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쌀 시장 개방은 늦출수록 손해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6월 21일 03시 00분


정부가 어제 공청회에서 ‘쌀 시장 개방’을 사실상 공식화했다. 다만 개별 국가들과의 자유무역협정(FTA)에서 쌀은 제외하고, 쌀 산업 발전을 위해 규모의 경제화, 쌀 수입보험제도 등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농민단체들과 일부 정치권 인사들이 강력히 반대하고 있지만 쌀 관세화는 한국이 달리 선택할 여지가 없는 외길로 판단된다.

1994년 우루과이라운드 타결 이후 세계무역기구(WTO) 회원 159개국 가운데 쌀 시장을 막는 대가로 의무수입을 하는 나라는 한국과 필리핀밖에 없다. 필리핀은 최근 쌀 관세화를 5년 더 미루기로 했지만 쌀 의무수입 물량을 현재의 2.3배로 늘리고 다른 품목까지 대폭 개방하는 대가를 치렀다. 무역대국인 한국이 쌀 관세화 유예 대가로 받을 부담은 훨씬 클 수밖에 없다.

쌀 관세화 대신에 한국이 해마다 의무수입하는 쌀은 이미 50만 t이 재고로 쌓여 있다. 축구장 100개 넓이의 창고를 가득 채울 수 있는 양이다. 관세화를 늦추면 현재 연간 수입량 41만 t의 두 배 이상인 90만 t가량을 수입해 쌓아 둬야 한다. 나중에 쌀 시장을 개방하더라도 의무수입 물량은 계속 들여와야 하기 때문에 개방을 늦출수록 손해다. 그래서 일본은 관세화 유예기간이 만료되기 전인 1999년 관세화로 조기 전환했다. 당초 우려와 달리 일본은 시장 개방 후에도 의무수입량 외에 관세로 수입되는 쌀은 거의 없다.

전문가들은 지금 쌀을 관세화하면 대략 400%의 고율 관세를 보장받을 것으로 본다. 한국 쌀이 kg당 평균 2300원이고 국제 쌀 가격이 821원이다. 400% 관세를 매기면 4100원 정도가 돼 국내 가격경쟁력이 없다. 관세화 유예기간은 올해 끝나기 때문에 9월까지는 WTO에 한국의 방침을 알려줘야 한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매년 국내 쌀 소비량의 20%가량인 90만 t을 의무수입하면서 시장은 시장대로 개방하는 일이 조만간 닥치게 된다.

쌀농사는 식량안보 차원에서 포기할 수 없는 산업이다. 국내 쌀농사를 살리는 길은 하루라도 빨리 시장을 개방하는 것이다. 정부는 구체적인 쌀 산업 발전대책을 내놓으면서 농민과 정치권을 설득하는 정공법을 택해야 한다.
#쌀 시장 개방#FTA#관세#의무수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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