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김현종]유능한 협상가들이 국력을 좌우한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1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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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TA 재협상 불가” 강경하던 美, 우리의 “결렬 불사” 강공에 굴복
“기한내 타결” 패 읽힌 韓中 FTA… 中 시간끌기로 협상내내 고전
국가간 협상은 총칼없는 전쟁… 치밀한 전략, 전술은 기본
부모와도 등질수 있다는 자세 필요

김현종 전 통상교섭본부장 주유엔 대사
김현종 전 통상교섭본부장 주유엔 대사
한 노련한 외국 협상 대표가 자국의 협상가들에게 “국가를 대표하는 협상가들은 국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부모와도 등질 수 있는 자세로 협상에 임해야 한다”고 조언하는 내용을 엿들은 적이 있다. 국가를 대표하는 협상가들은 국익을 쟁취하기 위해 상대방을 현혹시키고 교란작전도 사용한다.

‘칼날 위의 평화’라는 책에 따르면, 한국 정부는 주권적 차원에서 북한 유사시 주체적으로 책임지고 대처한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다. 저자에 따르면, 미국은 북한 비(非)전시 급변사태에 대응하는 주체를 한국 정부가 아닌 주한미군사령관이 통제하는 한미연합사로 변경시키는 협상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 이를 우리 언론에 누설시켜 국내 여론을 미국 측에 유리하도록 몰아갔다고 한다. 미국 측은 한미동맹에 악영향을 끼쳤다며 우리 외교안보 담당자들을 거세게 비난했다. 당시 청와대에서는 누설자가 한국인이라고 생각했지만 결국은 미국 측 인사였다. 교활한 협상전략이다.

북한도 협상력을 높이기 위해 다방면의 수단을 사용하는 것으로 간파된다. 고위급 3명이 갑자기 인천 아시아경기 폐막식에 참석했다. 자기네 선수단을 격려하러 온 북한 고위 관료들에게 청와대 방문을 제안했지만 그들은 시간이 없다며 돌아갔다. 경호원이 들고 있던 검은색 서류가방은 미국 대통령이 이동할 때 해병장교가 들고 다니는 핵 가방을 연상시켰다. 북한이 핵무력을 과시한 것이다. 그리고 이런 상황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전략가가 북한에 존재함을 간접적으로 보여 준 것이다. 치밀한 계산이었다.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을 담당하는 통상 협상가들은 이런 어려움을 호소했다. 우리 대통령이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때까지 협상 타결을 지시했음을 인지한 중국 측이 양보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간만 지나면 우리 협상가들이 무너질 것을 예측한 것이다. 중국은 한국-캐나다 정상회담 전에 양국 간의 FTA가 급속히 타결된 것을 지켜보았을 것이다.

냉정한 국제질서에서 특히 실시간으로 지형이 변하는 동북아 지역에서 협상가들은 치밀한 전략과 전술을 가지고 ‘신(新)조선책략’을 구사하는 중국에 대비해야 한다. 경험이 많은 우리 협상가들이 좋은 결과를 내겠지만 이들에게 힘을 실어 주기 위해서는 마감일을 언급하는 것은 금기이며 언제든지 깰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해야 한다.

상대방에게 협상을 결렬시킬 수 있다는 압박을 가할 수 있었기 때문에 한미 FTA가 타결돼 2012년 3월 15일 발효될 수 있었던 것이다. 미국은 2007년 6월 30일 체결 시 재협상은 없다고 공개적으로 약속했지만 결과가 불리하다고 생각되자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한국 정부와 재협상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1년 116억4000만 달러였던 대미 무역 흑자가 한미 FTA 발효 이후 2012년(첫 3개월 포함) 151억8000만 달러, 2013년에는 205억4000만 달러로 증가했다. 올해 8월까지 대미 무역 흑자는 150억8000만 달러다.

국제무대에서 협상을 깨기 위해서는 명분과 논리가 필요하다. 우리한테 불리한 한일 FTA를 깨기 위해 수석대표였던 필자는 56%에 불과한 일본의 낮은 농산물 개방률을 이유로 내세웠다.

상대방의 요구사항을 포기시킬 때도 마찬가지다. 한미 FTA 협상 당시 미국이 자국 제약사들의 신약에 대해 높은 최소가격을 요구했을 때 필자는 미 제약회사들을 위해 죽도록 싸웠지만 불가능하다고 강조하며 미국의 요구사항을 포기시켰다. 결론적으로 한국은 의약품 가격과 관련해 양보를 하지 않아도 되었고 오늘날 신약에 대해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낮은 가격을 지불하는 나라 중 하나다. 협상 시 상대방을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안 됐으니 포기하라고 설득하는 것은 효율적인 협상 전술이다.

우리 협상가들은 선진국들과 상대할 때 줄 것은 많지 않고 받을 것이 많기 때문에 지렛대를 만들어야 한다. 6·25전쟁 종전 무렵 휴전론이 대세였지만 이승만 대통령은 반공포로 석방이란 강수를 두며 철수하려는 미국과 협상해 상호방위조약, 2억 달러의 원조 및 20개 사단을 포함한 우리 군의 증강 약속을 받아냈다.

민족주의자인 단재 신채호는 “세계와 교섭하며 분투함으로써 세계 속에 독립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니, 그 나라에 세계와 교섭할 수 있는 탁월한 협상가들이 있어야 그 민족이 독자적으로 운명을 개척해 나갈 수 있다”고 말했다. 우리 미래에 영향을 미치는 원자력협정, FTA 등 굵직한 협상들에 우리 협상가들이 국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자세를 가지고 임할 필요가 있다.

김현종 전 통상교섭본부장 주유엔 대사
#칼날 위의 평화#북한#협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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