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송평인]존엄한 죽음에 관한 고민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1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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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요틴은 프랑스 혁명 당시 죄수의 목을 자르던 형벌 기구다. 공포 정치의 상징물처럼 알려져 있지만 실은 파리 의대의 조제프이냐스 기요탱 박사가 인도적인 처형을 위해 고안한 것이다. 오늘날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의 잔인한 참수형을 떠올려보면 날카로운 칼날로 단번에 목을 자르는 사형이 당시 얼마나 인도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졌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죽음도 두렵지만 죽음에 이르는 고통도 두렵다.

▷현대 의학은 생명을 연장시켰으나 어떻게 살 것인가 외에 어떻게 죽을 것인가라는 새로운 숙제를 던진 것도 사실이다. 말기 암 환자가 가족이었던 사람들은 암 환자가 얼마나 고통스럽게 죽어 가는지 알고 있다. 고통이 증가함에 따라 모르핀 투여량은 늘어나고 환자는 비몽사몽 상태가 돼 지내다 어느 순간 인사불성이 되고 결국 마지막 남은 생명의 끈을 놓아버린다. 이런 환자의 모습을 봤다면 사랑하는 사람의 고통을 대신해 주지 못하는 안타까움과 동시에 누구나 ‘존엄한 죽음’을 한 번쯤 생각해볼 것이다.

▷미국 여성 브리타니 메이너드(29)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예고한 날에 의사가 처방해준 약을 먹고 가족들이 보는 앞에서 세상을 떠났다. 뇌종양으로 시한부 삶을 살던 메이너드는 증인 입회하에 수차례 안락사에 동의하고 복수의 의사 진단을 받아 극약을 처방받았다. 그는 ‘버킷 리스트’대로 그랜드캐니언 여행을 다녀온 뒤 잠시 상태가 호전돼 죽음을 연기할 생각도 있었으나 병세가 악화되자 예정대로 결행했다. 살고 싶지 않은 사람은 없다. 죽음을 결심할 때, 또 침대에서 약을 삼키려 할 때 그 마음이 어땠을까.

▷존엄사는 엄밀한 개념은 아니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많은 나라들이 회복 가능성이 없는 환자에게 연명 조치를 하지 않는 소극적 안락사만 존엄사로 본다. 미국 캐나다의 일부 주와 네덜란드 등 몇몇 나라에서는 환자의 동의하에 환자의 생명을 적극적으로 끊어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는 자발적 안락사까지 존엄사에 포함시킨다. 우리나라도 존엄사의 범위를 좀 더 확대하는 문제를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존엄#죽음#기요틴#현대 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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