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원조 받다가 주는 유일한 나라, 학부부터 국제협력을…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0월 29일 11시 2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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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철 교수가 \'국가경영과 개발\' 과목 시간에 학생들에게 중간고사에 대한 얘기를 유머를 섞어가며 하고 있다.
조영철 교수가 \'국가경영과 개발\' 과목 시간에 학생들에게 중간고사에 대한 얘기를 유머를 섞어가며 하고 있다.

전북대 국제학부 학생들은 9월 22일 국제스포츠외교재단(International Sports Relations Foundation)이 서울의 63빌딩에서 개최한 '2014 ISR포럼'을 견학한 후 칵테일파티까지 참석했다. 학생들이 견학만 하지 않고 아시아 각국에서 온 학자들과 칵테일을 마시며 대화를 나눈 것은 파티에서의 매너도 글로벌 마인드를 갖추는데 중요하다고 생각한 국제학부 교수들의 배려 덕분이었다.

국제학부는 전북대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한국의 국제적인 위상이 높아짐에 따라 글로벌리더를 양성하기 위해 2001년부터 등장했다. 지금은 서울에 8개, 지방에 23개 등 31개 대학에서 운영하고 있다. 국제학부의 특징은 대부분의 수업을 영어로 한다는 것과 네트워크를 맺은 해외대학에서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것. 그러나 국제학부 진학에 관심 있는 학생들이나 학부모들이 각 대학의 국제학부가 갖고 있는 특징과 차이를 얼마나 알고 있을까. 전북대 역시 2013년 국제학부를 만들고 공격적인 투자를 통해 대학의 간판학과로 만들고 싶어 한다. 전북대 국제학부도 다른 대학의 국제학부처럼 영어수업, 해외연수 등 외형적인 특징은 비슷하지만 뭔가 다른 것을 갖고 있을 게 분명하다. 그것이 궁금해 전광호 국제학부장을 만나봤다.

전광호 전북대 국제학부장이 자신의 연구실에서 아프리카지역연구 수업을 하고 있다.
전광호 전북대 국제학부장이 자신의 연구실에서 아프리카지역연구 수업을 하고 있다.

-국제학부를 만든 계기는 무엇인가?

"10여 년 전부터 유행처럼 국제학부가 생겼다. 하지만 국제학부의 정체성이 모호해 실패하는 경우도 봤다. 하지만 나는 '국제개발협력학'을 중심으로 국제학부를 구성하면 통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국제개발협력학'은 이제 막 뜨기 시작한 학문으로 '개발전문가'를 양성하는데 적합한 학문이다. 현재 유엔이 권고하는 국민총소득 대비 공적개발원조(ODA) 비율은 0.7%인데 비해 한국은 0.13%에 그치고 있다. 정부는 이 비율을 2015년까지 0.25%로 끌어올릴 예정이다. 개발전문가 수요가 급증할 것이라는 예상이 국제학부를 만든 중요한 이유 중 하나다."

-서울과 지방 대학 여러 곳에 이미 국제학부가 있다. 전북대 국제학부는 후발주자인 셈인데 차별화 전략은 무엇인가?

"첫째, '국제개발협력학'에 중점을 두고 있다는 게 다른 대학과 큰 차이다. '국제개발협력학'이란 국제사회의 빈곤, 실업, 소외계층 등 저개발 문제를 연구하고 개선방안을 찾는 학문이다. 국가간에 이뤄지는 원조에 대해서도 학문적 연구를 한다. 한국은 원조를 받다가 주는 나라가 된 유일한 국가다. 공여경험이 없는 상태에서 주는 입장으로 변했다. 코이카(KOICA)라는 대외 무상협력사업 전담기관을 만들어 대외원조를 하고 있지만 원조기금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잘 몰라 낭비되는 예산도 많다. 국민의 세금으로 하는 대외원조도 철저히 국익에 이바지할 수 있어야 한다. '국제개발협력학'을 통해 대외원조 전문가를 기른다면 국익에도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둘째, 외국어 중시다. 학부 특성상 글로벌 감각이 필수적이기 때문에 지방대 국제학부에서는 유일하게 교양과목을 포함해 모든 과목을 영어로 강의하고 있다. 영어와 제2외국어에 대한 졸업기준도 있다."

-대부분의 국제학부는 '국제개발협력학'을 대학원 과정에 개설하고 있는데 학부에 개설한 이유는?

"어떤 나라가 외부원조를 할 때는 인도주의적 차원뿐 아니라 정치·외교·경제적인 요소를 복합적으로 고려한다. 따라서 이것을 연구하는 '국제개발협력학'은 융합학문이다. 공부할 게 많은데 2년만 배우고 국제학부 학생 대다수가 원하는 국제기구로 진출하기란 역부족이다. 학부 때부터 다양한 기초지식을 쌓고 준비해야 진로를 찾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판단했다."

-'국제개발협력학'의 중심 커리큘럼은?

"국제개발협력학(3학점)을 포함해 전체 커리큘럼의 60%가 관련 과목이다. 2학년 때까지 6개의 전공기초과목을 다 이수해야 한다. 지역연구 1·2의 경우 학기 전에 학생들의 요구에 맞춰 지역을 결정하는 등 과목 개설이 유연한 것도 특징이다. 타 대학 국제학부에서 주요하게 다루는 국제정치, 국제법, 국제경영 등은 우리학부에서는 백그라운드 역할에 그친다."

-'국제개발협력학'의 교수진은 어떻게 구성돼 있는가?

"현재 4명의 '국제개발협력학' 전공 교수와 3명의 강사가 있다. 이번 학기에 외국인 교수 2명을 더 충원하는 등 2016년까지 3명의 교수를 더 받아들여 국제개발전문대학원도 개설할 예정이다."
전광호 학부장 또한 벨기에 루뱅대에서 국제관계학 석박사를 취득한 후 같은 대학에서 정치학과 교수를 5년간 지냈다. 영국 런던대 킹스칼리지와 센트럴 랭커셔대에서 국제개발협력학을 강의한 적도 있는 국제개발협력분야의 중견 국제정치학자다.

-국제학부의 특성상 해외 대학들과 연계도 중요한데 어떤 대학과 네트워크를 맺고 있나?

"11월에 미국 버지니아주에 있는 조지 메이슨 대학과 국제학과 공동학위 과정을 개설할 예정이다. 공동학위란 협정을 맺은 대학의 졸업을 인정하는 것으로 전북대 국제학부생은 4년간 전주에서 공부를 하고 졸업을 함과 동시에 조지 메이슨대 국제학과 졸업장도 받는다. 조지 메이슨대 국제학과는 국제학과 세계 랭킹 53위의 명문이다. 또 두 학과의 교수와 학생들은 서로 버지니아와 전주에서 강의도 하고 수강도 할 수 있다. 전북대 국제학부 학생들은 이곳 등록금만 내고 조지 메이슨 대학에 유학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미국 조지아 주립대와도 네트워크를 맺고 있다. 올 겨울방학 때는 50명의 학생을 선발해 미국 현지에서 4학점짜리 '국제개발협력학'을 수강시킬 예정이다. 이때 드는 일인당 비용 600만 원은 학교가 지원한다. 미국 예일대와 복수학위를 인정하는 등 전 세계 25개 대학과 긴밀한 협조관계를 맺고 있다."

-'국제개발협력학'의 특성을 살린 해외 현장 실습도 하고 있다는데….

"올겨울방학 때 학생 4명이 한 팀을 이뤄 에콰도르의 전자정부 시스템을 연구하러 간다. 나라와 주제 모두 학생들이 정한 것이다. 에콰도르는 원조를 받는 국가인데 '국제개발협력학'에서는 원조를 주는 나라뿐 아니라 원조를 받는 나라에 대한 연구도 필요하다. 학교에서 배운 것을 바탕으로 해외 현장 실습을 통해 실무능력을 키우고 현지 전문가로 커가는 것이다. 여기에 들어가는 1인당 400만 원의 비용도 학교가 부담한다. 국제학부는 최근 교육부 선정 지방대학특성화사업에 선정됐는데 선정된 학과 중에서도 미래비전과 성장성이 뛰어난 학과인 명품학과에 꼽혔다. 국가가 지원하는 자금도 학생들의 현지연구와 장학금에 쓸 것이다."

1학년 양해정양이 '2014 ISR' 포럼 후 칵테일 파티에서 죠지 테링러 Arts plus 스포츠 마케팅 컨설팅 대표와 환담을 나누고 있다.
1학년 양해정양이 '2014 ISR' 포럼 후 칵테일 파티에서 죠지 테링러 Arts plus 스포츠 마케팅 컨설팅 대표와 환담을 나누고 있다.

기자는 국제학부 '국가경영과 개발'이란 조영철 교수의 수업을 참관하면서 외국인 유학생이 많은 것에 놀랐다. 다양한 인종이 섞인 탓에 미국 뉴욕의 대학 강의실에 와 있는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마침 조 교수는 중간고사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학생들은 시험 범위와 문제 수준에 대한 얘기를 듣고 즉석에서 감정을 표현했다. 한국학생들의 영어도 수준급이었다. 국제학부 한국 학생들의 입학 성적이 수능 국영수 평균 2등급임을 감안하면 뛰어난 영어 실력이었다.
2학년에 재학 중인 유리 씨(21)는 "모든 수업을 영어로 하기 때문에 처음에는 힘들었다. 하지만 강의와 숙제는 물론이고 친구들끼리 대화도 영어로 하는 등 하루 종일 영어에 노출되다보니 영어실력이 1년 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늘었다. 지금은 국제학부를 다니는데 아무 문제가 없다"고 말한다.

국제학부의 외국인 유학생 비율은 학부 재적생 49명 중 19명(36.7%). 이는 전국대학 중에서도 가장 높은 비율이다. 유학생들의 출신국 역시 미국, 영국, 독일, 필리핀, 에콰도르, 과테말라, 라트비아 등 원조를 주는 나라와 받는 나라를 망라한다. 입장이 다른 나라에서 온 학생들이 섞여 있는 이유는 한국이 원조를 주고받은 경험을 모두 갖고 있고, 전북대 국제학부가 '주는 기술'과 '받는 기술'을 모두 가르치는 '국제개발협력학'을 특화했기 때문이다.

외국인 학생들은 국제학부를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라트비아 출신으로 전북대로 유학 온 2학년 줄리바 보로나 씨(22)의 말이다. “영국 유클란 대학에서 2년간 국제학을 공부하다 오게 됐다. 전북대 국제학부의 ‘국제개발협력학’ 중심의 커리큘럼을 통해 심화된 공부를 하고 있다. 강의 수준이 영국보다 높다.”

영국 랭커셔 대학을 다니다 역시 2학년에 재학 중인 샘 노밍턴 씨(23)는 “모든 수업을 영어로 하기 때문에 아무런 불편이 없고 많은 외국인 학생 덕분에 다양한 문화를 접할 수 있어서 좋다”며 만족감을 표시했다.

2학년에 재학 중인 최명현 씨(21)의 멘토는 니콜라스 뉴린 주한 에콰도르 대사다. 최 씨는 "유엔 기구에 들어가고 싶다는 꿈을 갖고 있는데 고민이 있다. 뉴린 대사님은 내게 '아직 시간이 많다. 급할수록 돌아가라'며 다독여 주신다. 대사님과 만나면서 안정감을 찾고 비전을 어떻게 구체화할 것인지에 대한 구상을 하고 있다"고 말한다. 국제학부 학생들의 멘토 중에는 조정원 세계태권도연맹 총재, 이반 디보스 페루 IOC 위원 등 국제감각을 갖춘 리더들이 많은데 학부생 전원이 멘토들에게 다양한 지도를 받고 있다. 전 학부장은 다양한 멘토진을 구성한 이유를 "학생들에게 보다 많은 기회를 줘서 진로를 정하는데 도움을 주기 위해서"라고 설명한다.

전북대 국제학부는 만들어진 지 2년밖에 안 되는 학과라는 게 믿어지지 않을 만큼 체계적인 교육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다. 이런 시스템은 한국과 해외에서 인정받고 있으며 교육 수요자인 학생들로부터도 호평을 받고 있다고 한다.
기자는 국제학부를 취재한 후 "국제개발협력이 각광 받을 것이기에 국제학부의 미래를 낙관 한다"는 전광호 학부장의 의견에 동의했다. 또 많은 지방대가 추구하는 '글로컬(글로벌+로컬)' 전략의 핵심이 전북대 국제학부가 추구하는 전략과도 통한다는 생각도 들었다.

"(내가 사줘서) 올가을 우리 과에서 전어 안 먹어 본 학생이 없다"는 전 학부장의 말에서 '글로컬'이라는 비전도 중요하지만 '스승의 제자사랑'도 교육에서 중요한 몫을 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전주=이종승 콘텐츠기획본부 전문기자 (동아일보 대학세상 www.daese.c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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