. 정기예금 판매에 주력하며 정부가 보장하는 예대마진으로 손쉽게 돈을 벌던 중국 은행들이 새로운 고객 발굴에 눈을 돌리며 혁신에 나서기 시작한 것이다. 위어바오 열풍은 중국 은행의 체질 변화는 물론이고 중국 금융산업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계기가 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 해외진출 벽 넘을 대안으로 부상

글로벌 컨설팅업체 액센추어는 최근 미국의 전체 금융산업에서 은행이 차지하는 시장점유율이 지난해 85.7%에서 2020년에 60%로 대폭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기존 은행이 물러난 자리는 신생 온라인금융회사와 IT기업이 잠식할 것으로 분석했다.

저금리, 저성장의 시장 환경으로 최악의 보릿고개를 겪고 있는 국내 금융회사에도 핀테크(FinTech·금융기술)의 부상은 위기이자 기회다. 전문가들은 국내 금융회사들이 IT의 금융시장 공습을 위협으로 여기고 경계하기보다 경쟁과 협력을 통해 성장의 한계에 빠진 한국 금융산업을 한 단계 도약시키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핀테크 기업과의 적극적 인수합병(M&A) 등을 통해 시장을 선제공격하는 것이 최선의 전략이라는 것이다.

중국 최대 보험사인 핑안보험은 지난해 11월 알리바바, 텐센트와 손잡고 중국 최초의 온라인 보험사 ‘중안보험’을 세웠다. IT기업과 합작한 만큼 기존 보험상품 대신 온라인 쇼핑에 특화된 상품이나 온라인게임 아이템을 보장해주는 보험 등 신개념 상품을 내놓아 큰 호응을 얻고 있다. 미국 웰스파고, 뱅크오브아메리카, 영국 바클레이스 등은 아예 핀테크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을 선정해 지원한 뒤 이들이 개발한 첨단 서비스를 자사 금융상품에 결합하는 방식으로 핀테크 혁명을 선도하고 있다.

IT와의 융합은 해외시장에 진출해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는 국내 금융회사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방안으로도 꼽힌다. 온라인은행, 모바일 결제서비스 등의 형태로 해외시장에 진출하면 막대한 비용과 인력을 들이지 않고도 해외 금융시장의 틈새를 파고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스페인 자산규모 2위 은행인 BBVA는 2월 미국 온라인은행 ‘심플’을 인수해 현지 시장을 공략하는 동시에 관련 기술을 전수받았다.

영국의 이동통신사 보다폰은 아프리카에 은행이 별로 없지만 아프리카인의 70%가 휴대전화를 갖고 있다는 점에 착안해 휴대전화를 이용한 모바일 결제·송금 서비스 ‘엠-페사’를 아프리카, 인도 등에서 선보여 선풍적 인기를 끌고 있다.

○ “융합 금융인 육성에 힘 쏟아야”

핀테크 혁명은 국내 금융업뿐 아니라 산업계 전반의 일자리 생태계도 바꿔놓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 실리콘밸리를 넘보는 ‘스타트업의 요람’이자 ‘핀테크 허브’로 주목받는 영국 런던의 테크시티에서는 작년 1년간 IT 스타트업에 10억 달러가 넘는 투자가 이뤄졌다. 이 중 핀테크 관련 투자만 2억6500만 달러에 이른다. 2010년 4만9000여 개였던 런던의 IT 벤처기업 수는 작년 말 8만8200여 개로 급증했다. 런던에서 늘어난 일자리의 27%가 테크시티에서 탄생했다.

국내 금융회사들도 핀테크 흐름에 맞춰 IT 전문인력을 잇달아 채용하며 전문 부서를 만드는 등 조직 변화에 나서고 있다. 우리은행은 지난해부터 온라인마케팅업체, 데이터분석 전문업체 출신 인력을 꾸준히 뽑아 스마트채널전략부 인력의 15% 이상을 IT 전문가로 채웠다. 빅데이터에 주력하는 카드업계에서는 신한카드와 삼성카드가 잇달아 데이터분석 전문가를 임원으로 영입하고 관련 조직을 확대했다.

오정근 한국금융ICT융합학회 회장(건국대 특임교수)은 “금융회사들이 IT인력 채용을 늘리는 것은 바람직한 추세이지만 IT인력과 금융인력이 서로 협업을 하지 못하고 따로 놀고 있어 문제”라며 “핀테크 융합시대에 맞춰 ‘융합 금융인’을 기르는 데 힘을 쏟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은행, 증권사 점포들이 무인점포나 스마트브랜치 등으로 바뀌더라도 금융권의 대규모 인력 감축으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고객과 대면하는 창구 직원 등의 전통적 일자리는 사라지지만 미래형 점포의 후선 지원 인력, 데이터분석 인력 등 IT와 결합한 새로운 금융서비스 일자리 수요가 늘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배현기 하나금융경영연구소장은 “금융회사들이 내부 혁신을 통해 기존 인력을 재훈련하는 등 인력의 역할 변화를 이끌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특별취재팀
팀장=신치영 경제부 차장 higgledy@donga.com
팀원=유재동 정임수 김재영 신민기 송충현 박민우 경제부 기자
#핀테크#IT#위어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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