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이 노리는건 美와 대화… 대남관계 개선은 징검다리”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0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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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실세 3인 방문 이후/美-中-日 전문가 인터뷰]

《 북한 최고위급 3인의 전격적인 방문은 복잡하게 얽혀 있는 한반도 정세에 적지 않은 영향을 남겼다. 한반도 주변국들은 이번 방문의 의도와 전망을 진단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데이비드 스트라우브 미국 스탠퍼드대 아시아태평양연구소 부소장, 추수룽(楚樹龍) 중국 칭화대 교수, 오코노기 마사오(小此木政夫) 일본 규슈(九州)대 특임교수 등 3명의 전문가에게 이번 방문의 의미와 남북관계 개선 가능성 등을 물었다. 》  

▼ 데이비드 스트라우브 美 스탠퍼드대 아태연구소 부소장 ▼

인권개선 압력 회피용 시선교란 이벤트… 북한, 당분간 유화적으로 나올 가능성


“핵을 포기하고 인권 문제를 존중하라는 국제사회의 동시다발적 압력에 위기를 느낀 김정은 정권의 시선 교란용 대남 전술로 봐야 한다.”

미국의 대표적인 한반도 전문가인 데이비드 스트라우브 스탠퍼드대 아시아태평양연구소 부소장(사진)은 5일 동아일보와의 전화 및 e메일 인터뷰에서 북한 고위급 인사들의 깜짝 방문 속내를 이렇게 진단했다. 그러면서도 “북한이 당분간 대남 유화책을 이어갈 가능성이 높다”며 남북 관계 개선을 위한 계기가 마련될 가능성도 점쳤다.

―김정은 정권이 갑자기 최고위급 인사를 보냈는데….

“국제사회가 누구 할 것 없이 북한의 핵 보유를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에 솔직히 좌절감을 느꼈을 것이다. 한미 관계는 공고하고 중국은 (지난해 12월 장성택 처형 뒤) 북한 정권에 화가 났고 일본은 북한과의 교섭에 적극적이지 않다. 러시아마저 도와주지 않는 상황이다. 북한이 처한 국제정치적 여건은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떤 식으로든 국제사회의 시선을 돌리는 이벤트가 필요했다.”

―이번 방한에서 무엇을 얻으려고 했을까.

“국제사회의 시선을 교란시키는 것 외에 김정은 정권이 공고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을 것이다. 방한 직전 김정은의 건강 이상설까지 퍼지지 않았나.”

―방한을 계기로 북한의 대남 전략전술이 변화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나.

“북한이 과거에도 자주 사용하던 ‘특사 외교’의 하나다. 북한이 진정으로 남한과 대화에 나설 의향이 있다면 왜 방한 직전까지 (○○개 같은) ‘끔찍한’ 표현을 사용하며 박근혜 대통령을 비판했겠는가. 왜 이번 방한에서 박 대통령의 청와대 면담을 거절했겠는가.”

―지난달 이수용 북한 외무상이 유엔 총회에 참석했고 강석주 노동당 국제담당 비서는 유럽을 방문했다. 이번 방한과는 어떤 관계가 있나.

“이수용, 강석주의 행보는 실패한 것으로 결론이 났다. 그래서 고민 끝에 방한 이벤트를 마련한 것이다.”

―북한에 끌려 다니지 않겠다는 박 대통령의 대북정책 ‘원칙’이 통한 것인가.

“평양도 이제 박 대통령의 강한 소신과 원칙을 어느 정도 느끼고 있다고 봐야 한다. 협박이 더이상 통하지 않는 만큼 당분간은 유화적으로 나올 가능성이 높다. 물론 그리 오래가지는 않을 것이다.”  

▼ 추 수 룽 中 칭화대 공공관리학원 교수 ▼

北, 남북관계 개선 강한 의지 드러내… 中 환영
北-中 냉랭하지만 김정은 訪中은 시간문제


“북한 고위급의 한국 방문은 갑작스럽게 이뤄졌지만 사실은 갑작스러운 것이 아니다. 북한은 올해 들어 지속적으로 한국과의 접촉을 시도해 왔다.”

중국 칭화(淸華)대 추수룽(楚樹龍·사진) 교수는 5일 전화 인터뷰에서 북한이 올해 한미 연합 군사훈련을 비난했지만 과거와 비해 상당히 누그러진 자세를 보인 것도 관계 개선을 위한 것이었다고 지적했다.

―북한 최고위층 3명이 함께 방문했는데….

“한반도 분단 60여 년 역사에서 매우 드문 일이다. 그만큼 관계 개선에 강한 의지를 나타낸 것이다.”

―일본과 한국에 대한 북한의 갑작스러운 접촉을 중국은 어떻게 생각하나.

“남북 간 접촉과 관계 개선을 격려해 온 중국으로서는 매우 환영할 일이다. 조금도 불쾌한 일이 아니다. 주변 정세가 안정적으로 변하는 것은 중국의 이익에도 부합한다.”

―중국이 북한에 계속 냉담하면 북한이 미국에 접근하려고 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북한과 미국이 중국 땅에서 만나는 것도 중국이 주선하고 편의를 제공했다. 중국은 대국이고 대국으로서의 다양한 전략적 사고를 한다. 북-미 접근을 환영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6일로 수교 65주년을 맞은 북-중 관계가 그 어느 때보다 냉각돼 있다는 시각이 많다.

“2, 3년 전에 비하면 분명히 냉랭하다. 이는 북한의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 그리고 (북한 내 대표적인 친중파인) 장성택 처형도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당과 정부 간 접촉이 완전히 단절되고 공개적으로 상대방을 비난하는 정도의 근본적인 변화는 아니다.”

―김정은이 집권 3년을 맞았는데도 중국을 오지 못하고 있다.

“김정일도 집권하자마자 중국에 온 것은 아니다. 김정은의 중국 방문은 시기를 예단할 수 없으나 시간문제다.”

추 교수는 평소 “중국이 지나치게 북한을 감싸는 것은 정상이 아니다. 북한은 지금까지 중국에 이익보다는 손해를 끼쳤다”는 등의 강경한 의견을 밝히는 등 북-중 관계를 냉정하게 진단하는 한반도 전문가 중 한 명으로 꼽힌다. 추 교수는 남북 2차 고위급 접촉 전망에 대해 “북한은 예측이 불가능한 측면이 많다”면서도 “좋은 방향으로 발전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 오코노기 마사오 日 규슈대 특임교수 겸 동서대 석좌교수 ▼

北 TV 최근 노무현-김정일 회담 잇단 방영
2015년 광복 70주년 맞아 정상회담 할 수도


“결국 북한이 노리는 것은 미국과의 대화다. 이를 위해 한국과의 관계 개선에 나서고 있다.”

일본의 대표적 북한 전문가인 오코노기 마사오(小此木政夫·사진) 규슈(九州)대 특임교수 겸 동서대 석좌교수는 5일 전화 인터뷰에서 북한 고위급 대표단의 방한 의미를 이렇게 분석했다. 그는 “이제 공은 한국으로 왔다. 한국의 대응에 따라 남북관계가 크게 개선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북한 핵심 인사들의 갑작스러운 방한 의미는….

“한국과의 관계 개선 의지를 분명히 내보인 것이다. 미국과 중국이 북한에 엄격한 자세를 보이고 있으니 한국과 먼저 관계를 개선하려는 것이다.”

―왜 지금인가.

“내년 여름이 되기 전까지 한국과 관계를 개선하려면 아시아경기 폐회식이라는 공식 행사가 가장 적합했다. 북한 체면을 살리면서 한국에 분명한 메시지를 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왜 내년 여름까지 한국과 관계 개선에 나서려 하나.

“광복 70주년(내년 8월 15일)과 노동당 창건 70주년(내년 10월 10일)이 내년 여름과 가을에 있다. 그때까지 북한은 뭔가 외교적 성과를 내고자 한다.”

―당분간 한일 관계가 좋아질 것으로 보나.

“그렇다. 최근 북한 방송은 노무현 전 대통령과 김정일이 만난 영상을 내보내고 있다. 남북 화해 분위기를 국민들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남북 정상회담으로 이어질 수도 있을까.

“가능하다고 본다. 시기적으로 보자면 광복 70주년인 내년 8월 15일이 가장 이상적이지 않나 생각한다.”

―당분간 북한이 한국에 어떻게 나올까.

“이산가족 상봉 등 한국이 적극적인 분야에 긍정적으로 나올 것이다. 올해 이산가족 상봉, 금강산 관광 등 현안에서 진전을 이루고 내년에 6자회담 성사에 집중할 것이다. 그래야 미국과 이야기할 기회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북-일 관계가 삐걱거리는 것 같다.

“맞다. 7월 초 납북 일본인을 조사하는 특별위원회를 세울 정도로 북한이 적극적이었지만 요즘은 아니다.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북한이 일본을 이용했을 수도 있다. 북한과 일본이 접근하는 모습을 한국에 보여줘 한국이 북한과의 관계 개선에 적극적으로 나오게끔 유도했을 가능성이 있다.”

워싱턴=이승헌 특파원 ddr@donga.com
베이징=구자룡 특파원 bonhong@donga.com
도쿄=박형준 특파원 lovesong@donga.com
#데이비드 스트라우브#추 수 룽#오코노기 마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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