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후 7개월간 독수공방, 신부가 보고 싶어도…”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1월 6일 16시 2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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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가 보고 싶고요, 같이 있어야 정이 들텐데 자주 가보지 못하니 답답하고…."

경기도의 한 중소도시에서 지게차 운전을 하는 송모 씨(39)는 베트남에 있는 신부(20)를 떠올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지인의 소개로 올해 3월 베트남에 가서 신부를 소개받아 곧장 결혼식을 올렸다. 송 씨는 "말은 안 통했지만 외모가 마음에 들었고, 웃는 모습이 착해보여서 결혼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한국에 돌아온 지 한 달여 뒤에 혼인신고도 했다.

과거에는 송 씨처럼 부부간 의사소통이 전혀 안 돼도 신부에게 결혼이민비자가 발급됐다. 하지만 정부는 올해 4월부터 접수되는 결혼이민비자는 부부간 의사소통이 되지 않으면 발급을 제한하고 있다. 외국인 배우자는 한국어능력시험 증명서, 한국어교육 초급 이수증, 한국어 학위, 동포 입증서류, 한국에서 1년 이상 체류한 기록 등 중에 하나를 제출해 부부간 의사소통이 가능함을 입증해야 한다. 또 한국인 배우자가 일정 수준(올해 2인기준 월 123만2900원) 이상의 소득과 안정적인 주거공간이 있어야 비자가 발급된다.

송 씨는 통역 없이는 신부와 의사소통이 불가능한 상태다. 이런 경우 신부는 정부가 지정한 한국어교육기관을 찾아 교육을 이수해야 한다. 하지만 베트남 현지의 교육기관은 이미 수강인원이 꽉 찬 상태였다. 신부는 등록조차 하지 못했다. 사설학원에서 공부해 한국어능력시험을 치르는 방법도 있지만 합격할 자신이 없어 그저 교육기관에 자리가 나기만 기다리고 있다. 송 씨는 "기약도 없이 기다리다보니 신부가 마음이 바뀔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정부가 비자심사를 강화한 뒤 송 씨처럼 부부간 소통이 안 되는 사람들이 비자 신청을 못하면서 결혼이민 비자접수 건수가 크게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본보가 법무부로부터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국제결혼 비자 접수건수는 올해 4~9월 6개월간 3585건으로 월평균 598건이었다. 지난해 같은 기간엔 총 7853건이 접수돼 월평균 1309건이었다.

국내에서 국제결혼은 낯선 외국인과의 맞선을 통한 '속성결혼'이 많아 많은 사람들이 비자요건을 충족하지 못한다. 경북지역의 국제결혼중개업자 이모 씨는 "과거엔 맞선에서 신부 입국까지 4~6개월이 걸렸는데 지금은 8개월~1년이 걸린다"며 "보통 신랑들이 신부가 입국할 때까지 매달 생활비를 30만 원씩 대주는데 결혼에 드는 비용도 늘어났다"고 말했다.

'신속한 결혼 성사'로 수익을 내는 중개업체들은 울상이다. 결혼중개업체들의 모임인 한국다문화결혼협회의 한유진 회장은 "신부들이 현지에서 한국어 교육을 받다보면 결혼 대신 현지의 한국기업에 취직해 돈 버는 걸 택하기도 한다"며 "한국어 공부를 하다 포기하고 한국에 안가겠다며 잠적해 신랑에게 다시 맞선을 시켜줘야 할 때도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결혼이민자에게 최소한의 언어 요건을 부과하는 건 속성입국의 부작용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라고 말한다. 조항록 상명대 교육대학원 교수는 "결혼이민자들이 언어소통이 안 되는 상태에서 입국하면 스스로의 인권과 행복을 보장받기 힘들다"며 "선진 이민국가에서도 기존 국민들과의 통합과 국가의 미래를 위해 이런 제도를 실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법무부 관계자는 "양 당사자가 혼인관계를 지속적으로 유지하려면 최소한 기초수준의 언어소통능력을 습득하도록 노력해야지 않겠느냐"며 "해외에서 한국어능력 평가를 받을 수 있는 방법이 수요에 비해 부족한 점은 대안을 검토중이다"라고 말했다.

이샘물 기자 ev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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