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덕 칼럼]‘광우병 선동’ 뺨치는 KBS 문창극 보도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6월 22일 22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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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된 정보가 국민 오도한 MBC PD수첩 광우병 사태 KBS 문창극 뉴스와 묘한 유사점
그들 입맛과 이념에 안 맞으면 누구라도 ‘딱지’ 붙여 매장하는 “보도 기본 안 지킨 최악의 보도”
문창극 청문회 열든 못 열든 방통심의위는 당장 심의하라

김순덕 논설실장
김순덕 논설실장
‘문창극 후보 동영상 방영 감사합니다’, ‘시청료는 KBS가 아니라 MBC에 줘야 합니다’, ‘MBC 살아있네∼’. MBC가 20일 밤 ‘긴급대담 문창극 총리 후보자 논란’을 방영한 뒤 시청자 게시판엔 이런 제목이 잇달아 올라왔다.

전체 150분 방송 중 40여 분을 교회강연 동영상에 할애한 특이한 프로그램이었다. 토론자 손석춘 건국대 교수는 “공영방송에서 저런 동영상을 저렇게 오래 틀어도 되는 거냐”라고 했다가 “KBS에서 짜깁기해서 보여주는 건 괜찮고 MBC에서 전체 다 보여주는 건 안 되냐”라는 홍성걸 국민대 교수의 반격에 금방 머쓱해졌다.

문창극의 낙마가 초읽기에 들어간 마당에 굳이 긴급대담을 내보낸 이유가 궁금해 MBC 간부에게 물었다. 그는 “광우병 사태를 겪고 난 뒤 다시는 여론을 호도하는 선동방송을 해선 안 된다는 반성에서 나온 것”이라고 답했다. 괜한 논란을 일으킬 수도 있지만 KBS의 ‘악마적 편집’을 보고만 있느니 공영방송답게 문제의 동영상을 다 보여주고 국민에게 판단을 맡기자는 결정이라고 했다.

문창극이 총리가 되든 안 되든 사회통합이라는 지상파 방송의 책임은 다해야 했다는 그의 말처럼, 나는 인사청문회까지 가든 안 가든 6월 11일 KBS의 문창극 보도는 반드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본다.

2008년 촛불시위의 불을 댕긴 MBC ‘PD수첩―긴급취재, 미국산 쇠고기 광우병 안전한가’와 KBS의 문창극 뉴스는 파고들면 들수록 유사점이 드러난다.

우선 사실 속에 진실을 교묘히 숨겨 여론을 호도하는 모습이다. PD수첩은 주저앉는 소(사실)를 보여주면서 ‘광우병에 걸렸을 가능성이 크다’고 허위 보도하는 등 핵심 쟁점 4개 중 3개가 거짓이라는 대법원 판결을 받았다.

KBS 뉴스는 “문창극 후보자가 교회 강연에서 일제의 식민 지배와 이어진 남북 분단이 하나님의 뜻이란 취지의 발언을 한 사실이 확인됐다”는 앵커 멘트로 시작한다. 그가 하나님의 뜻이라는 말을 한 건 사실이다. 그 다음 ‘하나님은 우리 민족을 단련시키려고 고난을 준 다음 길을 열어준 것’이라고 했다는 대목은 뉴스 어디에도 없다. ‘A는 돈을 받았다. 정당한 보상이어서다’가 진실인데 ‘돈을 받았다’만 보도해서 마치 뇌물 받은 것처럼 만든 꼴이다.

방송심의기준 9조(공정성)는 방송이 진실을 왜곡하면 안 된다고 했다. KBS 방송강령은 인터뷰 편집도 전체 흐름에 어긋나거나 일방적 방향으로 해선 안 된다고 못 박았다. 영국 BBC 가이드라인은 주요 관점을 생략하면 공평성에 어긋난다고 지적한다. 문창극 보도는 KBS에서도 “본인의 반론을 전혀 담지 않아 보도의 기본을 지키지 않은 최악의 보도”라는 평가가 나오는 실정이다.

MBC 게시판엔 ‘차라리 처음부터 KBS가 이랬다면 여론이 이렇게 되었을까 싶네요’라는 글이 올라와 있다. 11일만 해도 51% 넘었던 문창극에 대한 긍정 반응이 다음 날부터 50% 아래로 추락한 데는 KBS 보도가 작용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PD수첩 당시 검찰은 작가의 e메일에 “이명박에 대한 적개심이 하늘을 찌를 때라서 광적으로 일했다”는 내용이 있다고 했다. 정치적 의도가 보이든 안 보이든, 불공정한 보도로 국기(國紀)를 흔들고 멀쩡한 사람도 친일파 만드는 방송사라면 정상이랄 수 없다.

전파가 노조원 것인 양 노영(勞營)방송으로 불리던 MBC는 그 후 그야말로 뼈를 깎은 끝에 비로소 공영방송답다는 찬사를 듣게 됐다. 길환영 사장이 우여곡절 끝에 물러난 지금의 KBS는 어쩐지 ‘데자뷔(기시감·旣視感)’의 느낌이다.

정연주 사장 시절(2003∼2008년) 뿌려놓은 씨가 ‘점령군’으로 되살아나 ‘부역자’ 거세 중이라는 웅성거림이 KBS 안에서 나오고 있다. 문창극은 첫 희생자일 뿐, 그들의 입맛과 이념에 맞지 않는 누구라도 ‘딱지’만 붙이면 훅 가버리는 납량 공포세상이 도래했다며 모두들 입을 다물려 한다. 과거 MBC가 냈던 사과문처럼 ‘잘못된 방송이 국민의 판단을 흐리게 하고 혼란과 갈등을 야기’하는 상황이 이젠 국가기간방송 KBS에 의해 벌어질 판이다.

박효종 방송통신심의위원장은 지난주 취임사에서 “방송과 통신에도 윤리와 규범, 절제와 책임이 요구된다”며 무책임한 비방과 명예훼손에 신속하고 단호하게 대처하겠다고 밝혔다. 말로만 단호한 고위공직자들, 신물이 난다. 속히 KBS 뉴스 심의에 나서 취임사 실천을 보여주기 바란다. ‘KBS 사태’는 문창극 한 개인을 넘어 나라의 명운이 달린 문제일 수 있다.

김순덕 논설실장 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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