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님은 ‘소통王’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1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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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냄새나는 마을’에 친환경 에너지타운 유치한 지진수씨

박근혜 정부의 국정과제 중 하나인 친환경 에너지타운 시범사업이 10월 30일 첫 삽을 뜨기까지 산골 마을 30대 이장의 숨은 노력이 큰 역할을 했다. 친환경 에너지타운 시범사업은 가축분뇨나 음식물 쓰레기를 처리하는 기피 시설을 에너지 자원화 시설로 활용하는 것. 광주와 충북 진천을 포함해 3곳이 사업지로 선정됐고 이 가운데 강원 홍천군 북방면 소매곡리가 가장 먼저 첫 삽을 떴다.

소매곡리 이장 지진수 씨(39·사진). 지난해 그는 친환경 에너지타운 시범사업지로 선정되는 것에 반대하는 마을 주민들을 설득하느라 아침부터 저녁까지 한 집, 한 집 찾아다녔다. 어떤 날은 하루 종일 주민을 찾아다니다가 속이 쓰린 줄도 몰랐다. 받아 마신 커피가 17잔이나 됐던 것. 그는 “주민을 설득하는 데만 정신이 팔려 몇 잔을 마신 줄도 몰랐다”며 “17잔이나 마셨다는 건 집에 돌아와 방문 가구 수를 세어보고서야 알았다”고 말했다.

마을 주민들은 친환경 에너지타운 시범사업을 못마땅해했다. 1998년의 일 때문이다. 당시 홍천군은 이 마을에 하수처리장과 가축분뇨 처리 시설을 짓기로 하면서 마을 진입로 확장과 다리 건설을 주민들에게 약속했다. 하지만 홍천군은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분뇨 처리 시설이 들어서자 소매곡리는 이웃마을 주민들에게 ‘냄새나는 마을’로 불렸다. 땅값도 옆 마을의 절반도 안 되는 평당 20만 원대로 떨어졌다. 이 일을 기억하는 주민들은 “두 번은 안 속는다”며 에너지타운 선정에 반대했다.

하지만 지 이장은 이번에는 1998년과 사정이 다르다는 것을 강조했다. 냄새 저감 시설을 따로 갖추고 무엇보다 친환경 에너지타운이 되면 마을 소득이 증가한다는 것을 공들여 설명했다. 그래도 일부 주민은 끝까지 반대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 특히 식당이나 펜션을 운영하는 외지인들의 반대가 심했다. 맞벌이를 하는 지 이장의 아내는 “생업(정수기 사업)은 뒷전이고 실속 없이 마을 일에만 매달린다”며 쏘아붙이기까지 했다.

지 이장은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다. 반대가 심한 식당 주인에게는 마을회의 후 회식 손님을 몰아주면서까지 설득을 시도했다. 그래도 돌아서지 않는 주민에게는 마지막 설득 카드로 두 딸 얘기를 꺼냈다. 지 이장에게는 여덟 살, 다섯 살 된 딸이 있다. “제가 나고 자란 마을이고 딸아이들이 앞으로 10년은 더 살 동네인데 해로운 시설이면 왜 마을에 들이자고 하겠습니까.” 결국 그는 마을 57가구 121명의 주민 중 97명에게서 에너지타운 사업에 찬성한다는 동의를 받아냈다.

지 이장은 홍천농고를 졸업한 뒤 군 입대를 하기 전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누나들이 살고 있는 인천에서 6개월간 지낸 것을 빼고는 마을을 떠나본 적이 없는 토박이다. 전임 이장이던 2년 선배가 서울로 떠난 뒤 마을 노인들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해 2010년 12월 이장을 맡았다. 윤성규 환경부 장관과 함께 착공식 테이프 커팅에 참여한 지 이장은 착공식 후 이장을 그만두려 했다가 마을 어른들의 성화에 완공 때까지 이장을 계속 맡기로 했다.

2016년 9월 에너지타운이 완공되면 주민들은 가축분뇨와 음식물 쓰레기를 바이오가스로 만든 뒤 강원도시가스로 보내게 된다. 강원도시가스는 바이오가스를 정제해 도시가스로 만들어 소매곡리 주민들에게 공급한다. 이를 통해 주민들은 가구당 연간 90만 원의 연료비를 아낄 수 있다. 주민들은 또 가축분뇨와 음식물 쓰레기 처리 과정에서 생기는 고체형 찌꺼기는 퇴비로, 액체는 액체비료로 만드는 시설을 직접 운영하면서 여기서 나오는 퇴비와 액체비료를 팔아 연간 5200만 원의 마을 수익을 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종석 기자 wing@donga.com
#지진수#에너지타운#친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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