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의 이 한줄]이 가을, 그리움을 자아내는 가족의 냄새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0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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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할머니 냄새가 나는 옷을 상하이로 보내줘. 할머니 보고 싶으면 냄새를 맡을 테니까.’ ―나의 딸의 딸(최인호·여백·2014년) 》

냄새에 대한 기억은 참 묘하다. 별생각 없이 지내다가도 갑자기 벼락같이 들이닥쳐 한동안 기억 전체를 지배해 버린다.

한 달간 겨울방학을 맞아 한국에 와 있던 고 최인호 작가의 손녀가 상하이로 돌아가기 위해 공항에 갔을 때의 일이다. 작가는 손녀딸이 할머니(작가의 아내) 얼굴을 어루만지는 것을 보았다. 단순히 쓰다듬는 게 아니라 얼굴을 할퀴듯 긁어내리는 것이었다. 영문 모를 이 행동의 이유는 며칠 뒤 손녀딸과의 국제전화를 통해 밝혀진다. 손끝에 할머니 냄새를 묻혀 뒀다가 보고 싶을 때 그 냄새를 맡으려고 했다는 것이다.

네 살, 두 살 딸을 키우는 나도 가끔 딸들의 냄새를 어딘가에 묻혀 오고 싶을 때가 있다. 아기 냄새는 누군가가 ‘달큰하다’고 표현했는데 실제로는 거의 아무 냄새도 없는 것에 가깝다. 우유를 먹으면 우유의 비릿한 냄새가 나고, 생선을 먹으면 생선 냄새가, 떡을 먹으면 떡 냄새가 난다. 아이의 몸에서 나는 이런 냄새들이 내게 행복감을 준다.

아이들도 내게서 음식 냄새를 맡았으면 좋겠다. 밥 냄새도 나고 전 냄새도 나고 생선 냄새도 나는 엄마였으면 좋겠다. 직장생활에 바빠 음식을 열심히 해주거나 음식 먹는 것을 즐기는 엄마가 아니기 때문에 더 그럴지도 모른다. 아이들이 엄마를 떠올리면 풍성한 식탁과 푸근한 포만감을 느꼈으면 좋겠다.

체취를 맡는다는 건 풍겨오는 냄새를 수동적으로 맡는 것과는 다르다. 코를 박고 냄새를 맡을 정도로 긴밀한 스킨십이 필요하다. 아기 냄새라든지 할머니 냄새, 엄마 냄새는 그만큼 밀착된 스킨십의 기억이 뒤섞여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러고 보니 내 부모님 냄새가 어떤 것이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몇 년간 부모님 냄새를 맡아볼 여유가 없었다. 조만간 부모님 옷에 코를 박고 냄새를 맡아봐야겠다.

김현지 기자 nuk@donga.com
#나의 딸의 딸#최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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