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加害역사’ 반성은커녕 물타기 하는 일본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0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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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반성 박물관 피스오사카 개축… 전시물에 일본인 피해 끼워넣어
‘日의 침략’ 아닌 ‘中의 도발’로 묘사… “극우파 입김에 정부 홍보시설로”

8월 말 오사카 시 주오 구의 피스오사카 1층 전시실에서 한 일본인이 난징대학살 관련 사진을 보고 있다. 오사카 부는 지난달부터 피스오사카를 일시적으로 닫고 가해 역사의 흔적을 지우는 작업에 들어갔다. 박형준 특파원 lovesong@donga.com
8월 말 오사카 시 주오 구의 피스오사카 1층 전시실에서 한 일본인이 난징대학살 관련 사진을 보고 있다. 오사카 부는 지난달부터 피스오사카를 일시적으로 닫고 가해 역사의 흔적을 지우는 작업에 들어갔다. 박형준 특파원 lovesong@donga.com
일본의 가해(加害) 역사를 반성하는 유물을 전시했던 피스오사카(Peace Osaka)가 개축을 하며 중국 측의 가해 사실을 보여주는 ‘퉁저우(通州) 사건’을 영상물에 끼워 넣겠다고 계획을 세운 것으로 확인됐다.

퉁저우 사건은 1937년 7월 중국 베이징(北京) 퉁저우에서 중국군이 일본군과 민간인을 습격해 260여 명을 살해한 사건이다. 동아일보가 최근 입수한 오사카(大阪) 부 의회의 ‘피스오사카 전시 리뉴얼의 구체적인 전시 등 개요’에는 퉁저우 사건을 영상물에 넣는다는 계획이 들어 있다. 개요는 ‘(베이징 근교의) 로코(盧溝)다리(중국명 루거우차오·盧溝橋)에서 일중(日中) 양군이 충돌했다. 중국군은 일본의 군인과 일반인을 살해했고(퉁저우 사건), 전쟁의 불씨는 상하이(上海)까지 퍼져 선전포고 없는 전면적인 일중전쟁이 시작됐다”고 명시하고 있다.

일본 시민단체들은 피스오사카 측이 이 같은 내용을 영상물 내레이션(해설)으로 쓸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앞으로 영상물을 시청하는 방문객들이 이런 내용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이다.

시민단체인 ‘피스오사카의 위기를 생각하는 연락회’는 “마치 중국이 전쟁을 촉발시킨 것처럼 적혀 있다. 개요에 적힌 문장 중에 (일본의) ‘침략’이란 단어는 어디서도 보이지 않는다”라고 밝혔다. 연락회는 피스오사카 영상에서 퉁저우 사건을 제외시킬 것을 요구하는 진정서를 오사카 부에 제출할 예정이다.

피스오사카가 기존 자료에 없던 퉁저우 사건을 슬그머니 끼워 넣으려 하는 것은 ‘가해의 역사’를 흐리려는 시도로 풀이된다.

피스오사카의 전시물이 왜곡되기 시작한 것은 극우성향의 지역정당인 ‘오사카유신회’ 소속 후보가 2011년 11월 오사카 시와 부 선거에 모두 당선되면서 시작됐다. 2012년 5월 하시모토 도루(橋下徹) 오사카 시장은 의견이 엇갈리는 전시물의 설명에 양론을 병기해야 한다고 밝혔다. 마쓰이 이치로(松井一郞) 오사카 지사도 지난달 기자회견에서 피스오사카 개축과 관련해 “(난징에서) 대학살이 일어났다고 하는 일방적인 내용이 되지 않도록 양론을 병기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 극우들도 “난징(南京)대학살(일본군이 1937년 12월 난징에 입성해 수만 명에서 수십만 명의 중국인을 살해한 사건)만 있는 게 아니다. 퉁저우 사건도 있다”며 가해 역사에 물타기를 시도해왔다. 연락회 측은 “피스오사카가 점차 정부의 ‘홍보시설’이 돼 가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 같은 오사카 부의 움직임은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이 힘 쏟고 있는 ‘자학사관 탈피’와 맥이 닿아 있다. 오사카 부 외에도 나가노(長野) 시, 덴리(天理) 시 등 지방자치단체는 일제강점기 한국인 근로자를 강제 동원한 것을 설명하는 안내문에서 ‘강제’라는 문구를 빼고 있다. 사이타마(埼玉) 현 히가시마쓰야마(東松山) 시 평화자료관은 전시된 연표에서 ‘위안부’ 등의 단어를 지난해 삭제했다.

도쿄=박형준 특파원 lovesong@donga.com
#가해역사#피스오사카#퉁저우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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