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시위 자유가 시민의 통행보다 우선이라는 해괴한 판결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1월 4일 03시 00분


서울중앙지법 형사11단독 우인성 판사가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 쌍용자동차 농성장 철거를 막다가 공무집행 방해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문기주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정비지회장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쌍용차 노조는 대한문 앞에 자살 노조원을 추모하는 분향대와 천막을 세우고 1년 넘게 농성을 해왔다. 서울 중구와 경찰이 작년 4월 농성장을 철거하고 화단을 설치했지만 노조 측이 다시 농성장을 설치했고, 재철거 과정에서 몸싸움이 벌어져 문 씨와 김정우 노조지부장이 연행됐다. 작년 말 서울중앙지법 형사38부는 농성 천막 철거가 적법하다며 김 씨에게 징역 10개월의 실형을 선고한 바 있다.

헌법이 집회와 시위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지만 공공시설물을 점거하거나 다른 사람의 권리를 침해하는 무제한의 자유일 순 없다. 도로를 점거해 시민 통행에 불편을 주는 천막 설치는 당연히 행정당국의 제재를 받아야 한다.

그런데도 우 판사는 “집회와 시위의 자유는 교통 방해와 타인 불편을 예정한 기본권”이라는 황당한 논리를 폈다. 행정당국이 숱한 경고 끝에 불법 시설물을 철거한 것이 위법이라는 우 판사의 판단은 상식 밖이다. 덕수궁 앞을 지나다니는 시민과 관광차 방문한 외국인들이 얼마나 큰 불편을 겪는지 우 판사가 한 번이라도 봤다면 그런 판결은 못했을 것이다.

실형이 선고된 김 씨와 무죄가 선고된 문 씨의 혐의는 똑같다. 김 씨는 구속 피고인이었기 때문에 판사 세 명으로 구성된 합의부에서, 불구속 기소된 문 씨는 단독 재판부에서 재판을 받았을 뿐이다. 김 씨보다 노조 내의 직급이 낮은 문 씨의 책임을 가볍게 볼 수는 있다. 그러나 강제 철거를 몸으로 막은 것까지 정당한 행위로 판단해 무죄를 선고한 것은 문제가 있다.

법과 양심에 따른 ‘소신 판결’이 정상인의 상식을 일탈한다면 소신이라기보다 독단이다. 법관의 양심은 객관성과 보편성을 지녀야 한다. “얕은 정의감이나 설익은 신조를 양심과 혼동하지 말라”고 당부했던 양승태 대법원장은 법관들이 자신의 말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살피기 바란다. 사법부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리는 럭비공 판결은 상급심에서 바로잡혀야 할 것이다.
#집회#시위의 자유#소신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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